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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늘 부담입니다', 라고 말하면 우습게 들릴까요. 그러나 제가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감정입니다. 물론 좋은 감정이라고 할 순 없겠지요. 이건 순전히 남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쓴 탓이니까요.

책을 꽤나 읽었다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판단할 때, 종종 그 사람이 읽은 책을 통해 판단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꼭 맞지는 않는 걸 알면서도 괜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고른 책이 '진짜' 좋은 책인가, 혹 질이 떨어지는 책은 아닐까, 고민이 드는 걸 보면 말이죠.

네 멋대로 읽어라 / 지은이 김지안 / 펴낸곳 리더스가이드 / 2016년 09월 01일 / 값 13,000원
▲ 네 멋대로 읽어라 네 멋대로 읽어라 / 지은이 김지안 / 펴낸곳 리더스가이드 / 2016년 09월 01일 / 값 13,000원
ⓒ 강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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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요? 김지안의 <네 멋대로 읽어라>는 제목부터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책을 읽었다는 '독서광' 저자의 독서, 글쓰기, 작가에 대한 생각까지 그동안 블로그에 써놓은 책에 관한 글을 모아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책에 관한 책인 셈이지요.

특히 책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저자 개인의 경험을 녹여내는 솜씨는 혀를 내두르다 못해 능글맞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글 말미에 가면 과연 이게 서평인가, 개인의 경험이 담긴 에세이인가 하는 생각마저들 정도니까요.

엄밀히 말하면 둘은 구분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독서 또한 개인의 경험 중 하나일테니까요. 아무튼 저자는 책을 단순히 텍스트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곱씹는 데까지 이른다는 것이지요.

박균호의 <오래된 새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어렸을 적 본인이 겪은 귀여운 일화를 들려줍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을까 말까 하던 시절,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을 집에서 발견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가 없고, 세로로 쓰인 오래된 책이다. (...) 첫 페이지를 넘기자 연필로 선명히 쓴, 약간은 삐뚤어진 세로줄 글이 보인다. "○○아, 난 네가 좋다."라는 말로 시작된 그 글. 그것을 발견하고 순간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 버린 느낌이다." - 본문 중에서

다소 무거운 대목도 보입니다. 저자가 '한 번도 글로 쓰려고' 하지 않았던 이야기인데요. 김운하의 <릴케의 침묵>으로 시작한 부분은 사실 책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책으로부터 시작한, 책으로 맺을 수밖에 없었던 저자 개인의 경험담에 가까워 보입니다.

"(릴케의 침묵에서 나온) 이 말이 내게도 해당되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분명 그 일에 자부심이 있었고, 떠나온 이후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넘어진 곳에서 다시 시작했다고 해서 누가 날 알아주고,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어려운 시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또 한 번의 좌절을 느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그곳을 걸어 나왔다." - 본문 중에서

이처럼 책에 대한 일화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저자가 생각하는 책의 생산자, '작가'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집니다. 내로라하는 유명 작가들과의 직·간접적인 만남을 소개하는 내용에선 조경란 작가와의 경험이 재밌습니다. 전자기기를 통해 책을 읽는 풍조에 괜스레 공공장소에서 책을 읽는 게 어색해졌다는 조 작가의 말에는 내심 이렇게 응수합니다.

"작가의 말을 들으니 뭔지 모를 반항심이 생겼다. TV가 나올 때 라디오는 없어질 거라고 했다. 하지만 TV와 라디오는 여전히 공존한다. 비디오가 나올 때 영화관은 없어질 거라고 했다. 종이책도 마찬가지다. 그런 기계가 나왔다고 해서 종이책이 없어지기야 하겠는가?" - 본문 중에서

책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이건, 작가를 만났던 일화건 그 속에는 저자 스스로 주체적인 '독자'가 되고픈 마음이 짙게 나타납니다. 단순히 작가의 의도, 내용에 따라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끼고 해석하고 판단하려는 의지이지요.

그래서 책 꽤나 읽은 사람치고, 책 <네 멋대로 읽어라>는 유달리 솔직하고 가감없으며, 또한 겸손하게 느껴집니다. 이건 일종의 용기라고도 할 수 있지요. 자신이 별로였던 책, 작가를 두고 남의 시선이나 내 판단이 틀릴까 두려워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별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말입니다.

종종 서평을 읽을 때면, 한 권의 책을 두고 글쓴이가 읽은 느낌과 제 느낌이 맞는지 판단합니다. 비슷한 생각이면 묘한 안도감을 느끼고, 아닐 경우엔 괜히 기분이 나쁘기도 합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이에게 김지안의 <네 멋대로 읽어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맘대로, 멋대로 읽으면 좀 어때?'


네 멋대로 읽어라 -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독서 에세이

김지안 지음, 리더스가이드(2016)


태그:#독서, #책, #독서법,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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