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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국정조사특위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간사가 경호동으로 가기 전 취재진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1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국정조사특위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간사가 경호동으로 가기 전 취재진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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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박근혜 사임 근처까지 왔죠. 하지만 절대 안심하고 낙관하지 마십시오. 해방 직후에 친일파 청산에 실패할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못했고, 6월 항쟁 때 누가 직선제를 해서 질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그때도 못했고. 2004년 탄핵 끝나고 나서 저 한나라당 영남 자민련으로 찌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생각했는데 (못했고), 국가보안법도 폐지 못시켰어요. 외환위기 때 재벌해체도 못 시켰고요.

그랬더니 18년 지나서 재벌들이 노동개혁하자고, 여러분들 개혁시키자고 달려들고요. 2004년도에 그 좋은 환경, 대중들은 대통령 살려 냈고 새 국회까지 만들어줬어요. 민주노동당 10석으로 의회 진출시켜줬어요. 그런데 국가보안법을 폐지 못 시켰습니다. 그러고 딱 10년 지나서 그 국가보안법을 휘둘러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거예요.

역사적인 찬스를 놓치면 우리가 반드시 역사적인 보복을 당하게 돼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정말로, 두 눈 부릅뜨고 끝까지. 박근혜 날아가고, 김기춘, 우병우도 날아갈 거예요. 그 몇 명이 날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세력들을 정말로 해체하는 작업들에 철저하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현 시국을 이렇게 진단했다. 이 방송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과거 행적을 낱낱이 캐고 있는 한 교수는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이야말로 저 멀리 친일파 청산으로부터 미뤄져왔던 한국사회의 기득권 해체와 변혁을 실행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이 그 변혁의 첫걸음이라 여긴 국민들이 대다수였으리라 짐작된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란 다짐들은 건강하고 의연했고, 실제로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난 사회 전반의 난맥상들을 재점검하고 개혁하리란 다짐들이 이행되리라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헌데, 한홍구 교수의 말마따나 해체돼야 마땅할 세력들의 저항이 어느 때보다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피의자' 박근혜는 물론 정부여당이 똘똘 뭉친 형국이다. 자칫 잘못하면 '역사적 보복'을 또다시 당할 판이다. 어제(16일) 하루 들려온 굵직한 소식들만 곱씹어 봐도 이러한 불안감이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쉬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 분노케한 이정현의 파안대소

이정현 대표(오른쪽)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 경선 개표 진행중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이정현 대표(오른쪽)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 경선 개표 진행중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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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정현 전 대표가 활짝 웃었다. 반면 많은 국민들은 그 미소로 인해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그 '이정현의 웃음'은 미소라기보다 가까스로 파안대소를 참은 것에 가까워 보였다. 어제(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 경선 개표 진행 중 정진석 원내대표 옆에서 웃음을 터뜨린 이정현 전 대표의 속내를 유추해 보면 아마 이 정도가 아닐까.

'나는 이 나라가 진짜 좋아. 이런 국민들 상대로 여당으로 정치하기 얼마나 좋아. 너무 좋아 죽겠어.'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정현 대표의 웃음은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보일 정도다. 이 대표의 동국대 후배들이 아무리 "뻔뻔한 이정현 선배님, 손에 장 지질 시간입니다"라고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채근을 해 봐도, 후안무치한 그 선배는 제 밥그릇만 신경 쓰면 그만이다. 오죽했으면, 같은 당의 '비박계' 이혜훈 의원이 1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이렇게 일갈했을까.

"친박 지도부라고 불리는 소위 진박들 중에 국민들이 도저히 이분들은 용납이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르게 한 분이다. 원인 제공자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국민한테 당했으면 이분들도 탄핵 당한 것과 똑같지 않느냐 이렇게 국민들이 생각하는 소위 8인방, 이런 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이런 것도 보고 저희들이 여러 가지 좀 지켜볼 일들이 더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도긴개긴'인 새누리당 친박계와 비박계 간의 전쟁을 지켜보는 일은 피로감 그 자체다. 이날 선출된 정우택 새 원내대표는 "내년에 진보좌파 정권을 반드시 막아내도록 하겠다"고 했고, 7표 차이로 진 나경원 의원 역시 정견 발표에서 "좌파에 정권 내줄 수 없다"는 발언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뻔뻔함을 다시 한 번 만천하에 공표했다. 여당 중견 정치인으로서 국정농단 사태의 공범임을 통감하고 책임감을 절감한다면 절대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다. 

더욱이 '21일 사퇴' 약속을 1주일여 앞당긴 이 대표의 사퇴는 친박 원내지도부라는 안전판이 마련된 결과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안정망과 퇴로가 확보되자 즉각 사퇴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정치 공학' 축에도 못 끼는 이러한 1차원적인 정치인이 그간 박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표직을 맡고 여당을 이끈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도로 친박당', '박근혜 순장조의 승리'라는 비판이 거세다. 아찔하고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문제는 그 박 대통령과 그의 권한대행 역시 뻔뻔하고도 강력하게 민의에 저항하고 있다는 점이리라.

예견된 박근혜의 저항, 예상 밖 황교안 '광폭행보'

탄핵심판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헌법재판소에 국회의 탄핵 사유에 대한 반박 입장을 담은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날 열린 브리핑에서 이중환 변호사(가운데)를 비롯한 대리인단이 취재진 질문에 답변 중 잠시 웃고 있다.
 탄핵심판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헌법재판소에 국회의 탄핵 사유에 대한 반박 입장을 담은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날 열린 브리핑에서 이중환 변호사(가운데)를 비롯한 대리인단이 취재진 질문에 답변 중 잠시 웃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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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책임이 없다."

소름 돋는 웃음은 또 있었다. 16일 헌법재판소에 탄핵 사유를 반박하는 답변서를 제출한 박근혜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은 탄핵 심판 기각에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활짝 웃어 보였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 앞에서 유감을 표시해도 모자랄 판에 이정현 전 대표와 다를 바 없는 환한 미소를 짓는 '박근혜의 변호인'들. 이들은 국회가 탄핵 사유로 적시한 헌법·법률 위반 13건을 모두 반박했다. 그 성공적인(?) 반박이 그렇게도 기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오늘(16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 답변서에서 국회의 탄핵 소추는 부당해 기각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히 사실관계와 법률관계를 모두 다투겠다고 했습니다. '신속하게 심리하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절차와 실체적 진실을 강조함으로써 탄핵 심판을 장기화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탄핵 사유 중 하나인 세월호 참사에 대해선 불행한 일이지만 대통령의 직접 책임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회 국정조사 특위의 청와대 현장조사는 경호실의 거부로 무산됐습니다."

16일 방송된 <뉴스룸>의 헤드라인 보도다. 제 살 길만 도모하는 박 대통령과 '박근혜의 가신들'의 저항은 이렇게 전방위적이다. 사실 친박계의 저항이나 박 대통령의 반박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광폭 행보는 쉽사리 예상치 못한 측면이 다분하다. 

"황교안 총리는 좋게 말하면 '범생'이고요, 정해진 대로 가는 사람이에요. 나쁘게 말하면 정의감이나 용기가 별로 없는 사람이에요. 저는 김병준씨나 손학규씨보다 오히려 마음이 놓입니다. 엉뚱한 일을 할 가능성이 적어요. 정계개편이나 개헌은 못할 분이세요."

탄핵안이 가결되기 하루 전인 지난 8일,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공개 생방송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의 황교안 권한대행에 대한 예측은 틀렸다. 16일 황 권한대행은 이양호 전 농촌진흥청장을 신임 한국마사회장으로 내정했다. 임기 몇 달짜리 권한대행이 임기 3년의 공공기관 장의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현재 공석이거나 임기가 끝난 공공기관장이 2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칼자루를 쥔 황 권한대행의 행보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황 권한대행의 행보에 '박 대통령측의 지시를 받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권한대행 체제 일주일 동안 황 권한대행은 국방은 물론 외교와 인사까지 두루두루 챙기는 오지랖을 선보이고 있다. 반면 야당과 국민들은 탄핵을 자처한 대통령을 모시던 황 권한대행 역시 탄핵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의 탄핵 소추안 이외에는 딱히 황 권한대행의 광폭 행보를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탄핵안 가결 이후에도 국민들의 근심과 우려가 잦아들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결국 '역사적인 보복'을 막는 힘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3일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를 방문한 뒤 밖으로 나와 시민과 대화하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3일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를 방문한 뒤 밖으로 나와 시민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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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던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16일 "우리도 100만이 모일 수 있다"며 17일 열리는 보수단체 맞불집회에 참석할 것을 예고했다. '도로 친박당'의 출발과 함께 보수층 재결집의 움직임도 잰걸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맞불집회는 물론 각종 SNS와 메신저를 통해 유언비어와 '박근혜 탄핵' 보도와 목소리에 대한 비방날조 글들도 횡행하고 있다. 보수층의 격렬한 저항이 재점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막고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공범들에게 적절한 죗값을 치르게 만드는 역량은 결국 국민들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탄핵안 가결을 정치권으로부터 이끈 '촛불민심'이 사그라지지 말아야 할 절대적인 이유다. 탄핵안 가결이 시작임을 공감했던 국민들이라면 향후 헌법재판소의 인용을 끌어내고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 내 친박·보수층의 결집과 저항을 막아내기 위해 거대한 '민의'가 필수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 박근혜'를 만들어줬던 51%의 국민들이라 할지라도 그 '민의'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분명 '공감'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터다. 더욱이, 자성과 책임과는 거리가 먼 누구들과는 달리 우리 국민들은 이번 촛불민심을 통해 성숙함을 전 세계에 자랑한 바 있지 않나. 15일 방송된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가 역설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 책임론'이 지금 이 시점에 중요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역사적인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국민들이 더 움직이고 더 현명해져야 한다. 그게 역사의 요구라면 말이다.

"저는 지금 대통령을 욕하는 그 열정의 10분의 1이라도,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우리 선거과정의 문제점과 우리 언론의 문제점과 우리 시민들의 정치를 보는 눈에 있는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태그:#박근혜, #탄핵, #김기춘, #황교안,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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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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