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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1일, 충남도청에 항의 방문한 전북 농민을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끌어안으며 달래는 장면
 2011년 7월 21일, 충남도청에 항의 방문한 전북 농민을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끌어안으며 달래는 장면
ⓒ 세종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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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된 영상 하나가 누리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2011년 한 인터넷방송에 의해 보도된 이 영상 속 배경은 충남도청이다. 당시 충남도청의 부실 공사로 인해 장마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전북 익산 농민들이 도청까지 몰려와 강력하게 항의를 했던 것. 감정이 격화된 농민들은 도지사의 면전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폭언을 쏟아 부었다. 이를 말리는 도청 직원들과 농민들 사이에선 금방이라도 몸싸움이 일어날 듯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때 갑자기 모두가 예기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줄곧 앉아만 있던 도지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항의하는 농민을 "형님!"이라 부르며 끌어안은 것. 이에 당황한 농민도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발휘된 도지사의 기지로 인해 위험한 상황은 가까스로 모면할 수 있었다. 이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대화가 이어지며 영상은 끝난다.

현재 이 영상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민원인을 대하는 고위공직자의 훈훈한 미담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영상 속의 도지사는 바로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다. 5년 전 영상이 이제 와서야 회자되는 것은 최근 그의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 이후, 온 국민의 관심이 조기 대선에 쏠리면서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그가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모셨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 이르기까지 잠재적 경쟁자들에게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그 역시 스스로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대선잠룡으로서 광폭 행보를 보이는 그가 최근 자전적 에세이 <안희정의 함께, 혁명>을 출간해 살펴봤다.

혁명을 꿈꿨던 열여섯 소년, 좌절을 맛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자전적 에세이 <안희정의 함께, 혁명> 책 표지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자전적 에세이 <안희정의 함께, 혁명> 책 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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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면 저자가 걸어왔던 삶의 기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논산 촌뜨기 소년에 불과했던 저자가 어떤 계기로 혁명을 꿈꾸게 되었는지 솔직담백한 어조로 읊어나간다.

저자가 16살이 되던 해,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소년 안희정은 박정희 시대의 마감과 함께 '박정희 유겐트'의 환상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한다. 비로소 독재의 어둠과 사회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1980년에 광주항쟁이 일어났고 전태일의 죽음을 뒤늦게 알았다. 한창 감수성 예민할 시기에 그가 접했던 사회적 현실은 그에게 혁명이라는 꿈을 품게 만들었다. 열여섯 소년이 품었던 혁명. 그것은 박정희식 군부 쿠데타가 아니라 민중과 시민의 힘으로 여는 혁명이었다.

그러나 철부지 소년의 꿈은 오래지 않아 좌절을 맛보게 된다. 고려대 철학과 재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가 끌려간 안기부에서였다. 그곳에서 만난 수사관들은 그때까지 저자가 품고 있던 혁명의 이상과 대의를 뒤흔드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다.

"4인 1조로 매일같이 자행되는 폭력은 육체의 고통을 넘는 수치심을 안겼다. 그런데 폭력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좇던 이념을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질문들이었다. (…중략…) 지속적이고 교묘한 질문 공세에 나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갖고 있던 혁명의 이데올로기에는 구체적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자인해야 했다" - p.28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아무런 대안도 없이 거창한 이념만을 내세우고 투쟁을 벌여왔던 것이다. 저자는 대안 없이 살아온 자신에게도, 수사관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도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혁명에 대한 회의는 현실 정치 입문이라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혁명가가 되겠다는 꿈은 처참히 무너졌지만 꿈이 무너진 자리에 깨달음이 자리잡았다. 사회변화는 민주주의라는 틀 내에서 국민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는 깨달음. 그리고 그 과정이 바로 정치라는 것" - p.30~31

노무현의 남자

안희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노무현의 남자', '노무현의 최측근'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참여정부의 '비선 실세'라는 꼬리표는 한때 그를 괴롭히는 비수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임명직은커녕 선출직도 맡아본 적이 없다"며 이를 부인했지만, 노무현의 사람이라는 수식어에 대해서 만큼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가 어느 해 일기장에 썼다는 구절 중에는 '노무현, 그는 정말 나랑 피 맛도 똑같은 것 같다. 정말 좋다'라는 사랑 고백까지 있을 정도다.

저자의 노무현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 잠시 두 사람의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저자가 노무현과 처음 인연을 맺었던 것은 19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함께 운영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저자는 3당 합당 등으로 여의도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잠시 정치권을 떠나 있을 때였다. 이때 주위로부터 "노무현과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합류하게 된 것. 이곳에서 그는 정부혁신과 국가개혁, 대중의 참여, 풀뿌리 민주정신, 대중의 참여공간을 통한 국민의 정치수준 고양 등 국정운영의 구체적인 대안을 정립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혁명이 끝나고 민주화운동이 끝난 후 갈 곳을 잃었던 나에게 갈 곳이 생겼다. 새로운 민주화운동이라는 과제와 목표가 생긴 것이다. 지방자치와 더 넓고 깊은 민주주의에 천착하게 되었다. 1단계 민주화운동에서 2단계 민주화운동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72

노무현과의 만남은 저자로 하여금 새로운 혁명을 꿈꾸게 만들었다. 그것은 지방자치였다. 당시만 해도 지방자치란 우리나라 실정에는 맞지 않는,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졌다. 지역 정책은 중앙 정부에서 모든 권력을 틀어쥔 채, 일방적으로 수립해 하달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지역 실정과 괴리된 정책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자와 노무현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자치의 완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봤다. 중앙정부는 외교와 안보, 통일과 같은 큰 그림을 그리고, 지방 정부가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마침내 2002년 12월 19일,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오로지 원칙과 상식을 무기로 걸어온 고난의 가시밭길이었다. 그 길을 함께 걸었던 혁명의 동반자가 마침내 대통령이 됐으니 저자의 심정이 오죽 기뻤으랴. 당시 느꼈던 감정이나 소회에 대해 저자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둘의 인연을 생각하면 얼마나 기뻤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2008년 5월 11일, 봉하마을에서 함께 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저자
 2008년 5월 11일, 봉하마을에서 함께 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저자
ⓒ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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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도 같았던 감옥 생활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불행은 예기치 못한 때 찾아왔다. 발단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였다. 노무현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강도 높은 수사가 이뤄진 것. 대선자금 관리자였던 저자는 스스로 책임을 지고 1년 동안 수형 생활을 했다. 생애 두 번째 옥고였다. 독방에서 그는 독서에 전념하며 혁명의 구상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이쯤 되면 그에게 감옥이란 학교에 더 가까웠을 성싶다. 수형생활 중 그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쓴 <마이 라이프>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단 한 번도 혁명을 생각해본 적 없는 현실 정치인이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행했던 정책들이 적지 않았다. 목숨 걸고 혁명하겠다며 살아온 내 인생보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치인을 꿈꿨던 그의 인생이 훨씬 더 크고 좋은 영향력을 발휘한 것처럼 보였다. (…중략…) 국가와 정치 영역의 공적인 정책을 수단으로 현실의 많은 문제들이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 20세기 미국의 클린턴을 보며 나는 현실정치의 역할과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p.75

참여정부 수립의 일등공신이나 다름없던 저자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참여정부 5년 동안 정치권에서 한 발짝 물러나있을 수밖에 없었다. 10년 만에 한 아내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로 돌아갔다. 정치를 시작한 이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소박한 행복이었다. 정치를 한답시고 가정에 소홀했던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자책하며,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고백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저자를 평범한 일상에 안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의 길을 함께 걸었던 동반자로서 저자가 겪어야 했을 슬픔과 좌절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저자는 노무현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노무현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품고서. 그렇게 정치권에 다시 뛰어들어 맡게 된 첫 공직이 바로 충남도지사였다. 2010년 충남도지사에 당선된 이후 저자는 2014년 재선에 성공하며 6년째 도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충남도지사 안희정, 대한민국을 말하다

자전적 에세이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 책은 사실상 19대 대선 후보 안희정의 국정운영 로드맵에 더 가깝다. 저자는 6년 동안 도정활동을 하며 지켜본 농·어촌의 현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불협화음, 양극화와 고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제시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최근 그의 행보와 연관지어 봤을 때, 이 책의 출간 역시 적극적인 대선 출마 의지로 읽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미래 대한민국의 비전은 무엇일까. 그는 여전히 지방자치를 답으로 제시한다. 그는 노무현을 만나 처음 품었던 지방자치의 꿈이 도정활동을 하면서 더욱 견고해졌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11명의 선수가 축구를 하는데, 선수 한 명에게만 공을 몰아준다고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는 없다. 각각의 선수가 각자의 영역에서 패스를 주고받으며 슛을 날릴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심판은 공정한 규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감시한다.

심판이 선수가 될 수는 없다. 그가 생각하는 국정운영도 마찬가지다. 주권을 가진 국민 모두가 선수가 되어야 한다. 심판 역할을 맡은 대통령은 감시자의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 대통령 개인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고, 국정을 맡기는 것은 과거 중앙집권국가의 임금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백성이 주인 노릇을 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이 나라의 이익이자 역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나라, 보통 사람의 몸과 마음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나라, 백 가지 성을 가진 이들이 합심해 결정하고 지도자를 머슴으로 부릴 줄 아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함께, 혁명

2016년 8월 30일, 한국쌀전업농 전국대회에 참석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모습
 2016년 8월 30일, 한국쌀전업농 전국대회에 참석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모습
ⓒ 충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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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지방자치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각종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다가도 당선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 바꾸기를 하는 공직자들의 행태를 오랜 시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에 너무 많은 권력을 몰아주는 것은 오히려 지자체의 '갑질'을 부추기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저자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국민 개개인이 각성하면 된다고 맞받아친다. 지방자치의 시작은 결국 주민자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양심과 원칙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민자치의 실천이다. 또한 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선심성 공약에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흔히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사공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공 중에 더 능력 있고 뛰어난 사공을 뽑아 배가 안전운전을 할 수 있도록 합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본 것이다. 그가 책 제목으로 선택한 '함께', '혁명'이라는 구호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만들어진 철학이자 제도다. 절대선이라 믿었던 절대권력이 먼저 부패하고 몰락하는 역사를 반복하면서 사람들은 정치와 권력에 대한 불신의 마음을 키웠다. 민주주의자로서, 직업정치인으로서, 다시 겸손을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은 나와 당신, 우리가 모여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때다. 또 다른 이름을 가진 혁명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 그 밝기를 촘촘히 키우고 있다" - p.7

그래서 저자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과 관련해서도 대통령과 정부 부처에 대해서만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대통령의 잘못된 처신이나 정부의 무능 대처가 핵심적 반성 사안 중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국정을 맡긴 것은 주권자인 우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이다. 저자는 우리 스스로 먼저 반성할 것을 요구한다.

"무너져 내린 우리 자신과 우리나라의 변화를 만드는 일, 결국 나, 우리 스스로에게 답이 있다. '너희들을 떠나보내고 우리 모두 많이 반성하고, 매일매일 어제와 다른 사람, 사회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단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슬픔과 허무의 그물을 뚫고 좌절과 분노의 불길을 헤치고 함께 앞으로 걸어 나아갈 수 있다."- p.242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으로 이어질까

헌정사상 유례 없는 국정농단 사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온갖 정치인들이 대선 주자로서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과연 어떤 지도자가 박근혜 정부의 유산을 척결하고 새 시대의 비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더욱이 구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인들마저 촛불 민심을 끌어들이며 대선 경쟁에 뛰어들어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 모두 입으로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말한다.

안희정 역시 그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고자 한다. 물론 그가 걷겠다고 하는 길은 이미 노무현이 앞서 걸어갔던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끝나지 않은 길이다. 더욱이 그는 그 길을 넘어 더 큰 산맥에 오르고자 한다. 더 이상 그를 '노무현의 남자'라 부르기 민망한 까닭이다. 과연 안희정이라는 이름은 노무현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정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국민 모두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안희정의 함께, 혁명>, 안희정 저, 웅진지식하우스, 2016.11.18, 14,000원



안희정의 함께, 혁명

안희정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16)


태그:#안희정, #노무현, #혁명, #박근혜,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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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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