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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삶은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의 영원한 욕망일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삶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신의 영역인 '불멸의 삶'을 넘보기 시작했다. 유전자 지도를 통해 생명의 비밀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인류는 과학을 통해 인간이 지닌 유한성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실제로 머잖아 인간은 신이 되기 위한 문턱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인간 역사의 대 서사시
▲ 사피엔스 인간 역사의 대 서사시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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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김영사)에서 인간 대장정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그는 "인간이 신을 발명할 때 역사는 시작되었고, 인간이 신이 될 때 역사는 끝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을 것 같다. 과학의 산물 사이보그를 진화된 '사피엔스'로 간주해야 할지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봐야할지도 혼란스럽다. 어쨌거나 '사피엔스'의 탄생과 발전과 미래를 저자를 따라 천천히 들여다보자.

사피엔스가 지구 파괴자가 된 세가지 사건

저자에 따르면 다른 종에 비해 훨씬 취약한 생존 조건을 지닌 사피엔스가 짧은 시간에 지구를 정복하고 지구 파괴자가 된 것은 세 가지 사건을 통해서였다.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약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역사의 진전에 속도를 더하게 한 약 1만 2천 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 인류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를 불과 500년 전 시작된 '과학 혁명'이 그것이다.

세 가지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사피엔스는 별로 주목받을 만한 동물이 아니었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열악하고 불완전한 생존 조건을 지녔기 때문이다. 머리가 큰 '사피엔스'는 미숙아 상태로 태어나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것도, 맘모스나 공룡처럼 힘이 센 것도 아니었다. 유사종인 고릴라나 침팬지보다 더 나은 생존 조건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인류의 역사는 다른 생명의 역사에 비해 무척 짧다.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불과 200만 년 전이다. 유전자 돌연변이와 환경의 압박으로 호모 에렉투스라는 새로운 인간 종이 등장한다. 호모 엘렉투스는 석기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고대 인류는 모두 6종이었다. 그들은 소규모 집단으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수렵채취생활을 했다. '인지혁명'이 일어나는 7만 년 전까지 약 200만 년의 긴 시간동안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

'농업혁명'을 기점으로 '사피엔스'의 역사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치명적인 전염병은 가축이 된 동물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해 작물을 심고 동물을 길들여 가축삼아 기르면서 대규모 죽음의 재앙의 뿌리도 함께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생명을 멸종시킨 인간 종은 같은 종마저 멸종시키고  '사피엔스'가 살아남아 유일한 정복자로 지구에서 역사를 이어나간다.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그동안 그런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상상의 건축을 역시 더욱 정교해졌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거의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 맞게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저자에 따르면 유일한 인간 종인 '사피엔스'가 살아남아 군림한 방법은 인공적 본능을 자극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만든 문화의 역동성 때문이다. 결국 인간 장치가 지닌 모순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풀어내느냐에 인간 존폐의 운명이 달려 있는 셈이다.

모든 문화는 나름의 전형적인 신념, 규범,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환경의 변화나 이웃문화와의 접촉에 반응해 스스로 모습을 끊임없이 바꾼다. 스스로의 내부적 역동성으로 인해 변이를 겪기도 한다. 인정된 생태계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존재하는 문화조차 변화를 피할 수 없다. 모순이 없는 물리법칙과 달리, 인간이 만든 모든 질서는 내적 모순을 지닌다. 문화는 이런 모순을 중제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이런 과정이 변화에 불을 지핀다.
'인지혁명'을 시작으로 '사피엔스'는 역사의 물꼬를 튼다. '농업혁명'으로 급물살을 타며 사피엔스가 지닌 인공적 본능을 강화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하며 역사의 흐름을 주도한다. 문제는 통제되지 않는 '사피엔스'의 욕망이다. 사피엔스를 욕망을 충족시킬 자연 자산은 더 이상 지구상에서 발견할 수 없다. 지구는 곳곳이 파괴되고 권력은 집중되어 있으며 욕망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사피엔스는 불경하게도 영원한 삶을 꿈꾼다. 방법은 '과학혁명'에서 찾고 있다. '과학혁명'으로 '사피엔스'가 신의 자리에 서는 순간 사피엔스가 바라던  멋진 신세계가 눈 앞에 펼쳐질 것인가.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신화는 호모 사피엔스로 하여금 종말의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만든다. 프랑켄슈타인 신화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기술이 발달할 경우,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대체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그 존재는 체격뿐 아니라 인지나 감정 면에서 우리와 매우 다를 것이다. 모종의 핵 재앙이나 생태적 재앙이 개입하지 않는 한 그렇게 될 것이란 이야기다.
'과학혁명'이 가져올 결과에 사피엔스의 종말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지 않는가? 저자는 암담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불멸을 향한 욕망의 무한질주를 결코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피엔스의 종말은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인가.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가' 자문하라고 주문한다.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과학이 하는 모든 일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길가메시 어깨에 목말을 타고 있다. 길가메시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이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에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 길가메시 수메르의 점토판에 쓰인 불멸의 영생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대 서사시.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통해 영생불멸의 길을 찾아 떠난 우르크 시 왕 길가메시, 불멸의 풀을 찾았으나 뱀이 빼앗아 간다. 길가메시는 그의 친구 엔키두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인간의 숙명을 한탄하며 우르크 시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불멸의 영생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찾으면서 평생을 보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2,000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김영사(2015)


태그:#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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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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