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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구관포형’이란 거대한 거북이가 어린 새끼들과 함께 당당하게 헤엄쳐 나아가는 형국으로 때가 되면 동해를 넘어서서 세상을 널리 헤아리며 포용할 기상이란 의미를 지닌다.
▲ 독도의 풍수학적 이미지 - ‘쌍구관포형’이란 거대한 거북이가 어린 새끼들과 함께 당당하게 헤엄쳐 나아가는 형국으로 때가 되면 동해를 넘어서서 세상을 널리 헤아리며 포용할 기상이란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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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스러운 날이다. 3년 만에 다시 독도를 찾아가게 된 것이다. 사실 온통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온 세상이 촛불행진으로 뒤덮인 날 제일 처음 찾아갈 곳은 백두산 천지가 적절할 것이다. 투명한 시야로 혼탁한 세상을 청정하게 뒤바꿀 혜안을 얻을 곳으로 그곳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두산은 북한 땅이니 찾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대안이 바로 민족의 주체적인 기상을 온전하게 담고 있는 독도이다. 독도는 풍수적 관점에서 쌍구관포형(雙龜觀包形)인 섬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용구수호형(龍龜守護形)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쌍구관포형'이란 거대한 거북이가 어린 새끼들과 함께 당당하게 헤엄쳐 나아가는 형국으로 때가 되면 동해를 넘어서서 세상을 널리 헤아리며 포용할 기상이라는 의미로, 많은 미래학자들이 말하듯이 2050년 통일한국은 세계 5대 강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예언과 일치한다.

동도와 서도로 나뉘어져 있다. 동도는 남쪽 비탈을 제외하고 60도가 넘는 벼랑으로 그 아찔한 기세가 감탄을 자아내며 독도경비대 숙소가 있다. 서도는 동도보다 조금 큰 섬으로 주민숙소가 있다.
▲ 독도 동도와 서도로 나뉘어져 있다. 동도는 남쪽 비탈을 제외하고 60도가 넘는 벼랑으로 그 아찔한 기세가 감탄을 자아내며 독도경비대 숙소가 있다. 서도는 동도보다 조금 큰 섬으로 주민숙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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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인들이 아무리 허튼 소리를 반복해서 내뱉더라도, "독도는 우리나라 땅"이다. 1914년에 경상북도로 편입된 독도의 현재 정식 행정구역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새 도로명 주소 : 독도리 이사부길 63)이다.

독도는 서도와 동도로 나누어져 있고, 그 외에도 공식적인 89개의 주변 바위섬으로 구성된 화산섬이다. 독도의 면적은 주변 바위 89개를 합친 2만 5517㎡이다. 독도는 본도 경북 울진군 죽변면에서 직선거리로 216.8㎞에 위치하고 있고, 포항에서는 직선거리로 257㎞에 지나지 않는다. 울릉도에서는 불과 87.4㎞ 떨어져 있어 일본의 오끼군도에서의 157.5㎞에 비해 절반 거리밖에 안 된다. 노랫말처럼, 독도는 울릉도에서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87.4㎞)'에 있다.

-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그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독도는 우리땅”으로 시작하는 박인호작사, 정광태 노래의 노래비가 울릉도 도동항 공원에 서있고, 멀리 포항을 오가는 썬플라워호가 보인다.
▲ ‘독도는 우리 땅’ 노래비 -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그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독도는 우리땅”으로 시작하는 박인호작사, 정광태 노래의 노래비가 울릉도 도동항 공원에 서있고, 멀리 포항을 오가는 썬플라워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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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독도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어져 왔다. 512년 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하술라주 군주)의 우산국 정벌 후 보고된 기록에서 독도를 지칭하는 '우산도'라는 명칭이 발견되었다. 1471년에는 삼봉도와 1794년 가지도로 불려 졌으며, 그 후 천산도, 간산도로도 불리었다. 아마도 우산도의 앞머리 우(于)를 천(千)자나 그리고 간(干)자로 잘못 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도(石島)'라는 명칭은 1900년 고종황제 칙령 제41호에 의해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울릉도와 독도를 공식적으로 표시하면서 부른 이름이다. 독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울릉도 개척민들이 '돌섬'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것이 '돍섬'으로 변하였다가 다시 '독섬'으로 개칭되었고, 독섬을 한자로 표시하면서 '석도'로 바뀌었고, 그 후 다시 '독도'로 불리어지게 된 것이다.

? 풍랑으로 인해 접안은 못했지만 <울릉도-독도> 노선을 운행하는 배의 선장님의 배려로, 독도 주변을 한 바퀴 선회한 후 시동을 껐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는 가운데 독도를 사진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 뉴골드스타 선장실 ? 풍랑으로 인해 접안은 못했지만 <울릉도-독도> 노선을 운행하는 배의 선장님의 배려로, 독도 주변을 한 바퀴 선회한 후 시동을 껐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는 가운데 독도를 사진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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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류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해양성 기후로 온난하고 다습한 독도는 해무리가 자주 끼고 눈과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 맑은 날을 보기 힘들다. 또한 눈이 많이 내리는 편이다.
▲ 짙은 안개 속의 독도(2013년) 난류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해양성 기후로 온난하고 다습한 독도는 해무리가 자주 끼고 눈과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 맑은 날을 보기 힘들다. 또한 눈이 많이 내리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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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입도하기는 쉽지 않다. 소위 하늘에 맡겨야 한다. 3차례 찾으면 한 번 정도 섬에 발을 내딛을 수 있다. 천운으로 2013년 5월 첫 방문 때에는 단번에 섬에 내렸다. 사실 그날도 하루 종일 안개가 끼어서 내심 독도에 내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독도경비대 소속 경찰들이 마중을 나오는 것을 보고 접안하게 되는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번 독도 방문은 용왕이 노하셨는지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오는 동안, 동해안에 너울파도가 2~3m로 높이 쳐서 함께 배를 탔던 여성들은 거의 구토를 일으킬 정도로 배의 흔들림이 심했다. 다행스럽게도 선장의 배려로 섬을 한 바퀴 선회한 후 시동을 끄고 사진촬영을 허용했다. 돌아가는 길은 더욱 더 험난했다.

독도 거주자는 이장부부를 포함하여 7세대 8명이 있으며, 그 외 독도관리소 직원과 경북지방경찰청 소속 독도경비대원들이 섬을 지키고 있다. 특히 독도경비대원들은 배가 접안할 때 여러 명이 합심하여 밧줄을 당겨준다. 그때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강한 연대의식을 느꼈다. 경비대원들은 독도를 찾아온 누구라도 친절하게 사진 촬영에 응해주어 좋은 이미지를 주고 있다.
▲ 독도경비대원과 인증샷(2013년) 독도 거주자는 이장부부를 포함하여 7세대 8명이 있으며, 그 외 독도관리소 직원과 경북지방경찰청 소속 독도경비대원들이 섬을 지키고 있다. 특히 독도경비대원들은 배가 접안할 때 여러 명이 합심하여 밧줄을 당겨준다. 그때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강한 연대의식을 느꼈다. 경비대원들은 독도를 찾아온 누구라도 친절하게 사진 촬영에 응해주어 좋은 이미지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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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욱(75)씨는 1987년 11월 2일자로 부부와 2남 2녀의 본적을 독도로 옮기면서 독도 호적자 1호가 됐다. 이후 독도 호적자가 서서히 늘었고 2016년 10월 17일 현재 독도 호적자는 3286명에 이른다.

고 최종덕씨는 1981년 10월에 경상부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 산63번지(서도)로 주민등록을 옮겨 최초의 '독도 주민'이 됐다. 독도 거주자는 독도 이장 김성도씨 부부를 포함하여 주민등재인원은 7세대 8명(등대직원 4명, 경찰공무원 2명)이다. 그 외 상주자는 독도관리소 직원과 경북지방경찰청 소속 독도경비대원들이 섬을 지키고 있다. 독도는 현재 대한민국이 관할하고 있는 분명한 우리나라 땅이다.

독도의 상징 조류이다. 괭이갈매기는 1만 5천여 마리로 가장 많은 개체수를 보이고 있는데,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맹금류의 침입을 집단으로 몰아낼 정도로 강한 단결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괭이갈매기 독도의 상징 조류이다. 괭이갈매기는 1만 5천여 마리로 가장 많은 개체수를 보이고 있는데,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맹금류의 침입을 집단으로 몰아낼 정도로 강한 단결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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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독도에 발을 디딜 때 가장 반겨 준 것은 괭이갈매기 무리였다. 배가 접안하는 동안에도 배 주변을 선회하면서 끼륵끼륵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내방객들을 독도경비대원들과 함께 환영해주었다.

독도에는 주민들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고 바다제비, 노랑지빠귀, 괭이갈매기, 황초롱이 물수리, 슴새, 흰갈매기, 흑비둘기, 까마귀, 딱새 등 약 22종의 새들이 함께 살고 있다. 특히 괭이갈매기, 바다제비, 슴새의 번식지로 인해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장 많은 것은 사람보다도 괭이갈매기로서 1만 5천 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식물로는 술패랭이, 갯까치수영, 박주거리, 땅채송화, 까마중, 댕댕이덩굴, 선괭이밥, 동백 등이 유명하다.

서도의 왼쪽 끝에 있는 바위로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형상의 독특한 모양으로 ‘물 먹는 코끼리 바위’라고 불린다.
▲ 코끼리바위 서도의 왼쪽 끝에 있는 바위로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형상의 독특한 모양으로 ‘물 먹는 코끼리 바위’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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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현저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석조문인 독립문을 빼닮은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대표적인 해식 아치의 바위로서 동도의 끝에 있다.
▲ 독립문바위 서울 현저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석조문인 독립문을 빼닮은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대표적인 해식 아치의 바위로서 동도의 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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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명물은 역시 아름다운 풍광이다. 그 절경을 구성하는 것은 역시 다양한 모양의 바위형상들이다. 2012년 국가지명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고시된 서도 봉우리의 공식 명칭은 '대한봉'이고, 동도의 봉우리 명칭은 <세종실록지리지> 등 역사문헌에 독도를 우산도로 기록하고 있는 역사적 근거를 반영해 '우산봉'으로 정했다고 한다.

독도주변 바위는 사람형상으로는 얼굴바위, 탕건봉, 상장군바위, 성인바위 등이 있고 동물형상으로는 코끼리바위, 닭바위, 용머리바위, 보찰바위 등이 있으며, 혼합형으로는 안용복 장군바위가 있다. 일반 사물형으로는 삼형제굴바위, 독립문바위, 한반도바위, 촛대바위 등이 유명하다.

1900년 10월 25일 독도를 울도군(울릉도)의 관할지역으로 선포, 독도의 영유권이 대한제국에 있음을 널리 알렸다.(독도박물관 소장-울릉도 소재)
▲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1900년 10월 25일 독도를 울도군(울릉도)의 관할지역으로 선포, 독도의 영유권이 대한제국에 있음을 널리 알렸다.(독도박물관 소장-울릉도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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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독도의 역사와 연혁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삼국사기>를 보면, 512년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을 신라영토로 편입한 것이 최초이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1454년 단종 2년 독도와 울릉도를 울진현에 속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1693년 숙종 19년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오끼섬 태수에게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다짐받고 확인문서까지 받아낸다. 1881년 고종 18년 일본어민들의 울릉도 근해 출어에 대하여 엄중 항의하는 한편, 공도정책을 철회하고 울릉도 개척령을 발표한다.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관보 제716호의 칙령 41호 제1조에 울릉도를 울도라 개칭하여 강원도에 소속시키고, 독도를 울릉군수의 관할로 고지하는 한편, 제2조에서 "군청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라고 발표하였다. 1905년 시네마현 고시 제40호에서 섬을 무주지로 간주하고 일본 제국 영토로 편입한다는 내용을 고시했는데, 1906년 울릉도 군수 심흥택이 이 사실을 알고 강원도 관찰사를 통해 대한제국 정부에 이를 보고하면서 처음으로 이 섬의 이름을 '독도'로 표기했다. 

바위에는 동, 서, 북쪽으로 3개의 아치형 동굴이 있으며, 바다 속으로 이어져 있다. 서도와 동도 그리고 굴바위를 합쳐 한때 독도를 ‘삼봉도’라 불렀다고 한다.
▲ 삼형제굴바위 바위에는 동, 서, 북쪽으로 3개의 아치형 동굴이 있으며, 바다 속으로 이어져 있다. 서도와 동도 그리고 굴바위를 합쳐 한때 독도를 ‘삼봉도’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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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국수산지 제1호에서 독도는 한국령으로 공식표시를 했으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독도의 행정구역을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산 42-76번지'로 정했다. 1953년 4월 27일에는 한국전쟁에 특무상사로 참전 경력이 있는 홍순칠 수비대장이 주도해 울릉도에 살고 있던 청년들을 중심으로 33인의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였다. 1997년 8월 독도박물관이 개관하였고, 1997년 11월 24일 500톤급 선박접안시설과 어민 숙소가 건립되었으며, 2004년 4월 북한에서 "조선의 섬 독도"라는 주제로 북한 독도 우표가 발행되었다.

아쉽지만, 심한 해일과 풍랑으로 독도에 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야 했다. 마치 수십 년 사귄 연인을 무인도에 혼자 두고 발걸음을 옮기는 듯해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 점차 멀어지는 독도 아쉽지만, 심한 해일과 풍랑으로 독도에 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야 했다. 마치 수십 년 사귄 연인을 무인도에 혼자 두고 발걸음을 옮기는 듯해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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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4일 일본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제정하여 영토분쟁을 촉발하였고, 경북 도의회는 2005년 6월 매년 10월을 독도의 달로 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했다. 2006년 한일관계 담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땅입니다.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입니다"라고 선언했으며 일본 외무성은 2008년 2월 독도가 일본의 영유권임을 주장하는 책자를 발간했다. 이에 맞서 동북아역사재단은 2008년 7월 반박자료를 발표했다.

일본영유권 주장에 대항하여 2005년 3월 24일 정부는 독도 입도 허가제를 '입도 신고제'로 변경하여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유로운 입항을 독려했다. "독도는 우리 땅"임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독도에 발을 내딛고 주체적인 민족 기운을 섬에 확실하게 남기고 돌아와야만 한다.

봄이 되어 대지에 움이 돋으면 모두들 묵호항이나 포항항으로 달려가 독도문화탐방을 떠나야 할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2017년 1월 1일 해돋이 시각을 23일 발표했는데, 새해 첫 해는 오전 7시 26분 독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해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미 마음은 다시 독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016년 초겨울 아쉽지만, 심한 해일과 풍랑으로 독도에 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야 했다. 마치 수십 년 사귄 연인을 무인도에 혼자 두고 발걸음을 옮기는 듯해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태그:#독도는 우리 땅, #독도, #아름다운 우리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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