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11 11:25최종 업데이트 17.06.07 11:06
행복지수 세계1위의 나라. 교육운동가 니콜라이 그룬트비(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 1783~1872)의 나라, 덴마크(Denmark). 150년 전, 덴마크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으로 국민의 절반, 영토의 40%를 잃었다. 하지만 좌절하고 실의에 빠졌던 덴마크 국민들은 총을 들고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닌, '삶을 위한 학교'를 세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폭염으로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여름, 오마이뉴스가 기획하는 꿈틀비행기 5호를 타고 28명의 일행이 함께 덴마크에 갔다. 7월25일부터 8월2일까지 7박9일 간 덴마크의 자유교육과 행복사회를 배우러 가는 여정이었다. 방문지들은 주로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Copenhagen)과 그 근교지역이었다. 하루하루 수수께끼를 풀 듯 행복사회의 비결을 찾는 여행. 이처럼 흥미로운 여행이 또 있을까? 특히 방문지마다의 특색과 그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그 연결고리들을 통해 내가 찾은 덴마크 사회의 행복비결은? 바로 '쉼의 교육', '사람중심의 소통시스템', 그리고 '행동하는 시민들' 이었다. [편집자말]

바다 한가운데서 일렬로 서있는 미들구룬덴(Middelgrunden) 풍력발전소의 풍경이 장관이다. 시민들의 출자로 만들어져 지금은 코펜하겐 전력의 4%를 생산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성공적인 협동조합이다. ⓒ 이정주


필요한 사람이 먼저 만든다... 행동이 '답'이다

행복국가 덴마크는 이미 우리의 이상이다. 너무나 이상적인 것을 볼 때면 우리는 대다수가 이렇게 생각한다. 거기엔 그런 좋은 환경이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 하고. 원래 문화가 그러니까 행복한 것 아닌가 하고. 세금을 많이 내니까 그렇지 않은가 하고. 정부 지원이 있으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 하고.


그러나 그들에게도 역시 그 과정은 극복해야 할 현실이었다. 그것은 이미 그들의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덴마크가 행복사회로 가는 데에는 분명히 순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시작은 가장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먼저 행동!(Act!)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행동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일단 그것이 성공하면 더 많은 다른 시민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정치와 법을 움직였다. 결국 그렇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낸 것이다.

애프터스콜레도 새로운 학교가 필요한 시민들이 처음 만든 것이었다. 지금 덴마크의 자유학교는 누구나 갈 수 있는 학교가 됐고, 또, 일반학교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오늘날 법 없이도 협동조합을 많이 만드는 나라가 덴마크다. 덴마크를 일으켜 세운 낙농협동조합들도 시민들이 만들었다. 풍력발전협동조합도 전력공급이 필요한 시민들이 조직하고 돈을 모아 만들었다. 지금 덴마크는 친환경에너지를 선도하는 나라가 됐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그룬트비 교회도 3대에 걸쳐 시민들의 모금으로 만들었다. 지금 그들은 종교개혁을 외쳤던 그룬트비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로운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안에서 찾자! 우리가 협동해서 만들자!"

나는 그룬트비가 왜 그 당시 그 말을 했는지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공식 일정 중 마지막 방문지는 풍력발전에너지 생산의 대표적인 주자인 미들구룬덴 풍력발전협동조합이었다. 1993년 설립된 미들그룬덴(Middelgrunden) 풍력발전협동조합은 50~60명의 주민들이 시작했다. 처음 협동조합을 시작한 5명의 이사들은 건설 분야의 엔지니어들이었는데, 3년 동안 계획을 하고 무려 7년의 시간에 걸쳐 풍력단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스웨덴이 바로 코 앞에 마주 보이는 덴마크의 동쪽 앞 바다였다.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풍력발전기에 달린 커다란 날개가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늘어선 모습이 무척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오늘날 덴마크에는 핵발전소가 단 한 개도 없다. 덴마크는 2050년까지 '화석연료 제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녹색국가다. 2020년까지 전체 전력소비량의 50%를 풍력에너지로 공급할 계획이었는데, 2015년도에 이미 무려 42%의 전기가 풍력발전을 이용해 생산된다고 한다. 국민들이 합의하고 실천하는 노력의 결과라고 하니 대단할 따름이다.

“협동조합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1인1표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권리를 갖습니다. 행복지수는 협동조합과 관계합니다. 필요한 사람들이 음식, 물, 에너지,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더불어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협동조합이었습니다.” ⓒ 이정주


"당시 많은 시민들이 참가해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지금은 터빈 1개당 평균 2300명의 소유주가 있는데, 많게는 8600명이 참가한 것도 있습니다. 또 국회미팅 등을 통해 체계적인 운영관리시스템을 만들면서 시민조합과 회사조합 등도 참여하게 되었고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25명의 지원그룹도 만들었습니다.

투자된 비용은 630억 원 정도였는데, 시민들이 직접 만드니까 정부 주도 사업보다 오히려 비용도 절감됐습니다. 모두들 놀랐죠. 지금도 이 규모는 세계적으로도 클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보유한 이 기술 또한 오늘날까지 전문가들도 따라가기 힘들만큼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미들구룬덴 풍력발전협동조합에 대한 역사를 생생하게 들려주신 분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조합의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협동조합의 이사였다. 73세의 노인이 된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젊은이 같은 생기가 넘쳤다.

사실 처음에 풍력 발전이 돈이 될 만한 사업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에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 당면 목표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미들그룬덴 풍력발전협동조합은 40MkW의 전력을 생산해 코펜하겐 전기의 4%를 만들어 내고, 4만 가구 이상의 가정 전력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전기를 판매해 수익도 내고 배당도 받는다. 또 시각적인 문제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을 염려하는 부유층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덕에 그 지역의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마치 전설적인 영웅담을 들려주듯 자랑스러워하는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협동조합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1인 1표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권리를 갖습니다. 행복지수는 협동조합과 관계합니다. 필요한 사람들이 음식·물·에너지·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더불어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협동조합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연륜과 경험에서 얻은 협동조합에 대한 열정과 확신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위대한 평민'이 되다

드디어 여행 마지막 전날, 코펜하겐 뉴하운에서 유람선을 타고 도심을 한 바퀴 유유히 돌았다. 배 안에서 한 여성 안내자가 설명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 순간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섞은 듯한 덴마크어가 노랫소리처럼 귓속에 흘러들어왔다. 참 아름다웠다.

순간 니콜라이 그룬트비(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가 떠올랐다. 그는 덴마크의 국부이자 교육자이자 목회자다. 특히 그는 모국어인 덴마크어 교육을 강조했다. 당시 덴마크 찬송가의 60% 이상이 그의 작품이라고 하니 그의 모국어 사랑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모국어 교육을 왜 그토록 강조한 것일까? 마침 다음 글에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민중이 자유로이 발언하고, 알고 싶은 것을 자유로이 배울 수 있고, 관료나 지식인들과 대등하게 설 수 있을 때에만 엘리트들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다. 차이를 차이로서 인정하고, 그 위에 상호작용하며, 차이를 포괄하는 형태로 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한다."(<삶을 위한 학교> 88~90쪽)

그룬트비는 정신적 자유를 강조하며, 민중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한 참된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국민의 대다수였던 농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엘리트층들이 배우는 라틴어가 아닌, 바로 농민들의 언어, 즉,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듣고 배워온 모국어인 덴마크어 교육와 토론 학습이 쉽고 유용했던 것이다.

오늘날 덴마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은 85%를 넘는 투표율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그가 꿈꾸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 그룬트비의 성공작이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 그의 '위대한 평민'들은 오늘날 다 함께 행복한 나라, 복지국가를 선택했다. 따라서 나는 그룬트비의 '삶을 위한 학교'가 바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대한 평민'을 길러내고, 오늘날 덴마크를 행복사회로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뉴하운(Nyhavn)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바라본 자유롭고 아름다운 카페 거리 풍경. ⓒ 이정주


우리 안에 덴마크를 만들자... 우리가 먼저 행복한 나라의 국민이 되자

사실 나는 가이드가 덴마크에는 의외로 고독사도 많고 자살률도 높고 이혼율도 높다고 설명했을 때는 내심 놀랐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유취재 시간에 우리가 길거리에서 만난 대부분의 덴마크인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넘어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길 바랐다. 그들은 자신의 형편에 대한 것이 아닌, 기아와 질병,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IS와 난민문제, 그리고 세계평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시 실천하고 있었다.

크리스티아나에서 수공품을 파는 한 여성은 수익금을 네팔의 아이들에게 보낸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덴마크에는 우리나라에서 장애아를 입양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그들의 행복의 기준은 우리와 달랐다. 그들은 이미 나 외에 다른 사람, 세계인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완벽한 사회는 없다. 하지만 국민들 대다수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회는 지구 상에 분명 존재했다. 2016년 10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촛불 정국을 보면서 행복사회가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촛불 정국의 이 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다른 것처럼, 만일 국민 대다수가 행복사회가 지구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또한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우리 교육제도에도 이미 제도적으로 도입된 것들도 꽤 많다. 자유학기제니, 혁신학교니, 운영위원회니, 전문진로상담 교사니, 평생교육센터니, 최근엔 학교협동조합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 크고 작은 대안학교도 있다.

강화도에는 드디어 한국형 애프터스콜레인 '꿈틀리 인생 학교'가 처음으로 세워졌다. 우리 안에도 이미 꿈틀대는 덴마크가 있다. 흩어져 있는 관계망을 연결하면 결코 작지 않을 뿐 아니라 연결고리가 좀 더 정교해 질 수 있을 것이다.  

함께했던 꿈틀비행기 일행들도 각자 자신이 맡은 일들 속에서 각자 덴마크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네트워크를 통해 소식을 공유하고 있다. 아이들과 독서 토론을 하는 선생님의 의미있는 활동도 있고, 이미 다음 번 꿈틀비행기 대기자들을 모으는 선생님도 있고, 나는 지금 생협의 조합원들과 일·학습 동아리를 만드는 재미에 빠져있다. 일·학습 동아리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마음 맞는 친구들을 찾아 함께 그 일을 만들어가는 모임이다. 이번 여행에 함께 했던 나의 동료들과는 생협에서 어떤 방식으로 '삶을 위한 학교'를 시작할지 논의 중이다.

그룬트비는 답을 밖에서 찾지 않고 그들 안에서 찾았다. 우리도 우리 안에서 찾자. 우리도 560만 명의 '위대한 평민'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에 '삶을 위한 학교'를 세우자. 가장 확실한 답은 그들처럼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먼저 만드는 것이다. 가장 빠른 길은 우리가 먼저 행복한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이다.

* 행복한 아이들, 행복한 사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덴마크가 있다는 희망도 보았습니다. 덴마크 자유학교와 행복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오마이뉴스 꿈틀비행기와 아이쿱생협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꿈틀비행기 5호 체험기입니다. 행복사회의 비결을 찾는 7박 9일간의 여행동안 자유교육을 중심으로 3가지 답을 찾았습니다. 첫 번째는 '쉼의 교육', 두 번째는 '사람중심의 소통시스템' 세 번째는 '행동하는 시민들'입니다. 이 글은 그 세 번째 '행동하는 시민들'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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