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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 무렵 밥을 먹다가 부모님에게
"나한테는 기대를 버리고 하숙생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당연 쌍욕을 먹었으니,
기껏 키워놨더니 그게 할 소리냐고 하셨다.
하지만 그 뒤로도 계속 날 하숙생으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90쪽

자식의 삶과 결정을 존중해주는 부모 덕분에 회사를 다니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읽는 순간 버킷 리스트로 '나 자신으로 살기'를 목록에 넣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우리 문화 풍토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겠다는 선언은 혁명처럼 들린다. 나도 때때로 내 자신으로 살고 싶지만 주변 눈치를 보고 상황을 살피다 보니 늘 마음 속 바람으로 끝나곤 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한 번도 내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 자기 자신을 재는 잣대도 나로부터가 아니라 타인의 눈길과 평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체면을 중시하고 수치심을 자극하는 유교 문화와 집안 분위기에 길들여진 탓이다.

나도 20대 중반 무렵 나로 살기를 꿈꾸던 적이 있었다. 통장에는 수 백만 원의 저축도 있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던 나는 끝내 유럽 배낭여행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대신 인도 여행에서 만난 독일 조각가를 만나러 가는 지인에게 비행기 삯을 빌려주었다. 독일로 날아가 조각가를 다시 만난 지인은 그 조각가와 결혼해서 독일에서 사진작가로 잘 살고 있다. 만일 그 때 내가 당당하게 나로 살기를 실천에 옮겼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충분한 당신에게 전하는 진짜 위로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충분한 당신에게 전하는 진짜 위로
ⓒ 마음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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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마음의숲>는 애매한 나이, 애매한 경력, 애매한 실력, 애매한 어른으로 자랐다고 고백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자유로운 영혼의 자기 선언서이다. 책의 갈피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복잡하게 사람의 그물망으로 얽힌 현대사회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나로 산다는 것이 버릇없음이나 불통의 삶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나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대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함께 살기의 노하우를 제시해준다.

책은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장은 '나의 삶을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한 실천 항목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남의 눈 높이로 자기를 평가절하하지 않기, 슈퍼 히어로의 삶이 아니라 자기만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 갈 것을 주문한다. 인생은 숫자로 매겨지는 점수판이 아닌 하나뿐인 자기의 삶을 완성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길과 숫자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 준비가 시작된 셈이다.

숫자라는 건
언제나 비교하기 쉽고 서열을 매기기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세모와 동그라미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길 수는 없지만
1과 2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결국 숫자의 삶이란
쉴 새 없이 비교되며 서열이 매겨지는 삶인 것이다.

아이큐가 지혜를 측정할 수 없고
친구의 숫자가 관계의 깊이를 증명할 수 없으며,
집의 평수가 가족의 화목함을 보장할 수 없고,
연봉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할 수는 없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담을 수 없는 것들에 있다. /31-31쪽

그렇다 우리는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에서 말한 것처럼 어른의 특징인 숫자로 평가되는 삶을 거부해야 한다. 신영복 선생도 숫자로 매겨지는 인생의 값어치로부터 자기 해방될 것을 주문했다. 숫자가 지배하는 사회의 통념을 과감하게 뛰어넘는 한 해가 되자.

두 번째 장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실천 항목이다.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75억 모두가 다를 것이다. 그저 그런 항목을 염두에 두고 자기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

세 번째 장은 불안에 붙잡히지 않기 위한 실천 팁이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삶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불안 요인들을 자기만의 문제나 비극으로 생각하지 말 것, 힘이 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불안감을 해소하여 무작정 달리지 말 것 등을 조언하고 있다.

네 번째 장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실천 항목이다. 아무리 자기 자신으로 살더라도 사회적 관계를 떠나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나답게 살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함께 하는 삶이 바로 나를 나로 살게 하는 힘일 것이다. 나와 나, 나와 너, 나와 자연의 유기적 관계망이 잘 이뤄질 때 나의 삶이, 또 다른 나인 너의 삶이 자기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 장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실천 항목이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을 때 맨 마지막에 남겨진 것이 '희망'이었다.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의 빛을 의지해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금세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절망만 할 일은 아니다. 희망이 더 이상 고문이 아니라 진정한 희망의 근거가 되게 만들라는 저자의 주문에 귀를 세워보자.

요즘은 희망을 논하는 것이 고문이 되었다.
맞다. 현실감을 잃은 희망은 아편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희망이 없다면 삶을 견딜 수 있을까.
언제나 최후의 진실은 현실의 기반 위에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것.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막연한 희망이나 대안 없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221쪽

마지막 장은 좋은 삶,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실천 항목이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진화중이다. 개인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도 불완전했고 현재도 불완전하며 미래도 불확실한 것이 인간 삶의 여정이다. 늘 예기치 않은 실수와 오차가 생기는 것이 삶의 여정이다. 어디에 복병이 숨어 있는지 언제 내 삶을 침범할 지 알 수 없는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누구든 더 나은 자기 자신을 꿈꾸며 산다. 그래서 여러 개의 항목 중 '인생에 여백과 바보비용을 둘 것'이라는 항목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인생이 언제나 딱 들어맞을 수도 효율적일 수도 없다
그러니 자책하고 후회하기보다는
실수와 오차를 위한 여백과
바보스러움에 대한 예산을 책정하는 편이 낫다.

그 오차와 실수에 대한 관대함이
우리를 보다 안전하고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265쪽

자, 이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준비를 마치고  혁명의 출발선상에 서 있는가. 당신과 나의 결단과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부디 한해 끝 인생 노트에 '나의 희망이 현실이 되었다' 는 멋진 메모가 남겨지길.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나는 나대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글. 그림/ 마음의숲/ 13,800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In the Jungle 에디션)

김수현 지음, 마음의숲(2016)


태그:##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버킷 리스트, ##진짜 나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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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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