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오프닝 16일 오후 7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김문정 음악감독이 직접 만든 '언젠가 이 세상이'를 시작으로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행사가 막을 올렸다. 이건명·최정원과 이날 남녀신인상 후보자들인 김지혜·이예은·홍서영·김성철·이상이·민우혁 외 앙상블들이 무대에 올랐다.

▲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오프닝 16일 오후 7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김문정 음악감독이 직접 만든 '언젠가 이 세상이'를 시작으로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행사가 막을 올렸다. 이건명·최정원과 이날 남녀신인상 후보자들인 김지혜·이예은·홍서영·김성철·이상이·민우혁 외 앙상블들이 무대에 올랐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우리가 함께하는 이 노래,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 언젠가 우리 이 세상이 우리 노래처럼 된다면, 어둠을 밝혀주는 이 불빛. 칠흑을 이겨내는 이 노래. 언젠가 이 세상이 우리 노래처럼 될 수 있다면." - '언젠가 이 세상이' 중에서

16일 오후 7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사)한국뮤지컬협회(아래 한국뮤지컬협회)가 주관한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김문정 음악감독이 작곡하고 오세혁 연출이 작사한 노래가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그리고 앞으로 이끌어갈 배우들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듣고 있다 보면, 자꾸만 시국이 겹쳐 보이는 건 과한 의미부여일까.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 무대에 올랐던 뮤지컬 작품을 아우르는 대규모 시상식이 팬들에게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뚜껑을 열기 직전까지 불안했던 시상식

하늘의 라흐마니노프에게 감사를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이진욱 음악감독이 16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에서 작곡/음악감독 상을 받았다. 라흐마니노프의 원곡을 변주하고 편곡하며 작품의 넘버를 만들었던 그는, '대필'이라고 자신을 낮추며 하늘의 라흐마니노프에게 영광을 돌렸다.

▲ 이건명 배우의 사회 16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은 베테랑 이건명 배우의 사회로 진행됐다. 손가락을 들고 "시상은 계속됩니다"라며 인공지능처럼 정확한 사회를 본 그는, 마지막에 굉장히 울림 있는 소감을 남기며 식을 마쳤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스포츠조선>에서 주최하던 '한국 뮤지컬 대상'이 지난 2013년 19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고, 한국뮤지컬협회가 <중앙일보>와 함께 준비했던 '더 뮤지컬 어워즈'도 2013년 제7회를 마지막으로 시상식을 열지 않았다. 2014년과 2015년의 경우 별도의 시상식 없이 수상자 발표만 하는 식이었으나 그나마도 2015년을 끝으로 완전히 문을 닫았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등의 여파가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계속되는 재정적 부담 등으로 후원사를 찾기 어려워진 게 진짜 원인이라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공공연히 전해졌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뮤지컬도 공신력 있는 시상식이 존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었으나, '누가 총대를 메느냐'는 질문에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이후로도 시상식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업계 그리고 팬들의 목소리는 커져만 가면서 자라섬뮤지컬페스티벌처럼 축제의 장이 열리기도 했다. 지난 2016년 11월, 본래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창작뮤지컬만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예그린뮤지컬어워드가 확대·개편하는 방향으로 제5회를 치렀다. 국내 무대의 모든 뮤지컬을 포괄하는 시상식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그런 가운데 '더 뮤지컬 어워즈'를 주최했던 한국뮤지컬협회가 독자적으로 공신력 있는 뮤지컬 시상식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언론사나 기업체 후원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뮤지컬협회가 주관하는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기대와 우려가 혼재했다. 특히 준비 과정이 그다지 깔끔하지 못했다. 전문가 심사위원 200명의 선정 기준과 명단도 명확하지 않았고, 사전 신청을 통해 일반인 심사위원 100명을 모집하는 과정도 홍보가 널리 퍼지지 못했다. 일반 관객 유료 티켓팅, 축하 공연 리스트업 과정 등에서도 계속 잡음이 일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시상식 무대 사진 및 영상 촬영의 경우, 사전 신청을 받았다가 급하게 취소하는 등 행사 자체가 급작스럽게 준비되는 듯한 모양새였다.

급기야 행사 당일 오전, 당초 참석 리스트보다 더 많은 인원이 불참할 것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행사 이틀 전인 지난 14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의 참석 명단에는 여우주연상 후보 차지연, 남우주연상 후보 홍광호, 남우조연상 후보 박은태만 불참하고 이외의 모든 후보는 참여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여우주연상 후보 중 한 명인 옥주현의 소속사 포트럭은 16일 <오마이뉴스>의 질문에 "불참한다는 이야기를 한국뮤지컬협회 측에 이미 했는데, 아직도 명단에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불참 사실을 확인해줬다. 남우주연상 후보 김준수의 소속사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측은 기자의 연락을 받지 않았으나, 타 매체 보도 등을 통해 불참 사실이 확인됐다. 뮤지컬협회 측은 이후 기자의 전화에야 "김준수·옥주현 배우는 불참하고, 양준모·정성화 배우는 <영웅> 연습 때문에 레드카펫은 불참하고 시상식만 참석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추가 불참자가 생기면서 취재 신청만 해놓고 취재를 포기하는 언론사마저 생겼다. 레드카펫 행사까지만 하더라도 드문드문 공백이 생기면서 어떤 배우가 오는지 기다리는 시간이, 배우들이 인사하는 시간보다 긴 진풍경마저 펼쳐졌다.

하지만 막상 시상식 본행사가 시작되자, 지금까지의 우려를 씻으며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드는 멋들어진 만듦새를 보여줬다.

한국뮤지컬어워즈, 결과로 말하다

시상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연하게도 시상의 결과다. 다수가 예상한 인물이든, 예상을 깬 파격적 인물이든 결과가 오픈된 뒤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보다 박수를 보내는 이가 훨씬 많다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는 그런 면에서 '성공적'이라고 평할 만하다. 참가자에게만 상을 주는 '참가상'도 아니었고, 대극장 라이선스에게 몰아주는 '돈 쓴 만큼' 주는 상도 아니었다. 불참자 중에서도 수상자가 나왔고 대극장과 소극장, 라이선스와 창작 구분 없이 골고루 돌아갔다. 작곡상과 음악감독상을 하나로 묶은 것은 다소 아쉬웠지만, 고생한 창작진들에게도 수상의 영광이 많이 돌아갔다.

예컨대 소극장 무대에 탭댄스를 접목시켜 신선함을 주었던 뮤지컬 <로기수>의 신선호 안무감독이 안무상을 탄 점이라든가, 라흐마니노프의 원곡을 응용하고 변주하며 새로운 뮤지컬 음악세계를 열었던 <라흐마니노프>의 이진욱 음악감독의 수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배우에서 연출로 변신한 뒤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45세' 추정화 연출이 신인연출상을 받은 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리며 백석의 시를 대사와 가사로 풀어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박해림 작가가 극본/작가상을 받은 점도 충분히 납득된다.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갈 신예들 지난 16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신인상은 <스위니토드>의 김성철, 여우신인상은 <위키드>의 이예은에게 돌아갔다. 시상자로 나선 조승우는 '자신은 타 본 적이 없는 상'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갈 신예들 지난 16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신인상은 <스위니토드>의 김성철, 여우신인상은 <위키드>의 이예은에게 돌아갔다. 시상자로 나선 조승우는 '자신은 타 본 적이 없는 상'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갈 신예들 지난 16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신인상은 <스위니토드>의 김성철, 여우신인상은 <위키드>의 이예은에게 돌아갔다. 시상자로 나선 조승우는 '자신은 타 본 적이 없는 상'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주연 이상으로 빛났던 조연들 16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진행된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의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은 <도리안 그레이>의 헨리 워튼을 소화한 박은태, 여우조연상은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이었던 신영숙이 수상했다. 박은태 배우의 불참으로 <도리안 그레이>의 브래든 부인이었던 구원영 배우가 대리 수상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주연 이상으로 빛났던 조연들 16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진행된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의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은 <도리안 그레이>의 헨리 워튼을 소화한 박은태, 여우조연상은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이었던 신영숙이 수상했다. 박은태 배우의 불참으로 <도리안 그레이>의 브래든 부인이었던 구원영 배우가 대리 수상했다.

▲ 주연 이상으로 빛났던 조연들 16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진행된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의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은 <도리안 그레이>의 헨리 워튼을 소화한 박은태, 여우조연상은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이었던 신영숙이 수상했다. 박은태 배우의 불참으로 <도리안 그레이>의 브래든 부인이었던 구원영 배우가 대리 수상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배우들 수상 부문의 경우, 후보들 면면부터가 탄탄해서 누구에게 상이 돌아가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여자 조승우가 되겠다"며 뮤지컬 배우가 됐다는 이예은 배우의 여우신인상,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어 조승우와 함께 연기하고 조승우에게 상을 받은 김성철 배우의 남우신인상 수상은 큰 무리가 없었다. 각 배우만큼이나 '시선 강탈'을 이끌었던 <킹키부츠>의 앙상블 팀이 앙상블 상을 수상한 점도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졌다. 축하공연을 맡아 '즐기러 왔다'던 신영숙 배우는,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으로 여우조연상을 탔고, 배우들의 '하드 캐리'가 돋보였던 <도리안 그레이>의 박은태 배우가 불참에도 불구하고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구원영 배우의 재치있는 대리수상 소감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2016년 뮤지컬을 빛낸 두 주연 16일,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이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킹키부츠>의 롤라였던 정성화가 남우주연상, <스위니토드>의 러빗부인이었떤 전미도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2016년 뮤지컬을 빛낸 두 주연 16일,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이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킹키부츠>의 롤라였던 정성화가 남우주연상, <스위니토드>의 러빗부인이었떤 전미도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2016년 뮤지컬을 빛낸 두 주연 16일,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이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킹키부츠>의 롤라였던 정성화가 남우주연상, <스위니토드>의 러빗부인이었떤 전미도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여우주연상은 <스위니토드>의 전미도에게 돌아갔다. "노래를 못해서 뮤지컬 배우라고 하기에 부끄럽다"는 망언(?)에 가까운 수상 소감은 "시어머니"로 귀결되며 웃음을 줬다. <킹키부츠>의 롤라 역이었던 정성화 배우는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더블 캐스팅이었던 강홍석 배우에게 많이 배웠다고 고마워했다. "아빠 상 탔다"며 아이처럼 기뻐하던 그의 표정은 잔상이 오래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쟁쟁한 창작극 후보들을 제치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2016뮤지컬작품상'을 받으며 대학로 소극장 창작뮤지컬의 저력을 확인했다. 대상은 2007년 이후 9년 만의 재연을 현실화하며 세상의 부조리를 폭로했던 <스위니토드>가 받았다. 그대로 가져와서 베끼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국내 관객에게 라이선스 작품을 소개해야 할지 지표가 될 만한 선례가 됐다.

백석이 된 배우 강필석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백석' 역에 트리플 캐스팅됐던 배우 강필석. 그가 지난 16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의 축하 무대에서 넘버 '어느 사이에'를 열창하고 있다.

▲ 백석이 된 배우 강필석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백석' 역에 트리플 캐스팅됐던 배우 강필석. 그가 지난 16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의 축하 무대에서 넘버 '어느 사이에'를 열창하고 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중력을 넘어서, 저 하늘로 뮤지컬 <위키드>의 엘파바를 맡아 인생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박혜나. 그가 16일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 축하무대에 나서 'Defying Gravity(중력을 넘어서)'를 열창했다.

▲ 중력을 넘어서, 저 하늘로 뮤지컬 <위키드>의 엘파바를 맡아 인생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박혜나. 그가 16일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 축하무대에 나서 'Defying Gravity(중력을 넘어서)'를 열창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오, 파리넬리! 신이 선택한 목소리! 16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진행된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에서 뮤지컬 <파리넬리> 팀이 축하 공연에 나섰다. 파리넬리 역에 카운터테너 루이스 초이, 리카르도 역에 이준혁 그리고 앙상블들이 함께 올랐다.

▲ 오, 파리넬리! 신이 선택한 목소리! 16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진행된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에서 뮤지컬 <파리넬리> 팀이 축하 공연에 나섰다. 파리넬리 역에 카운터테너 루이스 초이, 리카르도 역에 이준혁 그리고 앙상블들이 함께 올랐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뮤지컬 꿈나무들의 무대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학생 배우들(김찬, 김나현 등)이 함께 무대에 올래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Good Bye' 무대를 소화했다.

▲ 뮤지컬 꿈나무들의 무대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학생 배우들(김찬, 김나현 등)이 함께 무대에 올래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Good Bye' 무대를 소화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축하공연의 경우, 공연별로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이 역시 대극장 작품 쏠림 현상 없이 골고루 안배되었다. 다만, 마지막 축하 공연이었던 'Good Bye'의 경우,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하기에는 다소 아쉬웠다. 뮤지컬 꿈나무인 '학생 공연'이었던만큼 차라리 갈라쇼의 첫번째 순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뒤늦은 상상을 해본다.

한국뮤지컬협회의 심사위원 선정 과정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이에게 투표 기회를 주면서 소수의 평가에 가둬두지 않으려고 한 점은 긍정적이다. 18일, 한국뮤지컬협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전문 심사위원 200명의 투표로 진행하면서, 최대한 공정성을 기하려고 노력했다"라면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무원이나 관리자 중에서는 선정하지 않았다. 전국 공연장의 기획담당자,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회원들, 한국뮤지컬협회 소속 배우 및 작곡가 등 창작진 그리고 언론사 공연 담당 기자들이 심사위원들"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열린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의 경우, 전문가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과정이 허술했다는 지적이 시상식 이후 나왔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심사위원 개인의 경력이나 전문성 보다는 심사위원이 소속된 매체의 크기나 이름을 많이 고려했다"라면서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한 일간지 기자의 경우, 문화부 소속이기는 하지만 1년에 뮤지컬 관람횟수가 5~6회밖에 안 되는 인물이었다"고 전했다.

예그린뮤지컬어워드는 운영도 매끄럽지 않았다. 이날 시상식에 불참했으나 한 부문에 수상한 배우는, 본인이 상을 받은 줄도 몰랐다는 후문이다. 동료 배우들이 축하해줘서 뒤늦게야 알았고, 이후로 인터넷으로 자신의 이름과 상을 검색해봤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게 한 방 먹이다

무대를 뒷받침하는 앙상블 16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이 열린 가운데, 앙상블상은 뮤지컬 <킹키부츠> 팀에게 돌아갔다. 시상자로 나선 배우 송용진의 노란 리본과 노란 팔찌가 눈에 띈다.

▲ 무대를 뒷받침하는 앙상블 16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이 열린 가운데, 앙상블상은 뮤지컬 <킹키부츠> 팀에게 돌아갔다. 시상자로 나선 배우 송용진의 노란 리본과 노란 팔찌가 눈에 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을 받아 진행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행사이다. 하지만 실제 행사 진행과 심사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입김을 최소화하면서 역으로 '한 방' 먹이는 모양새를 취했다.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들'(아래 '시함뮤')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송용진 배우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과 노란 팔찌를 하고 시상자로 나와 스크린을 채웠다. 이날 행사 진행을 맡은 이건명 배우도 그의 노란 리본을 언급했다. 충분히 의미있는 장면이었지만, 그의 등장은 약과였다.

뮤지컬 <아랑가>로 연출상 후보 4명 중 한 명에 오른 변정주는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인물이며, 광화문 광장 무대에 올랐던 '시함뮤'의 연출이기도 하다. 또 다른 후보자인 김태형 연출 역시 블랙리스트이다. 연출상에 노미네이트된 연출 4명 중 2명이 블랙리스트라는 것도 생경한데, 다른 두 후보자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또 다른 후보인 이지나 연출의 작품 <곤 투모로우> 역시 시국 비판의 의미를 지니며 여러 '도라지' 관객의 마음을 위로했다.

연출상 수상한 오세혁 연극 대본을 쓰던 작가였던 그가 연출로 도전하고, 그것도 뮤지컬에 나섰던 것이 인정 받았다. 오세혁 연출이 16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연출상'을 받았다.

▲ 연출상 수상한 오세혁 연극 대본을 쓰던 작가였던 그가 연출로 도전하고, 그것도 뮤지컬에 나섰던 것이 인정 받았다. 오세혁 연출이 16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연출상'을 받았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후보자 오세혁 연출의 경우 윗분들이 보시기에 '요주의 인물'로 공공연히 찍힐 만한 인물이다. 블랙리스트 이름을 올린 그는, 파동 이후 문화·예술계 검열 움직임에 반대하는 '검열각하 권리장전 2016'에 <괴벨스 극장>으로 참여한 이가 바로 오세혁이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 오를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두 번째 작품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그와 그녀의 옷장> 역시 오세혁의 작품이다.

무엇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든 블랙리스트에 가장 열심히 반대한 인물 중 하나인 그가, 연출상을 수상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으로 상을 받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가 지휘를 맡은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이날 연출, 극본/작사, 작품상 3관왕을 휩쓸며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구시대적인 작업이었는지를 역으로 보여주었다. 지방에서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하겠다는 그의 수상 소감 역시 감동과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갈 신예들 지난 16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신인상은 <스위니토드>의 김성철, 여우신인상은 <위키드>의 이예은에게 돌아갔다. 시상자로 나선 조승우는 '자신은 타 본 적이 없는 상'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갈 신예들 지난 16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신인상은 <스위니토드>의 김성철, 여우신인상은 <위키드>의 이예은에게 돌아갔다. 시상자로 나선 조승우는 '자신은 타 본 적이 없는 상'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시국을 향한 조승우의 일침도 이날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였다. 시상식 중간, 무대 아래 객석으로 내려와 이날 시상식에 참여한 배우들의 짤막한 인터뷰 시간이 할애됐다. 사회자 이건명 배우는 즉석에서 생각나는 뮤지컬 대사나 가사를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조심스럽게 생각나는 노래가 있는데, 어디를 대상으로 콕 집어서 부르는 노래는 아니고요. 제가 좋아해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음, 의미부여는 아닙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조승우 배우는, '의미부여'가 아니라고 강조한 뒤에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막을 여는 넘버, '맨 오브 라만차'의 1절과 2절의 가사 한 구절씩을 붙여 노래했다.

"들어라, 썩을 대로 썩은 세상아. 죄악으로 가득하구나. 들어라 비겁하고 악한 자들아. 너희들 세상은 끝났다."

노래가 끝나자 옆에 앉아 있던 양준모 배우는 조승우 배우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비겁하고 악한 자들의 세상이 끝났다"는 그의 노래에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객석에서 터진 박수는 20초가 넘는 시간 동안 블루스퀘어를 가득 메웠다. 블랙리스트 파동 당시 조승우의 소속사 굿맨스토리는 "아마도 동명이인일 것"이라고 부정했지만, 조승우라는 이름 석 자도 블랙리스트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오브 라만차>라는 작품이, 돈키호테라는 인물이 무척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박수가 끝나자 이건명 배우는 짤막하게 그의 노래에 이렇게 응답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의를 위해 싸우던 어느 이상주의자의 이야기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라는 그의 말도 울림이 있었다. 그는 최근 뮤지컬 <금강>이라는 작품을 통해 민중혁명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한 바 있다. 시상식의 막을 내리며 이건명 배우가 남긴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도는 건, 이 배우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무대 위의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이기 때문 아닐까.

"이제부터 우리는 극장을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바로 이 무대 위 환상의 세계가 아닌, 극장 밖의 진짜 세계로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한가지만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뮤지컬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은 분명 허구입니다. 하지만 그 허구의 이야기 안에 담겨 있는 가치. 사랑, 우정, 용기, 희생 그리고 정의. 그 가치들은 분명 진실입니다. 이 세상 곳곳에서 뮤지컬이 공연되고, 또 공연되고, 또 공연되어 지면, 우리가 말하고 싶은 그 아름다운 가치가 뿌려지고, 뿌려지고, 또 뿌려지면, 이 세상은 분명 아름다운 뮤지컬 같은 세상이, 정의로운 뮤지컬 같은 세상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을 가슴에 안고,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막을 내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뮤지컬계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계속되는 경제 침체, 정권에 의한 문화/예술계 탄압, 관행으로 자리 잡은 악습들이 뮤지컬계를 좀 먹고 있다. 관객은 무시 당하고, 배우와 스태프는 박봉에 시달리며, 우리의 창작 역량은 제자리가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많다. '한국 뮤지컬 50년, 앞으로 50년'이라는 부제처럼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한국 뮤지컬계는 과연 위기를 딛고 비상할 수 있을까. 일단 그 전환의 첫 단추는, 나쁘지 않게 끼운 것 같다.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 결과
최고의 관객상: 김행선씨
남우신인상: <스위니토드>의 토비아스, 김성철
여우신인상: <위키드>의 네사로즈, 이예은
신인연출상: <인터뷰>, 추정화
앙상블상: <킹키부츠>
안무상: <로기수>, 신선호
무대예술상: <마타하리>, 오필영
작곡/음악감독상: <라흐마니노프>, 이진욱
극본/작사상: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박해림
연출상: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오세혁
특별공로상: 박만규
남우조연상: <도리안 그레이>의 헨리 워튼, 박은태
여우조연상: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신영숙
프로듀서상: <마타하리>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남우주연상: <킹키부츠>의 롤라, 정성화
여우주연상: <스위니토드>의 러빗 부인, 전미도
2016뮤지컬작품상: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 <스위니토드>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 한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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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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