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의 보이콧 속에 치러진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영화인들의 보이콧 속에 치러진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 부산영화제


예상했던 대로였다. 부산영화제 사태의 배후에는 청와대가 있었고, 중심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의혹의 실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특검이 부산영화제 예산 삭감을 김 전 실장이 직접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16일 알려지면서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부산영화제에 대한 압박의 실체가 확인되는 모습이다.

그간 부산영화제 압박의 실체가 청와대라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사안이었다. 그 중심이 당시 정무수석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든 조윤선 장관인지 아니면 그 윗선인 김 전 실장인지에 대해 심증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특검 조사로 구체적인 당사자가 확인되면서 부산영화제 외압의 실체가 확인된 셈이다. (관련 기사 : 부산영화제 예산 삭감도 청와대 지침?)

아직 확인이 안 된 부분도 있지만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부산영화제에 대한 부산시의 행정지도(감사)-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압박-감사원의 특별감사-2015년 예산 삭감-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른 부산시의 검찰 고발-이용관 위원장에 대한 검찰 조사 및 기소-2016년 정기총회서 해임'으로 이어진 수순이 청와대가 정한 방향으로 갔을 가능성이 짙어졌다.

서병수 부산시장도 특검 조사해야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영화인들과 만나 부산영화제 사태 이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영화인들과 만나 부산영화제 사태 이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 성하훈


특검의 수사가 여전히 진행형인 부산영화제 사태에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적 압박 이후 부산영화제는 상당히 큰 상처를 입었다. 초점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맞춰졌기에 이 전 위원장이 겪은 고통이 상당히 컸다. 개인적 비리가 없음이 드러난 사안인데도 검찰은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정치적 탄압에 의한 것이라는 항변을 무시하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전 위원장은 항소한 상태다.

부산영화제를 만들어 내고 20년 동안 키워온 노력은 정치적 탄압 속에 오랜 시간 쌓아온 공든 탑을 한 번에 무너뜨렸다. 영화인들의 부산영화제 보이콧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창설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전양준 부집행위원장도 지난 12월 쓸쓸하게 부산영화제를 떠났다. 청와대의 개입이 확인되면서 명예회복이 이뤄질 수 있을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서병수 부산시장에 대한 특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0일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서병수 시장에 대한 특검의 조사를 촉구했다.

시민단체들은 "부산은 '부산영화제 사태'를 통해서 박근혜 정권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 농단이 이루어진 지역으로, 그 중심에는 '친박 중의 친박'을 자처하는 서병수 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며 최근 특검의 수사를 통해서 서 시장은 '박근혜-김기춘-조윤선'으로 이어지는 '블랙리스트 커넥션'의 충실한 부역자였음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만큼 서 시장도 문화 농단과 관련해 특검의 조사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호 이사장도 도의적 책임 있어

 문황융성위원장 임명 당시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 청와대에서의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비서실장, 유진룡 문체부 장관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황융성위원장 임명 당시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 청와대에서의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비서실장, 유진룡 문체부 장관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해 민간 이사장으로 선임된 김동호 이사장의 입지도 불안정해지는 분위기다. 김 이사장은 최순실 게이트의 문화계 농단 핵심인물이 차은택이 문화융성위원으로 활동할 때 문화융성위원장이었다. 김동호 이사장은 문화융성위원장에 취임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문화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문화융성위원회는 문화계 농단의 주요 역할을 한 셈이 됐다. 당시 문화융성위원으로 있던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책 <한국 문화의 몰락>에서 "회의 리허설을 위해 1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자유발언은 대통령만 할 수 있으며, 질문은 일절 받지 않는 게 회의의 철칙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문화의 날과 관련해서도 "'도대체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몰랐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문화생활'이라는 걸 공연장이나 전시장 만들어 즐기는 것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이 더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에 대해서도 재판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견해를 밝혀, 정치적 탄압에 대해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 왔다. 최근에는 영화계 인사들에게 "이 전 위원장에게 명예 집행위원장을 제안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전 위원장은 "그런 제안을 일절 받은 적이 없다는데, 김 이사장이 그렇게 말하고 다니니 마치 내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며 불편한 마음을 나타냈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김동호 이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탄압이 확인된 상황에서도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 부산영화제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 됐을 때, 김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예민한 질문에 '잘 해결될 거라 그렇게 믿는다'는 답변으로만 일관했다"며 김 이사장의 처신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영화관계자도 "당시 항의 차원에서 문화융성위원장을 그만뒀으면 모르겠는데, 임기까지 다 채웠기에, 어느 정도 도의적 책임은 느껴야 할 부분이 있다"며 "정치적 압박이 드러났는데도 부산영화제가 이상하게 조용하다. 김동호 이사장이 지나치게 눈치 보기를 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부산영화제 청와대 김기춘 이용관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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