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은 벵거 때문에 우승을 못한다.' VS '벵거가 아니었으면 아스널은 진작에 몰락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아스널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평가하는 상반된 시선이다. 아스널이 2004년 이후 무관의 시간이 걸어지면서 거의 매년 이맘때마다 어김없이 거론되는 논쟁의 떡밥이기도 하다.

일단 '팩트'부터 접근해보자. 아스널은 올해도 리그 우승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2월 들어서 왓포드와 첼시에게 2연패를 당한 아스널은 선두권과 승점 12점차로 벌어졌다. 특히 1위 첼시와의 맞대결은 아스널이 올시즌 리그 우승의 희망을 살릴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평가받았기에 타격이 더 컸다. 현재 첼시의 가공할 페이스를 감안할 때 남은 14경기에서 승점 12점을 뒤집는다는 것은 냉정히 말해 쉽지 않다.

아스널은 2004년 전설의 무패우승 이후 더 이상 EPL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꾸준히 4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며 챔피언스리그 티켓은 따냈지만 올시즌에는 그마저도 녹록치않아보인다.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토트넘-리버풀-맨시티-맨유까지 UCL 티켓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나마 벵거의 아스널을 지탱해왔던 마지막 심리적인 마지노선인 UCL 티켓마저 좌절된다면 벵거 감독의 입지는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스널이 최근 10년넘게 우승 경쟁에서 좌절하는 패턴이 항상 똑같다는 점이다. 벵거 감독은 자신이 구축한 선수단과 축구철학에 대한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하다. 모든 지도자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벵거 감독의 경우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을 맛본 지도자들의 경우, 과거의 경험이 오히려 변화를 가로막는 독이 되기도 한다.

한때 EPL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으나 지금은 격차가 벌어진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과 벵거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대에 EPL에서 한 팀의 장수 감독으로 성공신화를 써내려왔다는 점에서 자주 비교대상에 오르내린다.

퍼거슨은 맨유에서 27년이나 장기집권하면서도 지나간 성공에만 안주하여 매너리즘의 틀에 갇히지 않았다. 특정 선수나 고정된 전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플랜 A가 통하지 않으면 항상 두 번째- 세 번째 대안을 어떻게든 찾아내며 끊임없는 혁신을 통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강력한 팀을 만들어냈다. 맨유는 퍼거슨 감독이 은퇴하는 순간까지 EPL 최강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지금도 유럽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천하의 퍼거슨도 맨유 부임 이후 초창기 몇 년은 부진했다. 1990년 FA컵 첫 우승 전까지는 경질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퍼거슨의 리더십이 정착된 90년대 이후로는 수많은 위기와 도전을 극복하고 결국 맨유를 EPL의 끝판왕으로 완성시켰다.

벵거의 성공신화는 퍼거슨과는 반대에 가깝다. 아스널에서 벵거가 거둔 놀라운 성공은 주로 초창기 10년 이내에 몰려있다. 당시 벵거 감독의 체계적인 선수관리와 유망주 육성, 저비용-고효율의 합리적인 투자 정책은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어느새 변화를 외면하는 낡은 고정관념과 아집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아스널이 시즌 고비마다 무너지는 패턴은 항상 똑같다. 로테이션과 플랜 B의 부재로 인하여 주전 선수들에게 과도한 체력적-전술적 과부하가 걸린다. 상대팀에 따라 유연한 전술운용없이 벵거 스타일의 축구만 고집하다가 꼭 챙겨야할 승점을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리그 우승권 강호들과의 빅매치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도 아스널의 고질적인 한계다.

물론 우승 트로피만이 평가 기준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스널 정도의 클럽이 오랫동안 정상을 밟지 못하는 것은 분명 구단의 플랜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매년 같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않고 변화에 인색한 벵거 감독에 대하여  팬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으로 벵거 감독이 사라진 아스널은 과연 지금보다 강할까하는 의구심도 존재한다. 싫든좋든 아스널은 20년 넘게 벵거 감독과 함께 유럽의 강호로 군림해온 팀이다. 현재 아스널 주축 선수들 중에는 벵거 감독 때문에 아스널에 입단한 선수들도 적지 않다. 맨유가 퍼거슨의 은퇴 이후 수년간 부침을 겪었듯이 아스널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분명한 것은 어떤 선택이든 위험부담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앞서 퍼거슨과 벵거의 차이점에서 언급했듯이, 맨유와 아스널 역시 전혀 다른 구단이다. 아스널도 벵거 감독과 천년만년 함께 할 수는 없고 언젠가는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아스널이 벵거가 떠난 이후에 오히려 성적이 추락한다면 그것은 그 이후의 문제다. 10년 넘게 우승을 이루지못한 벵거 감독이 없어서 부진하다면 결국 어차피 우승할수 없는 팀이었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아스널은 올시즌을 끝으로 벵거 감독의 계약이 만료된다. 벵거의 나이도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최근 잦아진 아스널 팬들의 원망과 야유는 벵거 감독과 구단에게도 큰 부담감으로 다가올만하다. 오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 결과에 따라 벵거 감독과 아스널의 21년 동행에도 큰 분기점이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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