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만으로 연기하기에 흔히 '얼굴 없는 배우'라고도 불리는 성우들이 몸과 표정을 모두 보여주는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 경력 3~4년차부터 18년차까지의 성우11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그룹 '육감'은 지난 2014년 MBC 출신의 표영재 성우가 주축이 되어 4년째 다양한 연극 공연으로 관객을 찾아가고 있다.

소리 연기와 신체 움직임 위주의 무대 연기의 간극을 좁혀 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육감'의 공연은 <갈매기> <리투아니아> <마음의 범죄> 등을 선보였으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그밖에도 이들은 <진실게임>과 <자정의 픽션> 낭독극 등 다양한 작업을 이어왔다.

2017년 프로젝트 육감은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희비극 <바냐삼촌>으로 돌아왔다. 오는 21일 첫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이들을 지난 9일 만나봤다.

성우들, 숨겨온 표정을 보여주다

 오는 21일 공연을 앞둔 성우들이 마지막 런 스루를 하고 있다.

오는 21일 공연을 앞둔 성우들이 마지막 런 스루를 하고 있다. ⓒ 정세진


"당신은 젊고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난 늙고 송장과 같으니까. 그렇지?"

오프닝을 알리는 음악과 함께 런 스루(조명과 음향, 배우의 동선 등을 최종 체크하는 작업)가 시작되자 11명(더블 캐스팅 포함)의 성우들과 이상옥 연출을 포함한 스태프들은 숨을 죽이며 진지하게 지켜본다.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바냐삼촌>은 체호프의 4대 장막 희곡 중 한 편으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누이의 남편이 있는 시골 별장을 관리해온 주인공 바냐는 성실함과 희생으로 묵묵히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하지만 퇴직한 매부가 젊고 아름다운 후처를 데리고 별장을 찾으면서 바냐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게임 '스타크래프트2'의 짐레이너를 연기한 성우 최한과 <쿵푸팬더>의 맨티스 역을 맡았던 성우 방성준이 주인공 바냐삼촌을 맡아 열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방우호, 한미리, 김나율 성우 등이 뷰포인츠와 스즈끼 메소드 등의 신체 훈련을 거쳐 무대에 오른다.

이상옥 연출은 "말로 연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도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며 "신체 훈련에 사용된 뷰포인트나 스즈끼 메소드(아이가 언어를 배우듯 다량의 체험을 통해 익히는 방법)는 배우들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고급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뷰포인트란 1970년대 안무가이자 뉴욕대 연극과 교수인 메리 오버라이가 배우와 무용수, 공연예술가들의 훈련프로그램으로 만든 방법론이다. 시간과 공간을 이용한 특정 움직임의 원리와 시점을 말하며 신체적인 접근으로부터 캐릭터와 공연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 훈련법은 구르고 뛰는 등의 격한 움직임과 갖가지 감각훈련을 포함하는데, 성우들은 1년에 3~4회, 각 2주간의 워크숍을 통해 몸을 사용하는 연기에 익숙해지고 무대에 올라가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연습을 한다. 다만 연극배우들보다 성우들이 유리한 점은 발음과 화술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리딩 단계에서 이미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는 점이라고 이상옥 연출은 덧붙였다.

이상하고 순진하고 바보 같은 것들이 삶을 견뎌내는 방법

 오는 21일 공연을 앞둔 프로젝트 '육감' 성우들이 런 스루를 하고 있다.

오는 21일 공연을 앞둔 프로젝트 '육감' 성우들이 런 스루를 하고 있다. ⓒ 정세진


특히 사실적이면서 시적인 대사로 유명한 <바냐 삼촌>은 일상적 언어 뒤에 숨은 의미를 찾는 작업을 통해 텍스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여주인공 옐레나 역을 맡은 한미리 성우는 "연극 무대에서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이 드러나는 느낌"이라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가고 감정과 확신을 갖지 않으면 무대 위에서 표류하게 된다"는 말로 성우 연기와는 다른 무대 연기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낮에는 성우라는 본업에 종사했다가 밤에 짬을 내어 연습을 하기 때문에 늘 시간이 부족하다. 한 성우는 그러나 "힘들고 지치면서도 공연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또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신기하다"고 말한다.

한편 바나 삼촌 역의 방성준 성우는 연극에 도전하면서 얻은 것은 '자신에 대한 재발견'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자유롭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못했고, 솔직하다 생각했지만 솔직하지 못했던 내 감정의 내면에 대해 바라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방 성우는 "우리는 말에 능통하다 보니 몸이나 감정보다는 말이 앞서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누군가를 움직이고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행동과 감정임을 깨닫게 된다"고 연극무대의 의미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프로젝트 '육감'에 동참하고 있는 성우들은 공연을 위해 열정과 시간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제작비 또한 일부 부담하고 있다. 매년 공연을 할 때마다 100만원에서 200만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는데 이는 극에서의 역할 비중과 상관없이 같은 액수로 나눈다고 한다. 조명이나 무대 디자이너들 중에서는 일종의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이들도 많으며, 티켓 값도 관객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통상 2~3만원인 대학로 일반 연극보다 저렴한 1만 5000원으로 책정됐다.

"좋고 예쁘고 똑똑한 것이 환영받는 세상에서 이상하고 순진하고 바보 같은 것들이 삶을 견뎌내는 방법을 보여준다"는 <바냐삼촌>의 연출의도처럼, 프로젝트 '육감' 멤버들과 연극 제작진은 배우가 열정을 다하면서 관객과 즐거움을 나누는 공연을 추구하고 있다.

연극 <바냐삼촌>은 오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 동안 서울 종로구 명륜동 아름다운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 <바냐삼촌> 런스루 주요 장면들 오는 21일 <바냐삼촌> 공연을 앞둔 프로젝트 '육감' 성우들이 마지막 런스루를 하고 있다. ⓒ 정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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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관련하여 식생활 문화 전반에 대해 다루는 푸드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대학가의 음식문화, 패스트푸드의 범람, 그리운 고향 음식 등 다양한 소재들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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