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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말로 결혼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된 세대.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도 혼자 혹은 누군가와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가능성, 존재할까.
 내 나이 서른여섯, 삼십을 훌쩍 넘긴 나이. 친구들 채팅 창 프로필 사진은 언제부턴가 낯선 아기들 사진으로 바뀌어 있고 명절 때가 다가오면 단톡 창엔 가짜깁스 사용법이라는 링크가 공유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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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을 준비로 분주한 주방, 엄마가 묻는다.

"총각김치 1개면 돼?"
"아니, 난 2개, 김치라도 많이 줘. 총각아, 내게 와라~"

내 나이 서른여섯, 삼십을 훌쩍 넘긴 나이. 친구들 채팅 창 프로필 사진은 언제부턴가 낯선 아기들 사진으로 바뀌어 있고 명절 때가 다가오면 단톡 창엔 가짜깁스 사용법이라는 링크가 공유된다. 다들 입을 모아 자유 연애를 부르짖으며 나를 부러워하지만, 남의 속도 모르고.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도 혼자인 건 싫다.

나는 전형적인 미인상이 아니다. 원래부터 이렇진 않았다.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겨 성장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돼 얼굴과 손, 발, 코, 혀, 입술 등 신체의 말단 부위가 커지고 굵어지는 '말단 비대증'이란 병을 오래 앓아 지금 같은 외모가 됐다.

워낙 희귀병이라 그 누구도 내가 그런 병일지는 꿈에도 몰랐다.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변해가는 외모에 대한 질타는 오롯이 내가 감수해야만 했다. '그것도 얼굴이냐, 여자가 손발이 그렇게 커서 어떡하냐, 넌 어째 살 하나 못 빼냐'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한솥밥을 먹는 가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이런 병이 있단 걸 알게 됐고 내 증상과 똑같이 들어맞아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MRI로 찍은 뇌 사진을 봤더니 시신경을 잔뜩 누를 만큼 크게 자란 덩어리가 뇌 중앙에 떡 하니! 말단 비대증 확진.

속이 후련했다. 그 오랜 시간 거울 앞에 서서 나를 혐오했던 시간. 살도 못 빼는 의지박약아라며 나를 책망했던 시간. 나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종양을 없애기만 하면 외모가 예전처럼 돌아가리라는 허튼 기대도 품었다. 의사에게 졸업!이라는 말을 듣기까지 5년 동안 2차례 수술을 받았다. 종양이 완전히 없어지자 신기하게도 몸의 부기부터 빠졌다. 열심히 운동도 하니까 체중도 급격하게 줄었다.

그런데 체중이 빠지니까 그동안 자란 턱과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여 어딜 가나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엔 성장 호르몬이 과도하게 나와 주체할 수 없었던 머리숱이 종양이 없어지자 얇고 가늘어졌다. 하지만 이미 비대해진 뼈대, 굵어진 목소리, 커진 손발은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아팠던 흔적을 지우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외모도, 마음도...

오늘도 총각김치만 우걱우걱 씹는다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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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분명히 치료 과정을 이겨낸 승자인데 왜 패배자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수년간 나를 괴롭히던 세포 덩어리가 없어졌단 기쁨은커녕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어땠겠냐는 질문에 갇혀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내가 아팠기 때문에 겪었던 일렬의 사건들을 곱씹으며 분노하거나 내가 아팠던 사람이기에 앞으로 겪을지 모르는 일에 대해 쓸데없이 상상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도 없는데 누군가 프러포즈를 하며 내민 결혼반지가 손가락에 맞지 않는다든지 '난 아픈 며느리는 싫다'라며 하얀 봉투를 내미는 시어머니 모습이라든지.

여자를 애를 낳는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욕하면서도 나는 병적으로 생리 주기에 집착하며 내 자궁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다. 내가 아팠던 게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들과는 사이가 오래 유지됐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금방 끝났다. 그럴수록 마음의 문은 더 닫혀만 갔다. 밖에서 기웃기웃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문을 열라고 쾅쾅 두드리고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 집 숙희가(스투키 화초) 험악한 냥이들의 괴롭힘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는 건 내가 사랑을 많이 줘서다. 하물며 식물도 사랑을 받으면 저렇게 잘 자라는데 사람은 말해 뭐할까. 나도 사랑받고 싶다.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그분들의 사랑은 잘 알겠고 고맙게 생각하는데 그거 말고! 남자, 남자의 사랑이 받고 싶다. 마스카라를 공들여 하거나 금방이라도 발목이 삘 것 같은 킬힐을 신으며 '이건 나를 위한 일'이라는 자위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정말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진즉 관절에도 무리가 안 가고 편안한 효도화를 신었을 텐데...

어느 순간, 정말 내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자 거짓말처럼 입던 옷들이 안 맞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눈을 뜨는 일이 귀찮게만 느껴졌다. 오버사이즈 디자인이 유행할 때 사둔 검정 코트로 지난겨울을 겨우 났다. 따뜻한 봄바람이 차디찬 겨울바람보다 싸늘하게 느껴진다. 괜히 볼이 메도록 총각김치를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어 삼켜본다.

마지막으로해본데이트가 윈도우업데이트
▲ 마지막으로해본데이트가 윈도우업데이트
ⓒ 손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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