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진출처 : pixabay.com
 사진출처 : pixabay.com
ⓒ pixabay.com

관련사진보기


"5월 1일은 내가 쉴 것 같아. 그러니까 2일은 어머님이, 4일은 당신이... "
"나는 시간이 안 돼. 주 20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일할 수 있는 일수가 얼마 없어"
"에미야, 나도 2일은 노인대학 가야 하는데... "

5월 연휴, 나와 어머님, 남편. 이렇게 3명이 하루씩 번갈아가면서 아이를 돌보면 되겠다 싶던 나의 계획은 이렇게 무참히 깨졌다.

두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이미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 큰 아이는 학교 재량 휴업일이라고 학기 초부터 알려왔었고, 둘째 유치원마저 개교기념일이라고 5월 4일에 휴원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이 모두 연휴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 학교와 기관은 쉬는데, 정작 부모는 쉬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새로 시작한 일 때문에 안되고, 어머님의 일정 때문에 안되었다. 결국, 아이를 학교장 재량 휴업일에도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물론, 학교장 재량 휴업일에도 아이는 등교시킬 수가 있었다. 학교에서 수요조사를 위한 안내장을 보내왔고, 안내장에는 아이가 먹을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해서 등교시키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나는 쉽게 등교참여란에 동그라미를 칠 수 없었다. 워킹맘들을 위한 제도, 시스템, 모든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쉽게 참여란에 동그라미를 칠 수 없었을까?

회사에 넌지시 물었다.

"5월 2일하고, 4일, 이틀 휴가를 내려고 하는데... "
"네? 이틀이나 휴가를 내시겠다고요? 업무백업은 어떻게 할 예정인가요?"

나는 눈치껏 5월 4일 하루만 휴가를 냈다. 올해로 직장생활 16년 차다. 근무 연한에 따라 배정되는 연차가 올해도 22일이나 있다. 하지만, 5월에 연휴에 나는 쉽게 휴가를 낼 수 없었다. 나는 왜 쉽게 휴가를 내지 못하는 걸까?

사진출처 : pixabay.com
▲ <사진2> 사진출처 : pixabay.com
ⓒ pixabay.com

관련사진보기


제도는 있지만, 활용하기는 어려운 이유

16년 직장생활 동안 두 아이를 낳아 두 번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냈다. 말도 못 하고,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며 일을 다시 시작했다. 아이가 아파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회사 화장실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회사 생활을 이어왔다. 내가 독해서 일을 유지했다기보다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 나를 지독하게 일터로 몰았다.

아이는 이제 엄마는 회사, 자기들은 학교와 유치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아파도 엄마가 곁에 없을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저녁은 할머니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당연히 받아들인다. 일과 육아가 모두 개인 부담인 사회에서 우리 가족은 이렇게 변화를 했다.

하지만, 이런 개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는 그 느낌이 더 커졌다. 학교 행사의 학부모 참여는 당연히 아빠보다는 엄마의 참여를 고려하여 편성되었고, 엄마들 중 대부분이 전업맘이라는 전제하에 편성된 것 같았다. 학부모가 참여해야 하는 입학식, 학부모 총회, 학부모 상담, 대운동회가 모두 평일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 반 모임도 평일 오전에 이루어졌고, 아이들 생일잔치도 대부분 평일 낮에 이루어졌다. 워킹맘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직장인인 나는 당연히 모든 행사에 참여할 수 없으니 중요한 것 위주로 취사선택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1~2번의 휴가를 내는 일은 여전히 눈치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직장에서는 개인의 사정은 고려대상이 아니니까. 직장에서는 조직이 먼저이니까.

이렇게 휴가를 내고 학교행사도 열심히 참여하지만, 나는 이 사회에서 계속 소외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워킹맘을 고려한 돌봄 교실도 있고, 휴업일에 아이를 등교시킬 수도 있지만, 아이가 먹을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하려면 평소 출근 시간보다 1시간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어차피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하느니 주말에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을 보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킹맘들을 위한 제도는 있다. 하지만 뭐랄까 볼 수는 있지만, 먹을 수는 없는 '굴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정에 높이 매달려있는 굴비는 손이 닿지 않는다. '자 굴비를 원했잖아. 먹어봐 한번. 스스로 노력해서! 못 먹는 이유는 네가 선택하지 않거나 노력이 부족한 탓이야!'

pixabay.com
▲ <사진3> pixabay.com
ⓒ pixabay.com

관련사진보기



문화의 탈을 쓴 거대한 관습이라는 산

나라의 정책이나 학교, 그리고 회사의 조직문화가 워킹맘 개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문화가 아빠의 일은 생계가 달린 주된 책임이며, 엄마의 일은 보조이고 주된 책임은 육아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문화라는 탈을 쓴 거대한 관습의 흐름 속에서 워킹맘은 소수이며, 소수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배려받지 못했다. 이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행사의 경우 일하는 엄마들을 배려해서 주말에 행사를 하곤 했다. 학교상담은 엄마의 참여를 많이 요구하지도 않았다. 공교육의 대표인 학교가 사립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워킹맘을 더 배려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책이 얼마나 소수를 배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한 단면이다. 그래서 초등학교가 워킹맘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래서 소수가 되지 않기 위해, 다수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기를 쓰고 사교육을 하고, 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관습이 허락하는 안전지대에 들어가야 나와 내 가족이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거대한 믿음이 본능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ixabay.com
▲ <사진4> pixabay.com
ⓒ pixabay.com

관련사진보기



워킹맘에 대한 배려, 학교에서 먼저 이루어졌으면...

학교라는 곳은 다음 세대 국가를 이끌어 갈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다. 교육에서 관습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 워킹맘들도 똑같을 것이다. 문화와 관습은 다르다. 문화는 아름답지만, 관습은 버려야 할 것이다. 누군가 소외되고 공공의 이익에서 늘 불평등을 당한다면 그 사회의 발전은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많은 우수한 여성인력들이 거대한 관습 앞에서 경력단절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워킹맘에게 아기 때보다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한 곳은 학교이며 공교육이다. 현재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미취학 아동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면 조금 아쉽다. 그들이 진정 이 나라에서 유능한 여성 인재들을 유지하고 싶다면, 다음 세대를 위한 발전을 도모하고 싶다면, 관습을 바꾸려는 노력이 교육정책에 스며들어야 한다.

물론 5년 안에 큰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워킹맘을 배려하는 기본 정책, 끊임없는 홍보, 지속적인 노력, 학교에서 먼저 해주면 안 될까? 사회 변화가 단기간에 변화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 (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워킹맘육아, #워킹맘일상, #대선후보자들께, #호소합니다, #이혜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