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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1일 오후 대전 중구 서대전공원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1일 오후 대전 중구 서대전공원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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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후보께,

잘 지내셨는지요? 막바지 유세에 무척 바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은 후보께 드리는 두 번째 편지입니다(관련기사: 트럼프처럼 대통령 되려면... '홍트럼프'를 향한 조언).

먼저 '샤이 트럼프 지지자'로 불리던 유권자에 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대선 직전까지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클린턴 승리'를 점쳤습니다.

과학적 조사를 통해 선거결과를 정확한 예측하기로 정평이 난 <뉴욕타임스>는 선거 당일까지 '85% 확률'로 클린턴의 승리를 예견했습니다.

한때 <뉴욕타임스>의 예측 시스템은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을 93%로 높여잡기도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트럼프 비디오'를 입수해서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이 영상에는 트럼프가 여성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발언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뒤 10월 중순부터 말까지도 <뉴욕타임스>는 클린턴의 승률을 90%대로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선거 뒤 뚜껑을 열어보자,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지요.

그제서야 언론은 숨어있던 '샤이 트럼프 지지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샤이 트럼프 지지자'의 자아분열적 선택

위세 높던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대다수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이 빗나간 이유는 무엇일까요?당연히 유권자들이 여론조사 때 응답했던 것과는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가운데 오래 전 트럼프에게 투표하기로 마음을 정했지만,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널리 알려진 분석입니다만,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려고 합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왜 여론조사 때 자신의 생각을 숨겼을까요? 여론조사 기관은 대체로 응답자들의 비밀을 보장합니다. 설문조사에 솔직히 답하는 것은 번화가에서 '나는 트럼프 지지자다!'라고 외치는 것과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겁니다.

저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하나는 언론학에서 '침묵의 나선'이라고 부르는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깊은 수치심'입니다.

'침묵의 나선'이란 자신의 의견이 '소수 견해'에 속한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다수 의견이 지배적일수록 소수 의견을 피력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미국 언론과 조사기관은 선거운동이 펼쳐지는 기간 내내 '클린턴의 압도적 우세'를 점쳤고, 그 결과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기가 점점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트럼프 지지자들을 침묵시킨 (아마도 더 큰) 원인은 수치심이었을 것입니다. 차마 제 입으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 없던 것이지요.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여론조사는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데, 왜 숨기거나 거짓 답변까지 했어야 할까요?

자신이 그동안 믿어 온 양심이나 체면, 즉 '사회적 자아'에 위배되는 '분열적 선택'을 한 자신에 대한 갈등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자신에게조차 부끄러워서'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좀 더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보적 지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은 몰양심적일까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 가운데는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후에도 지지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더 지켜보겠다'는 것이지요.

제가 첫 번째 편지에서 말씀드린대로,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선택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민주당 성향의 제조업 노동자와 가족들입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믿어온 '배려,' '관용', '다양성'이라는 진보적 가치에 스스로 반하는 투표행위를 했습니다.

이들이 스스로도 당혹스러운 선택을 한 것은 자신들의 삶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이들에게 변화의 희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말은 훨씬 조리있고 상식적으로 했을지 모르나, 미국 경제위기의 주범인 월가의 금융회사에서 강연을 해 주고 수억 원을 받는 등의 모순적인 행동을 해 왔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유권자가 클린턴에서 등을 돌리게 만든 것은 '낡은 기성정치인'이라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를 선택해서 얻는 것이라곤, '4년에서 8년간의 현상유지'를 뜻할 뿐이었습니다.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더 이상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하지만, 적어도 어떻게든 변화를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만큼 서민들의 상황이 절박했던 것이지요. 제가 "트럼프가 '막말 때문'이 아니라 '막말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었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트럼프의 한계가 있습니다. 절박한 선택이었던 만큼, 서민들의 삶이 조속히 나아지지 않으면 지지자들은 무섭게 등을 돌릴 것입니다.

문제는, 트럼프가 한 무수한 약속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트럼프가 '단임 대통령'으로 물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속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근혜가 정책 실패로부터 시민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국정교과서 강행이나 개성공단 폐쇄 등 뜬금없는 행동을 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한국의 안보를 트럼프 손에?

지난 27일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 부지에 사드가 배치돼 있다. 국방부는 이날 성주골프장에 들어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비가 유사시 북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 사드 배치, 하루 만에 실전 운용 돌입 지난 27일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 부지에 사드가 배치돼 있다. 국방부는 이날 성주골프장에 들어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비가 유사시 북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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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에 대해서는 이후 자세히 다룰 계획인 만큼, 여기서는 두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논쟁의 초점이 1조 원에 달하는 비용을 미국이 대느냐 한국에 대느냐에 맞춰져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돈 문제가 아닙니다. 사드가 한국 시민들의 목숨을 지켜준다면, 1조가 아니라 10조, 100조라도 기꺼이 내야 하겠지요.

문제는 사드가 단 한 번도 실전에 사용되어 본 적이 없는, 검증이 안 된 무기라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북한의 주력무기인 장사정포에는 완전히 수속무책입니다. 장사정포는 남북한의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는 그 무기이지요.

북한은 개전 한 시간 이내에 수천 발의 장사정포를 발사할 역량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드는 이 가공할 무기를 요격할 능력도 없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수적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 배치하기로 한 사드 포대 2기로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 수는 잘 해야 96-192 정도입니다. 한 마디로, 사드는 한국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안보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대화를 통한 관계회복,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북한과 같은 미치광이와 어떻게 대화하느냐'고 말한다면, 남는 대안은 전쟁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한국이 전쟁을 통해서 잃을 게 북한보다 훨씬 많습니다. '미국 항공모함이 한국을 향하고 있다'는 뉴스 하나로 주가가 곤두박질 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하 요새와 대피소가 널린 평양에 비해, 서울은 인구밀도는 훨씬 높은 반면 공격에는 무척 취약합니다. 다행히 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을 '미치광이'로 보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가 "북한은 지나치게 이성적인 게 문제"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북한은 자국의 존속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북핵의 유일한 해결책이던 중국을 사드와 바꾸다

흥미롭게도, 박근혜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거의 유일한 북핵문제 해법은 중국이었습니다. 2016년까지 무려 7차례나 중국 정상을 만나 '북핵문제 해결'을 당부했고,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까지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리더십'을 언급했으며, 다보스 포럼에서도 '중국'을 해법으로 거론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석연잖은 이유로 사드 배치를 받아들인 뒤, 중국은 갑자기 '해법'에서 '장애물'로 탈바꿈합니다. 러시아도 비슷한 운명을 겪고 있습니다. 성능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포 두 대를 배치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두 우방을 적으로 돌리는 게 현명한 일일까요?

물론, '브릭스(BRICs)'의 대표적인 두 경제대국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잃게 될 막대한 경제적 기회 상실은 보너스로 감수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은 '사드 비용 1조'로 떠들썩합니다. 지난해 상반기 6개월 동안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금액만 4조 원이 넘습니다. 

사드를 배치한 뒤 우리가 입은 경제적 피해와 앞으로 입게 될 손실의 규모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비용은 한국사회에 찾아올 불안과 위협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의 안보가 미국 국내정치의 '카드'로 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서둘러 남북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가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 나라가 존속할 것인가는 더욱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태그:#사드, #트럼프, #홍준표, #2017대선,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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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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