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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떨린다. 석가 탄신일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2일이었다. 그날은 아침 잠결에 창밖으로 참새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길래 오늘은 무슨 좋은 소식이 있으려나 이불속에서 혼잣말을 했다.

오전까지는 별일이 없었다. 오후 두시쯤 은행에 볼일이 있어 잠깐 은행에 들렀다. 그런데 통장을 두고 오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은행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대략 십 분 정도 거리였다. 집까지는 경사진 언덕이었는데 그 언덕 끝에 3층 건물이 있었고 1층엔 허름한 중국집이 하나 있다. 숨을 헉헉거리며 그곳을 막 지나치려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랑 나이 지긋한 남자 한 분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식당 안을 들락날락했다. 아주머니는 무엇에라도 놀란 듯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식당 안에서 계속 비명을 질렀다. 은행 마감 시간 때문에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다시 식당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저기, 안에 무슨 일 있나요?"
"사... 사람이 쓰러졌어요. 주방 바닥에... 사람이 쓰러졌어요."

여자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식당 안과 밖을 왔다 갔다 했다. 남자는 막 112에 신고를 하고 있었다.

"어...어떻게 좀 해 주세요. 아, 난 몰라. 난 몰라."

여자는 두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울고불고 정신이 없었다. 남자도 당황한 듯 문 밖에서 어쩔줄 몰라 하며 그냥 서 있기만 했다. 나도 상황을 파악하자 심장이 떨리고 덜컥 겁이 났다. 조심스레 식당 주방 쪽으로 들어갔다.

오십은 넘어 보이는 사내가 차디찬 바닥에 일자로 엎어져 있었다. 상의는 벗고 있었다. 바닥은 물기로 흥건했고 사내 옆엔 빈 소주병이 하나 있었다. 고개는 왼쪽으로 꺾인 채 양팔은 머리 쪽으로 향해 있었다. 마침 식당 주위엔 우리 외엔 아무도 없었다. 나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심폐소생술 '위반 신호 30, 2번'을 아시나요?

사회복지시설 지역아동센터에서 십 년 넘게 근무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센터나 안전교육장에서 정기적으로 안전교육 '소방안전, 심폐소생술'을 받긴 했다. 혹시나 있을 비상시에 응급조치하기 위한 교육이었지만 설마 나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내 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때의 비상시 응급조치 방법은. 간단히 말하면 '위반 신호 30, 2번'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청소년센터에서 아이들과 교사들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 심폐소생술 교육중 필자가 근무했던 청소년센터에서 아이들과 교사들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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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위험물 확인 및 동의 구하기
반 : 반응하기
신 : 신고(119), 자동심장충격기(AED)확보
호 : 호흡확인
30 : 30회 가슴 압박
2번 : 2회 숨 불어넣기

하지만 막상 내 앞에서 쓰러진 사내를 보자 내 정신은 완전 백지상태였다. 안전교육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겨우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렸다. 생각나는 거라곤 쓰러진 사람의 기도를 확보하고 '애국가 1절'을 번갈아 2번씩 부르며 흉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급한 대로 시도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밖에 서 있던 남자를 부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남자와 함께 바닥에 엎어져 있던 사내를 들어서 앞으로 돌려놓았다.

그런데 쓰러진 사내를 앞으로 돌려놓자마자 나는 다시 한번 소스러치게 놀랐다. 심폐소생술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사내는 숨이 끊어진 지 최소한 서너 시간은 지난 듯 사후강직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두 주먹은 계란을 쥔 상태로 굳은 채 머리 쪽으로 향해있었고 몸은 발가락부터 전신이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막대기를 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굴은 뭔가에 넘어져서 부딪힌 듯 눈 한쪽이 심하게 부은 채 검붉은 상태였고 가슴까지 붉은 기가 퍼져 있었다. 

119에 신고한 지 오분이 넘었지만 구조대는 오지 않았다. 남자에게 물었더니 112에 신고를 한 모양이다. 오는 중이란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119에 다시 전화했다. 119 상담원은 쓰러진 사내의 어깨를 흔들어서 의식이 있는지 확인을 해보란다. 전신이 빳빳하게 굳어 있고 사후강직이 심하다고 했다. 주변이 검게 변했는지 확인하라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당황한 탓에 119 상담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통화가 끊어졌다.

"왜 산소호흡기 안 끼워요, 산소 호흡기"

다행히 바로 119구조대가 도착했다. 곧이어서 경찰도 도착했다. 구조대원도 주방에 쓰러진 사내를 보더니 가망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라도 잘못 봤나 싶어서 돌아가신 거냐고 물었더니 사망한 지 꽤 오래되었을 거란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에 놀란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식당 주변으로 모여들더니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고인이 된 사내의 복잡한 개인사가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산소 호흡기 왜 안 껴요. 왜...산소 호흡기."

부인인듯한 여자는 길바닥에 주저 앉은 채 구조대원들에게 '산소호흡기'만 수십번을 외쳤다. 경찰관 한 명이 아주머니를 진정시키며 가족 관계 등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다. 쓰러진 사내는 중국집 사장님이란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여자는 부인이라는데 동네 사람들이 사실혼 어쩌고 하는 거 보니 가족 관계가 좀 복잡한 모양이다.

어깨너머로 들으니 최근에 사내와 다투고 나서 연락을 안 한 지 며칠 되었단다. 사내에겐 형이랑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서로 연락 끊은 지 오래되었단다. 부인과 함께 있던 남자는 이 건물 주인이었다. 어제부터 식당 문은 잠겨 있는데 수돗물 소리가 계속 나길래 이상해서 여자에게 연락했단다. 사람들이 점점 더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잠시 후 사복을 입은 형사 두 명이 도착했다. 젊은 형사가 수첩을 든 채 아주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아주머니는 응급조치는 하지 않고 질문만 해대는 젊은 형사에게 짜증을 내며 "왜 산소 호흡기 안 끼워주냐"고 말했다. 젊은 형사는 "남편분 사망하신 지 오래되었습니다"라고 감정없는 톤으로 말했다.

아주머니는 머리를 산발한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상태로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젊은 형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현장을 처음 목격한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와 달라고 했다. 나는 좀 망설이다가 건물주랑 형사 앞으로 가서 당시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줬다. 형사가 지문을 조회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사촌과 연락이 되었다.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깨닫다.

상황이 대중 마무리 될때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고 나서도 한동안 심장이 두근거리고 주변이 온통 잿빛이었다. 사내를 만졌던 손에선 역한 냄새가 풍겼다. 세제를 몇 번이나 사용해서 씻어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텔레비전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끼니때가 지났지만 배도 고프지 않았다.

사내가 쓰러진 직후 바로 발견되었더라면 나는 심폐소생술로 그 사내를 살릴 수 있었을까? 아니 정말 시도라도 할 수 있었을까?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평소에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안전교육도 받았다. 그렇지만 이론과 실제상황은 달랐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경우엔 위급상황 시에 119 상담원과 통화하며 응급조치를 취하는 게 가장 최선이라는 것도 배웠다.

그날 아침에 창밖으로 들리던 청아한 참새 소리가 기쁜 소식이 아니라 한 번도 안면이 없던 이웃 사람을 위한 '조종'이었을줄은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사내의 죽음은 그 친척을 통해 수백 명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내의 죽음을 목도한 나를 포함한 채. 사내는 평소 지병은 없었다고 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니면 돌연사인지는 부검을 해봐야 알 것이다.

가족 중 누군가는 며칠간 울음 속에서 불면의 날을 보낼 테고 또 어떤 이는 장례식장에서 고인이 살았을 때의 일들을 추억할 것이다. 비록 일면식 한번 없던 분이었지만, 어쩌면 이 언덕길을 오가며 한두 번은 봤을지도 모르는 분이지만, 식당 담벼락에 묶여있던 얌전한 흰둥이의 주인일지도 모르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인철 시민기자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심폐소생술, #안전교육, #골든타임, #응급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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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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