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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생 선배 한 분을 만났다. 미국에서 17년을 보내고 돌아온 분이다. 아버지들이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식 이야기를 하게 된다. 특히 아버지들에게 딸 이야기는 깊은 마음에서 나오는 경험담이 많다. 그런데 아들들은 덤덤하게 지내서 에피소드가 부족하다고 한다. 아들 셋을 둔 친구가 말해준 것이다. 다는 아니겠지만 딸들만은 못한 모양이다.

인생 선배의 가슴 아프고 감동적인 경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울렸다. 아빠 마음을 공감했다. 큰딸이 결혼을 앞두고, 아빠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테니 염려 말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인생선배는 저축한 돈이 없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교회에서 조촐한 결혼을 했고, 딸과 사위가 신혼 첫날밤을 집에서 지내게 될 환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생 선배는 침대만큼은 꼭 '아빠 마음'을 담아 선물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저축한 돈이 없어 침대를 사주지 못해 딸과 사위가 침낭에서 첫날밤을 지내게 되었다며 울컥하는 말을 하셨다. 나도 순간 울컥해 눈가에 눈물이 비쳐졌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손주를 보거나, 딸만 생각하면 항상 그때가 오버랩 된다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고 싶은 나무인데, 둥지도 뿌리도 없던 그 상황 앞에 진정한 아빠 마음이란 눈물뿐이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추억이었다. 항상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빠. 이게 진정한 아빠 마음이다. 아버지, 아빠란 모든 것을 퍼주고, 생명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마음이다. 인생선배의 추억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추억이다.

나는 딸을 둘 둔 아빠다. 마케팅을 전공한 큰아이 예나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둘째 예린이는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생이다. 아들을 키워보지 못했지만, 딸아이들은 울고 웃는 경험들이 많다.

사랑스런 딸, 예나의 어린시절
 사랑스런 딸, 예나의 어린시절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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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딸, 예린이 어린시절
 사랑스런 딸, 예린이 어린시절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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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유치원생, 둘째는 4살 때였다. TV를 보던 둘째 아이가 서재로 달리듯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빠! 아빠! 아빠 이름이 텔레비전에 나와요."
"무슨 소리야, 예린아! 아빠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없는데."
"아니야, 아니야. 아빠 이름이 자꾸 나와."

아이들에게 아빠가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내가 거실로 나가 텔레비전을 보니 일본에서 열렸던 나가노동계올림픽을 추억하는 재방송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내 이름이 '나관호'다. 내 이름을 그냥 소리 나는 대로 부르면 '나가노'라고 들릴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아빠 이름 '나관호'가, 일본 지명 '나가노'와 같이 들렸던 것이다.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고, 아이들도 웃었다. 정말 순진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에게 부족함은 없었지만 풍성함으로 채워주지는 못했다. 목사로 살아가다 보니 재정적인 부분에서 넉넉하지는 못했다. 아이들이 이런 아빠의 상황을 알았는지, 생일에 되어도 큰 선물을 요구하지 않았다.

생일이 가까운 어느 날, 둘째 아이에게 어떤 선물을 가지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빠! 괜찮아요. 안 사주셔도 돼요. 케이크만 사주세요."
"무슨 소리야. 아빠가 마루인형 사줄게. 친구들도 데려오고."
"아니에요. 아빠, 돈 없잖아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빠 입장을 생각해준다는 둘째의 마음. '돈 없는 아빠'에 대한 배려가 생일 선물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 앞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나는 말했다.

"아빠, 돈 많아. 우리 예쁜 예린이가 원하는 것 다 해줄 수 있어. 아빠에게는 막 사달라고 하는 거야."

서재 책상에 앉아 한참 생각했다. 아빠에게는 막 사달라고 해주는 것이 아빠의 기쁨인데, 내가 어떻게 했기에 아이가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몇 주 전 기억이 났다. 강의해서 받는 사례비 50만 원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둔 적이 있었다. 빳빳한 신권이었다. 양복을 스탠드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그런데 아이들만 집에 있을 때, 옷걸이가 넘어져 돈이 든 봉투가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빳빳한 신권을 보고 돈의 개념을 가지기보다, 비행기를 접어 아파트 12층에서 날려 보냈던 것이다.

집에 들어봐 그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아이들을 꾸짖었다. 잠시 돈이 아까웠다. 나는 급히 후회했다. '돈보다 사람이, 특히 우리아이들이 귀하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찼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달래고, 심지어 잘못을 구하고, 그 상황을 마무리했다.

아마 그런 상황 앞에서 둘째가 아빠는 돈이 별로 없는 사람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너무나 절망적이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아이들에게 풍성한 아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아빠는 딸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선물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내가 알아서 선물해주었다. 큰 아이가 중학교시절 아름다운 여성이 되어가는 첫걸음인 초경을 했을 때, 엄마는 물론이지만 아빠인 나에게도 말해주었다. 딸아이들과 여러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는데, 큰 아이가 그런 말을 해주었을 때 고마웠다. 외국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가족 모두가 축하해주는 기쁜 날이다.

나는 통 크게 반응했다. 큰 아이에게 노트북을 선물했다. 평소 큰 아이가 노트북을 가지고 싶어 했다. 이렇게 나는 딸아이들에게 통 큰 아빠로 변신 되었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이제는 생일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거침없이 편하게 요구한다. 마스크팩과 클렌징 크림부터 카메라 렌즈와 비싼 옷도 사달라고 한다. 나는 기분 좋게 돈을 쓴다. 이제 아이들에게 아빠는 뭐든지 다 해주는 풍성한 사람이 되어 있다. 기분 좋고 행복한 변화다.

중국여행 가족사진
 중국여행 가족사진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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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아빠의 필요를 짐작해 선물을 잘한다. 몇 년 전 내 생일에는 아빠가 목사이고 교수지만, 글을 쓰는 작가이기에 손 글씨를 좋아하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고급 만년필과 사인하기 좋은 잉크펜을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산 것이었다. 작년에도 자기들이 다니는 학교의 앰블런이 들어간 컵과 티셔츠, 특히 펜을 선물해 주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작년 여름, 중국여행을 하고 싶다고 해서 베이징을 다녀왔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빠와 딸 사이에 서로의 감동적인 선물을 받았다. 여행 둘째 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아이들 방에 잠시 들어갔다. 다음날 숙소 관리하는 직원에게 줄 팁을 아이들에게 전달해주기 위해서였다. 1달러 지폐 몇 장이었다. 그리고 몇 마디를 나누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둘째가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아빠가 우리 아빠여서 좋아요."
"아빠도 우리 예나와 예린이가 아빠 딸이라서 행복해."
"아빠가 우리를 이 땅에 있게 해주셨잖아요. 감사해요."

나와 아이들은 울먹였다. 아이들이 엄마와는 자주 사랑을 나누고 고백했지만, 아빠인 나에게는 이런 진한 사랑고백은 처음이었다. 정말 감동적인 서로의 선물이었다. 진정한 아빠의 자리를 찾은 것이다.

"사랑한다. 딸들아! 아빠 마음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다. 아빠 생명을 너희들에게 주어도 아깝지 않아. 너희들이 아빠 딸이라서 행복하고 좋아. 고맙다."

이 땅의 모든 딸이 아빠와 더욱 친밀해지기를 소원한다. 아빠 마음은 모든 것을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알기 바란다. 딸을 향한 아빠 마음은 신비다. 축복이며 감동이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작가이며,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문화전략위원을 지냈고,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다. 역사신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 대중문화연구을 강의하고 있으며,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로 기업문화를 밝게 만들고 있다.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태그:#딸과 아빠, #아빠 마음, #아버지 사랑, #마음의 선물,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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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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