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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는 미국 직장 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요. 이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해요. 이해해주세요."

미국 명문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과 영국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다니던 외아들이 30여 년 애써 뒷바라지 했던 내게 저런 고백을 했다면 아마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으리라.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의 <넥스트 해피니스-행복한 독일 교육 이야기>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의 <넥스트 해피니스-행복한 독일 교육 이야기>
ⓒ 자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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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생활을 비롯해 34년간 독일과 인연을 맺어온 명실공히 국내 최고 독일 전문가로 활동 중인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도 그랬다. 아들과 제대로 된 소통이 없었고 진로 문제도 당연히 소홀했다. 그의 최근 저서 <넥스트 해피니스-행복한 독일 교육 이야기>가 시작된 이유다.

언론(중앙일보 미디어 전문기자)에 몸담으며 한국 사회의 내밀한 속살과 고질적인 병폐를, 대학(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에 재직하면서 '헬조선'·'3포 세대' 청년들의 절규를 오롯이 지켜봐 왔다는 저자. 책에서 그는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를 설명하고 아들과 대화하지 못한 자기 반성과 함께 독일의 교육시스템 속에서 그 원인과 해법을 찾아본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한국 교육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재 시점의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본다.

'한국의 많은 부모와 학교는 자녀나 학생의 소질과 인성, 민주시민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세속적인 출세에 교육의 목표를 둔 부모의 욕심이 자녀의 미래를 강요하고 있다. 또한 학교는 어느 대학교에 몇 명을 입학시켰는가에 교육 목표를 두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대한민국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선행 학습으로 교실은 잠자는 공간으로 전락했고, 사설 학원이 입시를 담당한다. 게다가 학교 공간은 학교폭력, 왕따, 세계 최고 자살률 등으로 '교실 지옥'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또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입시 전쟁,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대학 등록금 등 그야말로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우리의 교육 현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학교인가 학부모인가 아니면 정책당국인 교육부인가? 왜 우리 아이들은 초등생도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심지어 대학생마저 행복하지 않고 미래 때문에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할까? 필자는 우리 교육만 생각하면 실타래처럼 떠오르는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을 통해 찾았다. 바로 '행복(Happiness)'이다.

14살, 18살 두 아이를 둔 학부모이자 최근 20여 년간 기자생활을 접고 교육 관련 창업의 길로 들어선 내 입장에서 '독일의 교육에는 무엇이 있기에', '독일은 과연 우리의 롤 모델이 될 만한지' 등 호기심을 갖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결론은 "독일은 여러모로 우리의 롤 모델이 될 만한 국가"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과 독일은 미국, 러시아, 중국같이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다. 인재부국을 강조한다. 대한민국과 독일은 '분단'이라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경제 부흥, 한강의 기적과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인구 규모도 통일 독일이 8100만, 통일 한국 역시 8000만으로 거의 비슷하다.

독일은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국가 번영과 국민 행복을 누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지속적인 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 갑을관계가 없는 사회시장경제(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제도 정착, 동서독 평화통일과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연방제, 즉 완전한 지방자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은 비슷했지만 7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너무 다르다. 저자는 그 이유를 '행복한 교육'에서 찾았다. 교육의 정의를 '어떻게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로 본 것이다. 독일 교육은 '스스로 행복한 인생을 찾아가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교육은 돈과 권력을 향해 출세가도를 달리는 것을 '성공'이라 생각하고 모든 세대가 이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며 경쟁한다고 말한다. 초등학생은 중학교에서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 중학생은 특목고를 가기 위해, 고교생은 입시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죽을 듯이 노력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그들은 그제서야 방황하고 고민한다. 청소년기엔 방황하고 고민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2년여 취업과 창업 분야를 취재하며 수많은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 중에는 자기주도적인 진로를 개척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도 있지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곳에 와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고민하는 청년들도 많았다.

대학에 가서도 자유와 낭만을 누릴 겨를도 없이 대기업 또는 공무원 취업을 목표로 경쟁적으로 스펙을 쌓는다.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지만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들 역시 수십 년 굳어진 나쁜 조직 문화에 상처받고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사'를 갈망한다.

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 대학도 취업도 결혼도 내집 마련도 남들이 보기에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잘못된 행복의 기준 때문에 우리나라의 모든 세대가 오늘도 하루하루 불행한 날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 책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교육을 선도하는 다양한 독일의 교육시스템을 소개한다. 그저 '독일에는 이런 좋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스템의 기저에 깔린 교육에 대한 가치관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정직, 책임, 자율, 연대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으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것', 그리고 이 같은 정신을 교육 현장에 담아내는 것이다.

이밖에 독일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인생의 긴 여정이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점, 만 10세가 되는 초등 4학년을 마치면 1차로 인문계 중고교를 갈지 실업계 중고교를 진학할지 결정하는 '이원 교육시스템', 실업계와 인문계를 바꿀 수 있고 대학과 전공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재도전이 가능한 점, 최소 2주 이상 가족과 함께 여행을 즐기는 '진짜 방학', 정치 관심사를 관철하고 해결능력을 기르기 위해 14세 이상의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정치교육원' 프로그램, 입시지옥 대학 서열화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이 없는 3무(無) 교육환경까지 부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만의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생긴 호기심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독일의 교육이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청소년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탐색하고, 자신의 적성을 발견해서 그 길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학부모의 인식이 바뀐다고 교육 현실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진 않을 것이다. 저자는 독일의 경우 "교육을 통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치 리더들의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혁신이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건국의 아버지 아데나워, 위대한 비전의 정치가이자 동방정책을 통해 동서 데탕트를 추진한 빌리 브란트,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 사회개혁의 기수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현재의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까지 전후 독일의 리더들은 성장과 일자리, 사회시장경제와 경제민주화, 사회보장제도에다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데 앞장 섰다는 것.

당연히 독일의 정치 리더들은 아이들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모든 국가 시스템 혁신의 근본이 교육혁명임을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그 어려운 교육혁명은 이념이나 계파보다는 창조적인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실적을 만들어나가는 정치 리더십에 달렸음을 역설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독일교육을 롤모델 삼기에 그치지 않고 독일을 뛰어넘어야만 희망이 보인다고 말한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행복한 교육혁명을 위한 8대 매니페스토'를 제안하며 구체적인 교육혁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글을 맺었다.

마침 우리에게도 2017년 새 시대를 열어갈 새 정부가 탄생했다. 수십 년간 고질적 병폐로 인식되어 좀처럼 바뀌지 않은 교육의 틀을 혁신하는 그 어려운 일을 새 정부가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행복한 독일 교육 이야기 넥스트 해피니스 -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김택환 지음, 자미산(2017)


태그:#독일교육, #넥스트 해피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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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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