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8년 전 이맘 때 우리집으로 왔다
▲ 보롱이 18년 전 이맘 때 우리집으로 왔다
ⓒ 정수권

관련사진보기


"잘 가거라, 보롱아~"
"다음에 태어나서는 더 좋은 집에서 더 사랑 많이 받아라"

아내가 울면서 강아지를 쓰다듬는다. 옆에 있던 나 역시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주사를 놓는 젊은 수의사도 울었다. 바로 이어서 두 번째 주사를 놓자 강아지는 이내 숨을 거뒀다. 젊은 의사라서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우리를 배려하여 그런지 그도 매우 슬퍼하였고 주사를 놓는 손이 몹시 떨었다. 잠시 후 마지막 호흡이라며 몸이 조금 움직이더니 조용해졌다. 아직도 온기로 몸은 따뜻하지만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현충일 다음날이 아버님 기일이라서 형님이 살고 계신 고향으로 제사 지내러 가려고 보롱이를 동물병원에 이틀 정도 맡겨 두려고 갔다가 거기서 의사의 소견으로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선택하였다.

보롱아 잘 가거라

두 달 전 다른 동물 병원에서 한쪽 신장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하였다. 퇴원 후 나름대로 잘 관리하여 건강을 회복하였으나 갑자기 며칠 전부터 아예 먹지를 않고 밤이 되어도 잠도 자지도 않고 짖으며 돌아다녀 걱정을 하긴 했어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보내게 될 줄 몰랐다.

의사는 남아 있던 나머지 신장도 기능이 급격히 떨어졌고 요로결석 등으로 몹시 통증도 심하여 그간의 상태로 보아 어차피 이삼일밖에 살지 못하니 차라리 견디기 힘든 통증을 없애주자고 하였다.

수술하기 이전에도 아파서 또 다른 병원에 갔었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수술이 어렵다며 안락사를 얘기 했었다. 하지만 꼭 살리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으로 집에서는 멀지만 예전에 살던 동네의 병원으로 한번 가보기로 하였고 다행히 거기서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어렵사리 수술을 하였다.

 어느 날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보롱이의 재롱을 보다
▲ 단란했던 한 때 어느 날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보롱이의 재롱을 보다
ⓒ 정수권

관련사진보기


18년 전 꼭 이맘 때인 유월에 생후 45여 일이 지나 우리 집으로 와서 보롱이란 이름으로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늙어서 귀 먹고 눈 멀고 병이 들었다(관련기사: 우리집 가족 '보롱이', 한번 보실래요?).

숨진 보롱이를 병원 보호실에 맡겨 두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왔으나 방금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지만 이 집에서는 이제 보롱이는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벽에 걸린 사진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집이 텅 빈 듯했다. 이제 멀리 있는 아들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차마 못하고 이튿날 고향 영양으로 향했다.

고향 길 가는 도중 울산에서 휴가를 낸 사위와 딸과 손주를 만나 같이 갔다. 사위가 강아지를 어떻게 하고 왔느냐고 물어서 병원에 맡기고 왔다고 얼버무렸다. 자세한 얘기를 하지 못한 것은 처음으로 가는 고향 길을 우울하게 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손자 앞세우고 사위와 같이 오니 좋으시겠어요."

형수님이 일가친척들과 함께 반갑게 맞이하였다. 나와 아내는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속은 그게 아니었다. 도착했을 때 마침 단비가 내렸다. 나라 전체가 오랜 가뭄으로 애태웠는데 모처럼 비가 오니 모두들 좋아했지만 나에겐 그저 슬픈 하늘이었다.

제사를 지내고 밤늦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딸에게 보롱이가 숨진 사실을 그제야 알리자 딸은 몹시 안타까워하며 울었다. 운전을 하는 사위도 말이 없고 나도 눈앞이 흐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별은 언제나 슬픈 것

 거실 벽면의 달력의 모델이 된 보롱이
▲ 달력사진 거실 벽면의 달력의 모델이 된 보롱이
ⓒ 정수권

관련사진보기


이튿날 새벽에 멀리 회사 생활관에서 아직 자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아들은 자다가 일어나 깜짝 놀라면서 흐느꼈다. 특히 안락사를 했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전화를 끊었지만 당장이라도 차를 몰고 달려 올까봐 아내가 다시 전화를 하여 겨우 진정을 시켰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보롱이와 함께 지내며 마치 동생처럼 보살피며 자랐고 졸업 후 취업으로 멀리 가 있지만 지금까지도 주말이면 다른 곳에는 거의 가지 않고 집으로 와서 강아지와 같이 지냈다. 평소에도 강아지를 위해 성심을 다했지만 특히 기억나는 것은 첫 월급을 받아서 백내장이 온 보롱이의 눈 수술을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나이가 많아 수술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크게 상심했던 아들이었다.

주말이 끝나고 일요일 밤 늦게 회사로 다시 돌아가면서 '잘 있어, 다음 주에 또 올게~' 하면서 몇 번이고 어루만지고 갔으니 그 정이 오죽했으랴.

그날은 이상하게도 아들이 제 엄마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해서 보롱이를 물어봤다. 심지어 또 물어보기가 미안했던지 고향 가는 길에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회사 앞에서 점심을 함께 하고 가시라고까지 해서 아내를 당황하게 하였고 제사가 끝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도 전화가 왔었다.   

보롱이 잠들다

어느 날 산책 길에서
▲ 보롱이 어느 날 산책 길에서
ⓒ 정수권

관련사진보기


지난 토요일 아침 일찍 아들과 딸이 집으로 와서 함께 병원으로 갔다. 닷새만에 상자 안에 든 보롱이를 받아서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가 처음으로 왔던 예전의 을숙도 강변의 우리 집이 있었던 곳부터 들렀다. 어려서 아이들과 놀던 아파트 앞 놀이터도 그대로 있었다.

우리 집으로 오기 전 어린 보롱이의 삼형제가 함께 있었던 애견 가게가 있던 곳도 돌아보았다. 보롱이는 그곳에서 셋 중에 선택했었다. (나머지 두 형제는 어디 있으며 아직 살아 있을까?) 그리고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오래도록 살던 아파트에도 들러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은 부산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산 속에 있었다. 휴일을 맞아 몇몇 가족이 미리 와 있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한산했다. 애견 장례식장은 처음으로 가봤지만 사람들의 장례처럼 가져간 사진 액자를 꽃으로 장식한 촛불이 켜진 좌대에 두고 향로에 향을 피웠다. 

동물병원에서 염을 한 한지를 걷어내자 오는 동안에 얼어 있던 몸이 녹으면서 털 빛깔도 깨끗하고 생전의 모습 그대로여서 마치 잠자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몸을 만져보니 체온은 없지만 바로 부스스 하며 깨어날 것만 같았다. 그곳의 담당자가 삼베로 몸을 감싸고 살았을 때 외출 시 입었던 옷을 머리에 베이고 하나는 덮어 주면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라며 정중하면서도 매우 친절하게 배려해 주었다.
 
영원한 이별

 이 계단을 내려 가듯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 어느 날 오후 이 계단을 내려 가듯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 정수권

관련사진보기


한줌의 재가 되어서 한지에 싸여 조그만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졌다. 밖으로 나오니 남모르는 어느 집의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함께 지내던 또 다른 주검의 강아지를 따라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하게 뛰어다녔다. 그 옛날의 우리 보롱이를 보는 듯해 가슴이 찡했다.

돌아오는 길에 딸은 집으로 보내고 그동안 살면서 여러 곳을 다녔지만 보롱이가 가장 많이 뛰어 놀고 귀엽다고 아이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던 유엔묘지가 있는 평화공원으로 갔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아내와 내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아들이 상자를 앞세워 천천히 한 바퀴 돌아오자 그제야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바람도 한결 시원했다.

하루라도 빨리 동물의료보험제도 검토해주길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반려동물에 대한 복지를 공약했고 유기견을 청와대로 데려가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를 맞아 그동안 오랜 시간 직접 개를 키워보니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정서적으로도 핵가족 시대의 단조로운 집안 분위기가 좋아지는 등의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았다. 그러나 반려견이 어리고 건강할 때는 잘 모르나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면 사람처럼 생각보다 의료비용이 많이 든다.

예를 들어 보롱이의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벌에 쏘였을 때 병원에서는 혈압이 떨어져 쇼크로 죽을 수도 있다며 해독제를 놓았는데 그 비용이 십만 원이 훨씬 넘었다. 그리고 만약에 고령으로 하지 못했던 백내장 안과 수술을 했다면 수백만 원이 들었을 것이며 실제로 보롱이 신장절제 수술도 이백만 원 이상이 들었다. 그 외 입원비 약값 등이 더 들어 경제적 부담이 크다.

어떤 사람들은 강아지를 위해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함께 한 생명을 어떻게 하겠는가.

(지난번 수술시 병원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의사: 다행히 한 쪽 신장이 생각보다 괜찮으니 수술하면 남아 있는 신장으로 얼마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나: 수술해 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의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 그런데, 수술비는 대충 얼마나...
의사: 백만 원 조금 더 듭니다.
나: 알겠습니다.

(며칠 후 원무과에서)

나: 얼마입니까?
원무과; 이백 몇 십 만원입니다.
나: ?
원무과: 수술비만 그 정도이고, 부대비용을 합해서는...

덧붙이는 글 | 링크 부탁합니다. (죄송합니다^^)



태그:#보롱이, #가족, #반려견, #반려동물, #이별
댓글2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와 내 주변의 사는 이야기를 따스함과 냉철한 판단으로 기자 윤리 강령을 준수하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이 정도면 마약, 한국은 잠잠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