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우먼>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왜 원더우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시작할까.

조금 풀자면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가 자기 고향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정한 것(<퍼스트 어벤져>)에 반해 원더우먼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돌아갔단 것이다. 그리고 여성 히어로를 굳이 남성 전유물이었던 전쟁터 한가운데 소환했다는 점이다.

신 그리고 인간

 영화 <원더 우먼>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이야기상 약 100여년 후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원더우먼은 인간사에 관조적이고 배트맨의 저스티스 리그 결성 제안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원더 우먼>의 플롯이 다이에나가 원더우먼이 되는 영웅의 각성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론 스티브 트레버의 유지를 이으려는 부채의식에 비롯된 것이지 영웅으로서 정의감이 아니었다. 정황상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상과 등지고 살아갔을 것이고 혹은 "I've killed things from other worlds before"(<배트맨 대 슈퍼맨> 대사)라는 말에서 <원더 우먼>과 <배트맨 대 슈퍼맨> 사이에 다시 신화 세계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정의감이라고 기대해볼 수 있는 부분은 영화 말미 과거 회상을 마친 현재의 원더우먼이 '저스티스 리그'에 합류를 결심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 이다. 원래 원더우먼이 등장한 시기는 1941년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당연히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처럼 원더우먼은 나치와 싸우는 게 일이었다. 그런 원더우먼의 배경이 제1차 세계 대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은 신이 참전하지 않은 최초의 세계대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트로이 전쟁, 십자군 전쟁 등, 신의 이름으로 혹은 신의 장난으로 벌어진 전쟁과는 달리 제1차 세계대전은 최초로 오롯이 인간과 인간의 투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 승자인 미국이 주인공을, 패전국인 독일, 히틀러가 빌런의 역할을 확고히 하지만 제 1차 세계 대전은 그 구분이 모호해진다. 원더우먼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아레스라는 전쟁의 신이 이 전쟁을 일으켰기에 그를 막으면 끝나는 한 편의 테일(Tale)인 것이고 트레버에겐 인간 자체의 본성이 만든 전쟁이기에 누구하나 탓을 할 수 없다는 무간지옥이라는 점이다. 말과 오토바이가 공존하고 영웅이 존재하지만 악당이 부재한, 작품 속 제 1차 세계대전은 신화와 현재의 충돌지점인 것이다. 영화 후반부 원더우먼의 결정은 신화시대의 본질적 존재에서 니힐 속에 피어난 실존적 존재로 재탄생함을 의미할 수 있다.

여성 그리고 백화점

 영화 <원더 우먼>

영화 <원더 우먼>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원더 우먼>을 보며 생각난 캐릭터가 <암살>의 안옥윤이였다. 두 작품 모두 여성을 표현하는 방법이 비슷한데 남성보다 더 뛰어난 전투력을 보유한 여성이 한편으론 시대착오적인 모습으로 순수미과 코믹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에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기까지 한다. 특히나 이 시퀀스의 시대는 전쟁 중이고 장소는 모두 백화점이라는 것도 일치한다.

백화점이란 곳은 뭐든지 다 존재하는 장소로 욕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 욕망은 상품을 구입하면서 발현된다. 남성이 전선에서 싸우는 동안 여성은 백화점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옷과 장식을 고르는데 시간을 소비하고 치열한 전선과 달리 수도는 너무나 화려하고 근대화된 또 다른 세계인 것이다. 안옥윤과 원더우먼이란 캐릭터는 여성이면서도 극중 다른 여성상과 달리 백화점을 거부하는, 전쟁에 불필요한 옷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결국 가슴과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갑옷을 입거나(<원더 우먼>) 웨딩드레스(<암살>)를 입고 전투한다.

이 작품이 굳이 페미니즘이라는 타이틀을 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순간이다. <암살>을 위시로 여타 다른 전쟁영화의 여성의 포지션이 저격수인 것에 반해 원더우먼의 경우 전선 전면에 나서고 있으며, 그는 여성이 배제되는 남성 권력사회에 전면으로 부딪히는 존재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 설정은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부류의 서브 컬처계에서 다루는 잔 다르크 기믹(Gimmick)으로 보인다. 전장을 승리로 이끄는 높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비전투시 여러 허점 때문에 남성이 옆에서 지켜주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위에서 밝힌 백화점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외모를 부각하고 시퀀스 말미에 트레버가 원더우먼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같이 축구하고 같이 게임하는 여친'같이 남자들의 세계에 발을 들인 홍일점에 가까운 포지션이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앨리스를 생각해보면 전사로서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

<원더 우먼>의 원더우먼은 페미니즘 전사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아니다. 백화점에서 싸우러 가야한다는 원더우먼의 말에 애타는 여성은 여성참정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하지만 원더우먼은 이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DCEU가 DC의 '정의'에 대해 흔드는 방향으로 큰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볼 때, 작품의 주목표는 '사랑의 천사' 원더우먼 역시도 그 사랑을 불안정하게 이식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몇 안 되는 원더우먼의 숙적인 아레스를 시큰둥하게 날려먹어 히어로 물로서 여전히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크게 보면 애초부터 등장 안 시키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

<원더 우먼>은 누가 뭐래도 죽어가는 DCEU의 소녀가장이다. <그린 랜턴>의 처참한 실패 후 조롱의 신화를 매회 새로 써내려가던 중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발견한 원더우먼. 슈퍼맨이 <맨 오브 스틸> <배트맨 대 슈퍼맨>이라는 두 편을 출연하고도 비하당하는 것을 본다면 영화 <원더 우먼>은 곳곳에 잭 스나이더가 건든 흔적들이 찜찜하지만 인큐베이터로서 그 역할을 해냈다는 것에 상당한 의미를 둘 작품이 아닐까.

원더우먼 1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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