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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그래, 뭐 우리가 엄청난 학문적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함께 공부하고, 흩어져 열심히 강의하면 학계와 대중을 잇는 '오작교'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대학원 선후배간의 스터디 모임이 '한국독서문화연구소 CURI'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으로 서기까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서가 '문화'의 바탕이 되며, 중심이 되기도 하는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독서가 학습의 일부분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책읽기를 싫어한다. 이렇게 자라 어른이 되면 누가 숙제를 내주는 것도 아닌데 일부러 책을 읽으려 들지 않는다. 책을 사고, 보는 사람은 일부 마니아층에 한정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책읽기의 즐거움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이들이 되자고 가슴 뛰는 '결의'를 나누기도 했다.

'문학이론', '비평이론', '구조주의 이론' 등 독서와 관계되는 이론들을 찾아 이것저것 공부해가며 내공을 쌓아갔다. 더불어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책읽기'를 멀리하는 세대에게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새로운 정보전달 매체로 부상하는 그림책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페리 노들먼'의 <그림책론> 공부를 시작하며 늘 아이들과 함께 쉽게 접하던 '그림책'의 다른 가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세대와도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의 힘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서양 그림책이 지배적인 우리 그림책 시장의 현실을 보며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가 빠지면 어떻게 하죠?"라는 질문에 요즘 아이들은 베개 밑에 이를 넣어 두고 자면 늦은 밤, 모두가 잠든 사이에 이빨요정이 와서 동전을 두고 간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준다는 마음으로 정말 이 서양 동화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이를 가져가고 동전을 베개 밑에 넣어두는 부모님들도 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산타할아버지도 모자라 우리 아이들의 문화 속에 이빨요정까지 가세를 했으니 말이다.

어릴 적 이가 빠지면 지붕 위로 던지고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고 말하던 것이 우리 문화다. 서양 그림책이 우리 아이들에게 서양 문화를 이식시키는 것은 정말 안타까웠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그림책과 한국 그림책 작가들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그림책 작가 대부분이 '1쇄 작가'로 불린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우리 그림책 작가들과 우리 그림책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던 중, 우리 그림책을 소개하는 책을 출판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들과 작품들을 선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두 전도유망하고 훌륭한 작가들인데 누가 누구를 판단하고 누구를 선정한다는 말인가! 작품성 있고,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의 좋은 가치를 알려줄 수 있는 책들을 선정하고 싶었다. 유명하지 않은 신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도대체 우리 그림책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도대체 우리 그림책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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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 역시 서양 그림책이 익숙하고 우리 작가들의 그림책이 낯설었다. 재미 있고 의미 있는 우리 그림책들을 찾아내며 우리가 먼저 우리 그림책 사랑에 빠져야 했다. 그리고 이 그림책으로 우리 아이들의 생각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도 고민했다.

'공저'를 만드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혼자 책을 쓰는 일은 '나의 생각'만 잘 반영하고 출판사와 잘 조율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물론 써야 하는 글이 많긴 하지만. 그러나 함께 글을 쓰고 함께 책을 출판하는 일은 달랐다. 각각의 글이 너무 다른 색을 갖지 않도록 공통된 줄기들을 만들어야 하고 각자가 원하는 책의 형태나 책의 내용들을 서로 조율하며 모두가 인정할 만한 합의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점도 많다. 서로가 선정한 그림책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며 각자의 글도 서로 읽어 보며 조언을 줄 수 있다. 의견을 교환하며 좋은 글이 되도록 서로 도울 수도 있다. 함께 공부하다 보면 편협한 사고가 정리되고 보편타당한 가치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또 공부가 되고 서로 힘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많으면 써야 할 분량이 그만큼 적다!

'고독한 독서'라는 말은 옛말이다. 지금은 함께 읽기의 전성시대이다. 혼자 읽기 힘든 책들을 함께 토론하고 나누면 책의 가치는 배가 된다. 내가 간과했던 사실들을 다시 눈여겨보게 되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읽기'와 '공저 출간하기'의 즐거움에 빠져가고 있었다.

글쓰기가 마무리 되어가고 출판사들에 출판기획안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다시 위기를 맞이했다. 수십 통의 메일을 보냈지만 관심을 보이는 출판사를 찾기 어려웠다. 그림책 시장이 확대되고 있었으나 그림책을 소개하는 비슷한 콘셉트의 책들이 시중에 너무 많이 나와 있었다. 게다가 저자들인 우리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학교 밖 선생님들일 뿐이었으니까.

물론, 우리는 우리 책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 어떤 책과도 같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우리 책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학부모님들이나 교사들이 우리 그림책의 즐거움과 가치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책을 읽고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대단한 활동지도 실어놓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으니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실망에 실망을 하던 무렵 지인을 통해 출판사 '겨리'와 만났다. "아이쿠나. 감사합니다." 출판을 못하게 될까 봐 실망하던 차였는데 적극적으로 다가와 준 게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남은 게 출판 장정! 그림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책에는 필연적으로 그림책 이미지가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림책의 이미지는 작가와 출판사에 저작권이 있다. 함부로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일이 그림책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이미지 사용을 허락받고 필요한 경우에는 이미지 사용료를 내기도 해야 한다.

결국 몇몇 그림책 이미지는 포기해야만 했다. 이미지 사용료를 지불하고 책을 낼 만큼 우리 연구소가 재정적으로 튼튼한 것도 아니고, 책의 성공 여부도 미지수였기 때문이다(ㅠㅠ). 이미지 사용 허락이 '무상'으로 공급되는 그림책의 그림만을 사용하고 나머지 그림책의 그림들은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속이 상했지만 우리 작가들을 '응원하겠다'는 책의 취지를 생각하며 쿨(cool) 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지 허락을 받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의뢰서를 각 그림책 출판사에 보내고,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허락이 떨어지면 그림책의 몇 페이지, 어떤 그림을 사용할 것인지 정확히 알리기 위해 원고와 함께 다시 메일을 보내야 했다.

또 2, 3장 이상의 그림 이미지는 제공이 안 된다고 해서 꼭 필요한 이미지를 선택해야 했다. 이미지 사용 허락은 받았으나 원본 파일은 제공해주지 않아 일일이 복사집에 가서 스캔을 떠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당해야 했다.

그림책 출판사의 이미지 담당자와 한 분 한 분 통화하며 우리 연구소를 소개하고 책의 취지를 설명하길 40여 군데! 우리가 무명 작가라 그런지 참 쉽지 않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출판 계약은 10월에 했지만 다음해 여름이 지날 때까지 우리 책은 오랫동안 나올 수 없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하는 지원사업에 응모하고 발표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이 행복한 결론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장렬하게 떨어지고 말았다.

기다림이 허사로 돌아가자 출판이 어떻게 될까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때부터 책 출판은 본격적으로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원고를 수정하고, pdf파일로 만들어진 책의 디자인을 선택하고, 표지 디자인을 고르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도대체 우리 그림책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가 탄생되었다.

책 읽는 아이들.
 책 읽는 아이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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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판되고 이 책으로 실제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는 사례를 듣는 기쁨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도대체 우리 그림책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궁금해 하며 우리 그림책을 응원하고 있다.

과거 어느 시대보다 자신의 책 한 권 갖기가 쉬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가 열심히 만들어낸 책이 어떤 이들에겐 가치가 없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한 사람의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책을 내어놓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의 저자로 이 땅에 서는 일은 지난한 '원고와의 싸움'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 일을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같이 걷는 길에 힘이 될 수 있다. 공저 책 쓰기는 함께 공부하고 함께 작업하는 행복한 저자가 되는 길이다. 그 길을 우리는 계속 갈 것이다.


도대체 우리 그림책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자랑스러운 우리 그림책 30 생생활용기 & 생각 쑥쑥 마음 통통 독후활동지

박홍선 외 지음, 겨리(2016)


태그:#그림책, #도대체 우리 그림책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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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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