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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기사 : [인터뷰-상] '29만9000원 여행'에 담긴 노동착취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박인규 본부장이 19일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박인규 본부장이 19일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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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법의 사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태국 현지에서 일하는 한인가이드 박인규·전중길씨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엄밀히 말해 태국에서 외국인 여행가이드는 불법이다. 때문에 한인가이드들은 통역사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명목상 가이드인 태국인 한 명과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른바 '메꾸기'의 굴레 때문에, 한인가이드들은 혼자서 여행지에 나가야 하는 상황을 수시로 마주해야 한다. 한국 여행사에서 내놓는 기형적인 여행 상품(가격에 숙박·식사·관광 등의 비용이 포함되지 않은 패키지 상품)으로 인해, 현지 여행사(랜드사)가 인건비를 줄인다는 이유로 태국인을 붙여주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지 경찰에 적발된 한인가이드가 추방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젊은 여성 한인가이드의 일이에요. 태국인 없이 악어농장에 갔다가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여권을 빼앗겼다고 그러더군요. 이후 여권을 받으러 갔다가 라오스로 추방을 당한 거예요. 태국에 자기 재산이 다 있는데 하나도 찾지 못하고 쫓겨난 거예요. 한 달 동안 연락이 안 되다가 어제(지난 16일) 처음 연락이 됐어요. 추방된 후 며칠 동안 고생하다가 라오스 현지 여행사에 일단 들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두 사람은 비슷한 사례를 여럿 쏟아냈다.

"61세 남성 가이드의 사례에요. 이 분은 계속해서 랜드사에 태국인을 붙여달라고 요청했는데 거절당했어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일을 나갔다가 경찰에 체포된 거죠. 불법의 사지로 내몰렸다가 결국 걸린 거예요. 나이 드신 분이 유치장에서 3일 동안 지내야 했고, 일단 공탁금 800만 원을 내고 석방됐어요. 본인 돈으로 낸 거죠. 재판에서 벌금형이 나오면 그나마 다행인데, 추방당하진 않을까 걱정이에요."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전중길 사무처장이 지난 17일 오전 한국노총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전중길 사무처장이 지난 17일 오전 한국노총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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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무슨, 오히려 보증금 낸다"

한인가이드의 불안한 신분을 상징하는 조건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어느 곳에도 고용돼 있지 않다. 대개 랜드사에 소속돼 있지만, 이것도 정식으로 고용된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은 "(랜드사에 들어갈 때) 계약서를 쓰지 않나?"라는 질문에 "그런 거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기자가 "그럼 월급도 없는 것 아닌가"라고 되묻자, 이들은 "월급은 무슨, 오히려 회사에 들어갈 때 보증금을 낸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회사에 따라 100만 원~170만 원 보증금을 냅니다. 메꾸기를 하지 못한 가이드들이 정말 먹고살기 위해 (선택관광과 쇼핑에서 발생한 이익을) 중간에 가로채는 경우가 있는데, 이걸 방지하겠다는 목적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예를 들어 물건을 사간 손님이 반품을 하는 등 컴플레인(항의)이 들어오면 그 보증금은 못 받는다고 봐야 합니다."

임금조차 없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인가이드들이 다른 복지를 기대하는 건 사치에 가깝다.

"600만 원을 들고 한국에서 태국으로 넘어 온 32살 후배의 일입니다. 경영학을 전공해서 처음엔 무역 관련 일을 시작했다가 잘 안 돼서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겨우 메꾸기에 성공해 30만 원을 정산받았는데 한국에 돌아간 뒤 손님이 쇼핑센터에서 산 물건을 환불했나봐요. 그러면서 가이드 팁까지 다 돌려 달라고 했답니다(가이드 팁은 이름만 가이드 팁이지 가이드 손에 들어오지 못한 채 메꾸기를 위해 사용된다-기자주).

그러니까 얘가 당장 방세를 낼 돈이 없는 거예요. 주인에게 자꾸 방세 좀 내라는 전화를 받다보니, 이놈이 저녁에 소주 한 잔 하다가 3층 집에서 뛰어내려버린 거예요. 나중에 들어보니 자기도 모르게 뛰어내렸대요. 아무튼 갈비뼈랑 다리가 부러졌는데 정식으로 고용돼 있지도 않고, 사실상 불법취업자와 다름없으니 보험이 들어 있겠어요? 결국 한인가이드들끼리 돈을 좀 모아서 병원비 좀 보태준 게 전부죠."

두 사람은 "한인가이드를 두고 한국 여행사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얼마 전 태국 치앙마이에서 버스 사고가 일어났어요. 손님들은 한국 여행사를 통해 보험 처리를 받았는데, 가이드는 크게 다쳤음에도 물리치료비 조금 받은 게 전부였습니다. 이럴 때 여행사가 하는 말이 '너는 우리 직원 아니잖아'입니다. 근데 여행 후 손님들이 올린 칭찬글에는 '저희 가이드들은 항상 최선을 다합니다' 식의 말을 해요. 그렇다고 우리한테 무슨 혜택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에요. 칭찬글이 많이 올라오면 가이드에게 금배지 같은 거 하나 주거든요? 자긍심을 가지라나 뭐라나. 그거 받으면 다 던져버려요."

"자격증 발급 재개해야... 세금내며 떳떳이 일하고 싶다"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박인규 본부장이 노조 결성 전 과도한 업무로 인해 병원 신세를 졌을 당시의 사진.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박인규 본부장이 노조 결성 전 과도한 업무로 인해 병원 신세를 졌을 당시의 사진.
ⓒ 박인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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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더 엄밀히 말해 현재 한인가이드들이 내세우고 있는 통역사 신분도 합법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지난해 랜드사 사장으로 구성된 협회와 태국 관광청의 논의 끝에 공식 통역사 자격증(코디네이터)이 발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격증은 지난해 여름 1차로 30명에게 발급된 뒤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일정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꾸준히 자격증을 발급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박근혜 정부가 (국정농단 사건으로) 시끄러워지면서 (자격증 발급이) 중단됐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 자격증을 발급받지 못한 한인가이드들도 일단은 단속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정도다.

이들이 노조(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를 만들고, 인천공항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1인시위를 벌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두 사람은 "우리도 떳떳하게 세금내면서 일하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저희도 이번 선거에서 다 투표한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법의 사지로 내몰리면서 '쇼핑센터에서 한국인 등쳐먹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회의감도 많이 느껴요. 합법적으로 일 할 길(자격증 발급)이 있는데, 이것 역시 진행되고 있지 않아 속상합니다.

자격증 발급만 잘 이뤄지면 우리도 여행 질을 높이고, 스스로 교육 과정도 만들어서 여행객들과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한인가이드들은 한국의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합니다.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대한민국 노동자로서 꼭 되찾아오고 싶습니다."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박인규 본부장이 지난 17일 오전 한국노총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박인규 본부장이 지난 17일 오전 한국노총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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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태국, #가이드, #노조, #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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