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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보 선착장에서 발견된 실지렁이를 와인잔에 담아 보았다.
 공주보 선착장에서 발견된 실지렁이를 와인잔에 담아 보았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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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에 '실지렁이 산책로'가 개설됐다. 실지렁이가 다니는 길은 아니다. 실지렁이가 숨어있는 길이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15일 충청지방에 물 폭탄이 쏟아졌다. 삽시간에 내린 폭우에 금강의 수위가 불어났다. 장맛비는 금강의 강바닥에 쌓인 시커먼 펄들을 상당수 하류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4대강 시설물에 그대로 쌓였다. 공주보 선착장에 쌓인 시커먼 펄이 대표적인 경우다.

26일 물 밖으로 떠밀려 온 시커먼 펄을 살펴봤다. 시궁창이나 하수구에 있어야 할 실지렁이가 강바닥에 살더니, 이제는 산책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수십 마리의 실지렁이를 발견했다.

장맛비가 그치고 햇살이 뜨겁다. 이날 동행중인 성가소비녀회 최다니엘 수녀와 대전충남녹색연합 양준혁 간사와 함께 공주보를 찾았다. 공주보 상류 수상공연장은 최근 불어난 물에 유입된 펄흙이 뜨거운 햇살에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공주보 상류 수상공연장이 지난 15일 불어난 물에 펄이 쌓여있다.
 공주보 상류 수상공연장이 지난 15일 불어난 물에 펄이 쌓여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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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생각에 산책로로 쌓인 진흙을 손으로 파헤쳐 보았다. 바짝 마른 진흙더미 속에서 붉은 생명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환경부가 수생태 4급수 오염지표종으로 지정한 실지렁이였다. 머리카락 굵기부터 살이 오른 통통한 지렁이까지 20여 마리가 발견되었다.

"우와, 진흙이 바짝 말랐다가 엊그제 내린 비로 조금 촉촉해졌다고 살아있네요. 무산소층에서 산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쪼그리고 앉아서 지렁이를 찾던 최다니엘 수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처음 보는 현실에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이다. 공주보가 보이는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시멘트로 포장된 선착장 펄이 쌓인 도로에 가로세로 1m 정도에 선을 표기했다. 환경부가 수생태 저서생물 조사를 벌일 때 조사하는 방식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 위엔 10~20cm가량의 펄이 쌓여 있었다. 마땅한 도구가 없어서 손으로 진흙더미를 헤집었다. 시큼한 시궁창 악취가 풍겼다. 찐득찐득 말라가는 펄은 순식간에 손톱 밑을 파고들 정도로 바닷가 갯벌보다 부드러웠다. 뜨거운 뙤약볕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악취로 숨쉬기가 거북했다.  

"기자님, 여기요."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모든 보 전면 개방하고 콘크리트 구조물 철거해야"

공주보가 보이는 상류 선착장에 쌓인 펄에서 환경부 4급수 수생태 오염지표종인 실지렁이가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공주보가 보이는 상류 선착장에 쌓인 펄에서 환경부 4급수 수생태 오염지표종인 실지렁이가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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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퍽거리는 진흙을 걷어내자 딱딱하게 굳어가는 펄이 드러났다. 머리카락보다도 가느다란 실지렁이가 발견되었다. 준비한 핀셋으로도 잡기가 어려울 정도다.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끊어져 버렸다. 바늘구멍을 통과할 정도로 육안으로 확인된 지렁이만 선별했다.

셋이서 40분가량을 쪼그리고 앉아서 잡은 실지렁이는 어림잡아 70여 마리다. 가는 굵기의 실지렁이는 뺀 숫자다. 한두 마리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실지렁이 찾기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옷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던 양준혁 간사가 한마디 한다.

"호우로 떠밀려온 강바닥 진흙에서 수십 마리의 실지렁이가 발견됐다. 현재 금강의 강바닥은 완전히 썩어버렸다는 뜻이다. 하루빨리 보의 수문을 개방해 유속을 만들어야 퇴적물이 쓸려내려 가고 강이 정화된다. 하지만 금강의 세 개 보 중 중류의 공주보만 한정적으로 수위를 낮춘 상태에서는 아무 효과도 없다. 세 개 보를 전면적으로 개방하고 더 나아가 강을 가로막은 콘크리트를 제거해야만 비단강의 옛 명성을 되찾을 것이다."

장마로 불어난 수위에 쓸려온 진흙에서 실지렁이가 발견되었다는 것도 해외토픽에 오를 일이다. 가로세로 1m에서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강바닥에 실지렁이가 얼기설기 뒤덮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환경부 수생태 오염지표종 자료에 따르면 실지렁이, 붉은 깔따구가 서식하는 곳은 4급수다. 4급수는 수돗물로 사용할 수 없으며 오랫동안 접촉하면 피부병을 일으킬 수 있는 물로 지정해 놓았다. 그러나 백제보 하류 6km 지점에서는 도수로를 통해 금강물이 보령댐으로 공급되어 식수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15일 청주·세종시에 내린 장맛비로 금강의 수위가 상승하면서 불어난 물에 공주보 선착장에 펄이 쌓였다.
 지난 15일 청주·세종시에 내린 장맛비로 금강의 수위가 상승하면서 불어난 물에 공주보 선착장에 펄이 쌓였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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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6월 15일 대전가톨릭대학교 대전교구, 청주교구 신학생 20여 명이 금강을 다녀갔다. 당시 공주보 상류 수상공연장 물속에서 강바닥 펄을 손으로 퍼 올린 학생은 팔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도 했다.


태그:#4대강사업, #실지렁이, #환경부오염지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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