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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7일, 단 이틀의 휴가 일정으로 빠듯한 시간을 경북 영주의 '다스림'이란 숲 치유원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른 새벽 일찍 일어나, 원행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여러 변수에 대비해 부지런히 길을 나섰지요.

다행히도 차는 그리 막히지 않네요. 그런데 지난 밤 불면의 여파인지 아내가 심한 피로감과 두통을 호소해옵니다. 영동 고속도로를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마땅한 휴게소가 있을까 고민하며 찾다가 '덕평 자연휴게소'라는 처음 보는 휴게소를 발견하여 들어갑니다.

안내견 풍요
 안내견 풍요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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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조성 중인 듯 아직 공사 굉음이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산책도 할 수 있도록 넓은 길에 물레방아와 갖가지 조형물들이 눈길을 잡아끕니다. 그리고 곳곳에 전문 식당들과 시원한 바람길에 세워진 야외 식탁에서 이야기꽃도 마음껏 피울 수 있습니다.

한 시간여를 아내와 함께 안내견 풍요를 데리고 산책도 하고 야외 식탁에 앉아 음료수도 마셔가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냅니다. 풍요도 오랜만에 맡아보는 자연의 내음이 정말 반가운 듯, 대지의 붐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연신 코를 킁킁거리네요.

보통 고속도로 휴게소는 편도 차량만을 위해 세워진 것이 정상인데, 이곳은 상하행 모든 차량들을 위해 설계되어 자못 신기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자연과 벗하여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립니다.

새로이 충전된 기를 앞세우고 우리는 다시 경북 영주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오전 열 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영주의 관문인 풍기에는 인삼과 사과 그리고 인견 명소답게 온통 시내 곳곳에 인삼 가게와 인견 가게 그리고 사과 가게들로 즐비합니다.

지난번 이곳에 와서 사간 홍삼의 효능을 익히 경험한 터라, 오늘도 당골 홍삼 가게에서 홍삼을 두 상자 구입해 차에 싣고 '다스림'을 향해 길을 재촉합니다.

아침 다섯시에 이른 식사를 하고 떠난 터라 11시가 조금 넘으니 벌써 배가 몹시도 고파옵니다. 그래서 '다스림' 입구 주치골에 들러 영주 아낙의 손맛이 담긴 된장찌개로 간단한 점심을 해결합니다. 애초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러 들렀던 식당이었으나, 그 집 여주인의 정겨운 손맛과 친절에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워집니다.

포만감에 겨운 배를 어루만지며 다시 차를 몰아 '다스림'에 들어섭니다. 그런데 수목원 전체에 너무도 뜨거운 태양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요.
 포만감에 겨운 배를 어루만지며 다시 차를 몰아 '다스림'에 들어섭니다. 그런데 수목원 전체에 너무도 뜨거운 태양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요.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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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만감에 겨운 배를 어루만지며 다시 차를 몰아 '다스림'에 들어섭니다. 그런데 수목원 전체에 너무도 뜨거운 태양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요. 깊이 생각지 못하고 떠나온 길이라, 챙겨오지 못한 모자와 선크림이 정말 아쉬워집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습도는 그리 높지 않은 듯, 그늘에 들어서면 불어오는 산바람에 온몸이 시원합니다.

아직 두 시에 있을 입실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우리는 수목원 곳곳을 산책하며 싱그런 자연의 향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십니다. 그리고 시원한 그늘막 벤치에 앉아 오랜만에 젖어 드는 여행의 정취에,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피워봅니다.

잠시 후, 입실 수속을 마친 우리는 '주치마을'이란 곳에 방을 한 칸 배정받아 짐을 풀고 들어갑니다. 오후 3시부터 '숲 치유원'의 첫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어, 잠시 시원한 방바닥에 누워 낮잠을 즐겨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방 안엔 에어컨도 없고, 하다못해 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TV도 하나 보이질 않습니다. 그저 선풍기 한 대만 창 밑 벽에 달랑 놓여 있을 뿐. 인간세의 모든 번뇌를 잊고 오직 자연과만 깊게 교감해보라는 뜻인듯 합니다. 뜻은 이해가 가지만, 그리고 평소 우리 부부도 TV나 라디오도 즐겨 접하지 않는 성격이라 조용한 것이 정말 마음에 들긴 하지만...

그래도 시설이 너무 빈약하다 생각하며 더울 때는 어떻게 하지 염려를 해봅니다. 그러나 그런 기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들창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은 피곤한 나그네의 온몸 속속 옷깃을 헤치고 스며들어, 시원하다 못해 오싹한 한기까지 자아내게 합니다.

드디어 오후 3시, 첫 프로그램으로 부채 만들기를 시작합니다. 원래 일정표상에는 올바른 치약 사용 습관과 자일리톨치약 만들기로 되어 있었으나 편의상 한지 부채 만들기로 변경한듯합니다. 먼저 부채의 틀을 참가자 모두에게 나누어 주네요. 그리고 말린 꽃과 함께 한지도 개개인에게 배당됩니다.

부채 틀에 말린 꽃을 풀을 발라 일일이 그리고 정성스레 한장한장 부쳐갑니다. 그리고 꽃잎 사이사이에 자기가 평소하고 싶었던 말이나, 생각나는 단어를 써넣어보라는 강사의 주문에 주위는 일시 숙연한 정적에 젖어 듭니다. 그리고 그 위에 한지를 세심하게 붙여 주름 지지 않도록 꼭꼭 눌러 펼쳐줍니다.

아내에겐 고독한 가을이 물씬 묻어나는 나뭇잎 낙엽들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그리움'이란 단어로 지나간 시절의 향수를 외로운 계절 가을의 향취에 곁들여 부채 위에 아로새겨가는 듯합니다.

제게 배당된 꽃잎들은 화려하고 화사한 색채의 것들이어서 무슨 말을 써넣을까 고민하다, 딸의 이름 '예은'을 풀어 '예쁘고 은혜롭게'라는 문구를 써넣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부채를 들어 각자의 작품으로 참여한 모두에게 소개합니다. 그렇게 부채 만들기를 마치고, 다음 프로그램을 위해 우리 일행들은 강사의 안내에 따라 다시금 주어진 배낭을 하나씩 메고 산으로 줄을 지어 오릅니다.

높지 않은 야트막한 산길이지만, 함께 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곳곳에서 나무 이름과 내력, 그리고 그에 깃들인 여러 일화들을 재담과 함께 숲해설가인 강사가 들려줍니다. 체조와 스트레칭도 함께 배워가며 그렇게 오르다 보니, 어느덧 반환점인 계곡에 도착합니다. 

요사이 계속된 장맛비로 계곡물도 콸콸 아우성치며 소용돌이쳐 흘러내립니다. 돌징검 다리가 놓여진 계곡물을 건너 넓은 산자락에 이르러, 우리는 메고 온 배낭에서 해먹을 하나씩 꺼내 나무와 나무 사이에 연결하여 설치합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저를 배려해, 제 해먹은 강사님이 재빨리 그리고 능숙하게 설치해 주시네요. 해먹에 누워 조용히 두 눈 감고 가슴과 귀를 열어 주변의 자연과 오순도순 대화를 시도합니다. 지저귀는 새소리, 소용돌이치는 계곡물, 그리고 갖가지 풀벌레들이 모두 합해 목청을 돋우니 자연의 웅장한 교향곡이 되어 고요한 산하로 울려 퍼져 갑니다.

지저귀는 새소리, 소용돌이치는 계곡물, 그리고 갖가지 풀벌레들이 모두 합해 목청을 돋우니 자연의 웅장한 교향곡이 되어 고요한 산하로 울려 퍼져 갑니다.
 지저귀는 새소리, 소용돌이치는 계곡물, 그리고 갖가지 풀벌레들이 모두 합해 목청을 돋우니 자연의 웅장한 교향곡이 되어 고요한 산하로 울려 퍼져 갑니다.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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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슴으로 스며드는 자연의 음악을 듣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흘러 하산을 해야 할 때입니다. 올 때와는 달리 내리막길을 설명 없이 쉼 없이 부지런히 걸어 내려옵니다. 이어지는 저녁 식사로 저염식과 무자극성 음식으로 구성된 웰빙 식단이 제공됩니다.

각종 야채와 고추장을 곁들인 비빔밥을 먹고 우리 방으로 돌아오니 방 안은 온통 싸늘한 밤공기로 가득합니다. 오히려 긴팔 옷을 준비해오지 못한 준비 소홀이 후회되네요. 침대도 없는 방바닥에 깨끗한 요를 깔고 누우니 지나온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납니다.

당칸 방 좁은 공간에서 일곱 식구가 포개고 누워 자던 가난한 어린 시절이 되살아오는 것입니다. 안락한 꿈결에서 어린 날의 추억들을 만납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 동생이 함께 모여 나누던 정겨운 식사 모습이 재현되옵니다. 서로 한 숟갈의 밥이라도 더 먹겠다며 머리를 맞대고 바삐 숟갈을 놀려대던 그 어린 날의 식사 모습이 그때와는 다른 정겨운 추억으로 가슴을 덥혀오는 건 웬일일까요?

평소 습관대로 새벽 일찍 눈을 떠보니 오전 4시 무렵입니다. 잠시 풍요의 변을 해결해주러 나갔던 아내가 '아이 추워 추워...' 호들갑을 떨어가며 들어옵니다. 여기까지 와서 사진 한 장 못 찍어가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지 몰라 싸늘한 새벽 공기 속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객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높지 않은 산이 있고 그 산길을 따라 잠시 오르니 팔각정이 있습니다. 자연 속의 흙내음을 그리는 풍요와 함께 우리 가족은 팔각정에 올라 아름답다는 단어 속에 모두 담을 수 없는 자연의 정경을 가슴으로 깊이 받아 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말로 다 표현 못 할 이 정경들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봅니다.

산자락 저 깊은 골짜기에서 붉은 불길을 토하며 서서히 올라오는 태양의 웅대함은 그 어떤 경탄으로도 다 표현 못 할 황홀경입니다. 프레임에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깊고 깊은 어둠의 심연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의 여명을 정성을 다해 소중히 맞아들입니다. 그저 경이롭다는 감탄사만이 제 입에서 연신 흘러나올 뿐입니다.

불길을 토하듯, 광명을 만들어내는 태양에 압도되어 카메라 셔터 누르는 것도 잊고 무아지경에 몰입됩니다. 그렇게 무아지경의 무릉도원을 거닐다 속세로 내려와 다시 인간세의 아침 식사로 끼니를 때웁니다.

심장판막 이식수술로 평생 인공 판막을 착용하고 살고 있기에 제게 저염식을 먹어야 하는 건 필수불가결의 항목입니다. 그러나 직장에서 주로 외식으로 끼니를 이어가야 하기에, 식사는 즐겁다기보다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런 고통 없이 편안한 저염식 식사로 끼니를 해결하니, 제 속도 자못 즐거운 듯, 왕성한 소화력으로 음식물을 받아들입니다. 오전 10시에 퇴실 준비를 마치고 '다스림'에서 마지막 프로그램인 기계 마사지를 두 시간에 걸쳐 받습니다. 그렇게 마사지가 끝나고 나니 온몸이 얼얼하면서도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자, 이제 정말 '다스림'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식당에서 마지막 작별 식사를 마칩니다. 그렇게 진한 아쉬움 속에 작별 오찬을 끝내고 우리는 마침내 귀갓길에 오릅니다. 온몸 곳곳에 영주 '다스림'의 향긋한 내음을 가득 품은 채...


태그:#슢, #치유, #아토피, #살림욕,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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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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