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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이어폰을 끼고 동영상을 보시는 어머니가 젊은이들이 부르는 복음성가를 음정, 박자를 무시하고 따라 부르셨다. 당신도 틀리는 것을 아시지만 엉키는 발음과 꼬이는 혀 앞에 혼자서 웃으며 신나하셨다. 손뼉도 치고 책상을 두드리시며 재미있어 하신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음악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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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것은 목소리가 크셨다. 목소리가 힘차고 크다는 것은 건강하시다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가만히 뒤로 가서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그랬더니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시원해! 아들 힘들어."
"시원하세요? 조금 더 해드릴게요."
"아냐, 아들 힘들어서 안 돼."

어머니의 목소리는 힘차고 강하기까지 하다. 컨디션이 좋다는 신호다.
어머니에게 같은 동영상을 세 번 틀어드렸다. 힘차게 노래를 따라 부르신다.

"어머니! 좋으세요?"
"난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
"그러세요? 그럼 날마다 노래 부르시게 해드릴게요."

동영상으로 음악들으며 노래하시는 어머니
 동영상으로 음악들으며 노래하시는 어머니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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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 보인다. 동영상을 다 보신 어머니를 지정석으로 앉으시도록 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칭찬하듯이 어머니를 칭찬해 드렸다.

"어머니 목소리는 너무 예쁘세요."
"에이, 참."
"젊은 학생들처럼 너무 목소리가 곱고 맑으세요."
"잘해? 호호호. 젊을 때는 더 잘했어."
"어머니, 지금이 더 노래 잘하시는 거예요."
"에이. 참 나 노인네야."

어머니와 대화가 되고 있었다. 치매 어르신들에게 음악과 노래는 참 좋은 임상치료방법 같다. 어머니가 노래하시는 날이면 대화가 된다. 참 신기했다.

음정, 박자 무시한 '어머니표 노래'

어머니에게 막대사탕을 드렸다. 무엇이라도 드리면 곧바로 드시는 법이 없다. 꼭 같이 먹자고 권하신다. 어머니의 컨디션이 좋아 보여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었다.

"어머니, 노래 한번 불러 보세요."
"무슨 노래?"
"아무거나 젊었을 때 불렀던거요."
"다 잊어버렸어. 몰라. 몰라. 에이, 참"
"잘 생각해 보세요. 이런 것 생각 안 나세요?"

내가 선창을 했다.

"노오란 / 샤츠 입은 / 말 없는 / 그 사람이..."

어머니가 조금 따라 하시더니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결국 찬송가를 같이 불렀다. 그런데 같이 부르다가 일부러 노래를 멈췄다. 어머니의 독창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음정, 박자가 무시되는 것은 물론 찬송가에 "노란 샤츠 입은"의 가락이 뒤섞여 어머니 작곡의 노래가 나온다.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웃으면 복이 와 씨익~~~~
 웃으면 복이 와 씨익~~~~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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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음정, 박자를 무시한 노래가 행복 웃음을 가져왔다. 얼마나 웃었는지 배가 아프고 숨을 못 쉴 정도였다. 어머니도 웃으며 계속 노래를 부르신다. 어머니의 노래가 좋아서 웃는 줄 아시는 모양이다.

소파를 손바닥으로 치시며 박자를 잡더니 이번에는 손뼉까지 치신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음을 만드는지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왜 웃어! 좋아. 좋아. 좋아."
"아니에요, 너무 재미있고, 참 잘하셔서 그래요."
"에이, 난 늙었는데 뭐."

웃음과 노래는 명약과도 같다

그렇게 웃고 나니 배가 고팠다. 간식으로 포도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호떡을 준비해 드렸다. 맛있게도 드신다. 어머니 머릿속에 지우개가 만들어지고 난 후 생긴 버릇이 있는데, 그것은 음식을 조금씩 남기시는 것이다. 밥이든 빵이든 우유든 무엇이든지 남기신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시는 날은 남기시지 않고 다 드셨다.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지신 것이다. 어머니에게 웃음과 노래는 명약과도 같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날은 특히 효험이 컸다.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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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어찌나 예뻐 보이는지 마치 딸아이 쓰다듬어 주듯이 어머니 얼굴을 몇 번 쓰다듬어 드렸다. 그랬더니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나를 빤히 보신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머니의 눈이 금세 눈물로 그렁그렁하다. 눈물 많으신 어머니가 또 우신다.

어머니 눈물의 의미를 왜 모르겠는가? 나이를 거꾸로 세어 내려와야 하는 '어른 아이'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그 존재만으로도 힘을 주신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랬더니 따뜻한 어머니의 손이 나를 더 꽉 잡으신다. 나도 두 손으로 어머니 손을 힘 있게 잡아드렸다. 순간 수많은 무언의 대화가 오고 갔다. 말이 필요 없는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 그것은 섬김과 사랑이리라.

덧붙이는 글 |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작가이며,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냈고,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로, '생각과 말'의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와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돕는 구원투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태그:#치매어머니, #나관호, #음악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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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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