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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러운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 기자 말

오랜만에 찾은 병원입구, 휴가기간이라 한산했고 여름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 병원입구 오랜만에 찾은 병원입구, 휴가기간이라 한산했고 여름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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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사무실에 출근 하자마자 '피곤하다' 는 말부터 나온다. 수술하고 지금껏 이정도로 피로감을 느낀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분명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병원에 한번 찾아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곧 병원 진료가 예약 되어 있기에 좀 더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창업 3년 차에 접어든 내 생활 패턴은 일반 사람들과 달리 오후부터 시작된다. 오전 11시쯤 일어나 사무실에 낮 12시쯤 출근해서 오후에 일과를 보고 저녁에 행사 스케줄이 없으면 일찍 집에 돌아온다. 업의 특성상 저녁에 행사 일정이 많이 잡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후부터 근무하는 것이 패턴이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행사가 있는 날은 귀가 시간이 새벽시간이 되는 날도 많아 오전 시간은 자연스럽게 잠자는 시간이 됐다.

최근 더워지면서 잠을 깊이 못자서 그런건지 계속해서 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체중도 많이 늘었고 점점 하는 일도 거래처와의 미팅이 늘어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일게다. 이번에 병원가면 아침마다 먹는 '신지로이드(갑상샘 호르몬제)' 용량을 좀 늘려달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오전 11시는 돼야 일어나는데 병원 진료가 오전 9시에 예약이 돼 있다. 오전 9시 진료면 최소 오전 8시쯤엔 가서 채혈을 해야 진료시간에 맞춰 진료가 가능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일찍 일어나려고 진료 전날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평소 새벽부터 오전까지 잠을 자던 습관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일찍부터 병원으로 갔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병원도 평소보다 한산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본관 3층에 있는 채혈실에 가서 피를 뽑고 5분간 지혈하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일어나 옆 건물 5층에 있는 '갑상샘암 센터'로 갔다.

예약증을 간호사분께 내고 접수를 했다. 채혈 후 결과가 나오는데까지는 최소 1시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내가 진료받을 교수님방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이름이 불려지기만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니 이름이 불려졌다. 6개월만에 진료실에 들어간다. 진료를 받기 전날 창원에 있는 모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 미팅을 하러 갔었는데 거기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말기암 환자들을 봤다. 그들을 보며 남의 일 같지 않음을 느꼈고 오늘 진료실에 들어가는 내 마음은 왠지 더 무거웠다.

오랜만에 만난 교수님은 언제나처럼 환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그리고 혈액검사 결과를 모니터에 띄우시고는 또 지난번과 같은 말을 하셨다.

"약을 잘 안 챙겨 드셨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뭔가가 잘 못됐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최근에 계속 피곤했던게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계속해서 교수님께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이 'TSH(Thyroid-Stimulating Hormone)'수치가 높다고 하셨다. 지난번에도 몇번 이 수치가 높아서(기준치 보다는 낮았다) 약 복용 용량을 높여 낮춘 적이 있는데 이번엔 아예 기준치를 웃도는 수치가 나왔다.

나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빼먹지 않고 약을 잘 챙겨 먹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건강보조제' 같은 거 먹는 게 있느냐고 물으셨다. 하지만 난 그런 것도 먹지 않는다. 보통 여성환자들의 경우 건강보조제등에 들어 있는 성분때문에 수치가 높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며 나의 경우 수치가 왜 높게 나온 것인지는 혈액검사 결과만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셨다.

현재 흰색 1알의 약을 먹고 있는데 용량을 더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여쭤보니 다른 수치들은 괜찮아서 용량을 높여 복용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고 재발 위험의 지표가 되는 'Tg(Thyroglobulin)'는 아주 안정적인 상태로 잘 유지되고 있다고 하셨다. 이제 석달뒤면 만 4년 차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1년만 더 조심하면 그토록 바라면 '완치'가 된다.

향후 8년 이내 사망할 확률이 69% 높다

내년 1월 마지막 정기 초음파 검사를 예약했다
▲ 초음파 검사 예약 내년 1월 마지막 정기 초음파 검사를 예약했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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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을 나와 검사예약센터로 갔다. 수술 후 1년에 한번씩 수술부위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재발 여부를 확인하고 있기에 내년 1월에 있을 초음파 검사를 예약하기 위해서다. 이번 초음파 검사를 받고 나면 이제 완치까지 채 1년도 남지 않게 된다.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그 힘든 시간도 이제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병원 볼 일을 마치고 매번 찾던 병원 앞 약국에 갔다. 지난번부터는 항상 약 처방시 함께 따라오던 비타민제도 처방되지 않고 오로지 신지로이드만 처방되고 있다. 조그만 흰색 알약 하나. 이 약이 내 삶을 계속해서 유지시켜주고 있는 생명줄 같은 것이다. 6개월동안 건강하게 살기 위해 또 쇼핑백 한가득 약봉지를 담아왔다.

집에 돌아와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집에서 나갔고 3시간 정도만에 집에 돌아왔다. 어젯밤 한숨도 못잔탓에 피로가 몰려왔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또 6개월간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다. 문자를 보내 동료들에게 오늘 사무실에 못나간다고 했다. 창업하고 제일 좋은 것 중에 하나다.

오랜만에 평일 오후 여유를 즐기며 어머니와 함께 맛있는 점심도 먹고 극장에 가서 영화도 한편 보고 마트에서 쇼핑도 하고 여느 사람들처럼 일상을 즐겼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앞치마를 매고 토마토 파스타와 야채스프를 만들어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그 일상을 아주 소중하게 즐겼다.

4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최근엔 내가 아직도 '중증환자'라는 사실을 망각한채 살기도 한다. 아마도 5년간 6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오라는 이유가 '정신차리라'는 신호 같기도 하다. 또 이렇게 병원에 한번 다녀오고나면 한동안은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다.

처음으로 기준치보다도 더 높게 나온 TSH 수치가 신경쓰여 이리저리 관련 자료들을 뒤지며 공부를 했다. 그러다 한가지 충격적인 글을 보게 됐다. 'TSH수치가 2.5~5.0(기준치가 4.5까지이며 내 수치는 4.65였다.)인 사람은 TSH가 1.5인 사람보다 향후 8년이내 사망할 확률이 69% 높다' 는 내용이었다.

한동안 그 글을 읽으며 멍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돌아온 오늘 하루 일상.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르는 우리 어머니와 가족들, 그리고 나와 함께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동료들 모두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8년이 됐든 5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며 살자. 언젠가 그 날이 와도 웃으며 맞이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샘암 환자들에게 힘이 되어줄 책 '암~ 난 행복하지'의 출판을 응원해주세요.
http://daddytt.blog.me/220608142273



태그:#갑상샘암, #대학병원, #진료, #완치, #핼액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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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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