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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도착한 이메일 한 통. <책이 나왔습니다>에 원고를 부탁한다는 메일이었습니다. <사는 이야기>와 같이 삶 속에서 일어난 '살아있는 글' 한편 올리지 못한 나로서는 좀 난감하였지요. 내가 쓴 글 목록에 '죽은 글' 한편 더 올라가겠군,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지난 2월 <오래된 마을 옛담 이야기> 책을 낸 후 생각에 잠겼습니다. 글은 왜 쓰는지, 어떻게 쓰는지, 몇 번에 걸친 라디오 인터뷰 때나 주변 사람들이 쏟아낸 질문들... 이는 나에게 묻는 근본적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처음부터 책을 내려고 했는지, 어떻게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게 되었는지, 전문작가라면 듣지 않아도 될 질문들이 이어졌지요. 이 글을 계기로 마음속에 담아온 생각을 끄집어내봅니다.

나는 '누구나' 가운데 한 사람, 왜 글을 쓰는가?

2014년,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시작해서 2017년 2월 책으로 나왔습니다.
▲ <오래된 마을 옛담 이야기> 2014년,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시작해서 2017년 2월 책으로 나왔습니다.
ⓒ 네잎클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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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표현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삶에서 우러나온 자기 생각을 옆 사람 혹은 이웃, 사회와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공유수단은 말 또는 글이지요. 말이 입에서 나오면 이야기요, 강의요, 강연입니다. 글자를 사용하여 표현하면 곧 글이 되므로 글은 말에서 나온 것이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 말에서 나온 글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지 글짓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쓴 글, 못 쓴 글을 따지기 전에 참 글인가, 거짓 글인가, 살아있는 글인가, 죽은 글인가 먼저 가려야 할 것입니다. 

살아 있는 글이란 어떤 글일까요? 이오덕 선생은 <우리 문장 쓰기>에서 글은 말에서 온 것으로 말이 되게 쓰는 것이 살아있는 글이요, 참 글이라 했지요. 말은 생각에서, 생각은 삶에서 온다고 했으니 글을 쓰는 것은 삶을 이어가고 생명을 가꾸는 길이라 하였습니다.

유치원생이나 저학년 초등학생들에게 오늘 한 일을 글로 적어보라고 하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 해보라 가르치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일겁니다.

선생은 "글쓰기는 일부 특수한 사람만이 즐기는 기술이 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이 그것을 즐기고 글쓰기로 자기표현을 하는 가운데 삶을 가꾸어나가야 한다. 글은 작가나 그 밖의 특수한 사람만이 쓰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이 써야한다. 농민도 어민도 노동자도 상인도 공무원도 교원도 누구나 써야한다"고 했지요. '모든 사람', '누구나'가 중요합니다. 나는 선생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누구나' 중의 한 사람으로서 14여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의 큰 장(場), <오마이뉴스>

마음이 어수선할 때 들른 마을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보고 싶습니다.
▲ 다시 보고 싶은 옛담 마음이 어수선할 때 들른 마을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보고 싶습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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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담은 강보리밥 같은 강담입니다. 여서도마을 담을 본 첫인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서정적인 마음이나 미적 감정만 갖고 볼 수 없지요.
▲ 인상적인 옛담 섬마을 담은 강보리밥 같은 강담입니다. 여서도마을 담을 본 첫인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서정적인 마음이나 미적 감정만 갖고 볼 수 없지요.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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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발표할 자리가 없으면 글을 쓸 힘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마이뉴스>는 나에게 고마운 존재죠. 나와 <오마이뉴스>의 연은 깁니다. 2003년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였으니까, 웬만한 <오마이뉴스>직원보다 오래 되었을지 모릅니다.

원고료를 올려주고 신입직원을 뽑고 사업을 확장해갈 때 내 회사가 잘 나가는 것처럼 기뻐하기도 하였지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기치 아래 출발한 <오마이뉴스>는 모든 사람은 글을 쓸 수 있고 써야 한다는 선생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합니다. 

글을 쓰기 싫거나 쓸 말이 없을 때 누구한테 간섭받지 않고 몇 달, 몇 년이고 쓰지 않아도 '허락되는' 자유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쓰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사람, 쓸 말이 없는 사람이 끊임없이 써내어 글 공해를 일으킬 일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었지만 글을 쓸 때마다 혹시 내 글이 '잉여(剩餘) 글'이나 '공해 글'은 아닌지, 의심하며 써온 것도 사실입니다. 

2014년은 지워버리고 싶은 한해였지요. '세월호 참사', '윤일병 폭행 사망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 참담한 한 해로 기록되었습니다. 세상 깊숙이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참담하여 눈은 감아버리고 귀만 살짝 열어놓은 나에게 '오래된 마을 옛담'은 변방에서 울리는 희미한 희망의 북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북소리 향해 귀 기울이며 연재를 시작하였습니다. 증권사 샐러리맨으로 일하면서 쪽 잠 자듯 '쪽 여행'을 떠나 '쪽 글'을 남겨오던 내가 글 속에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시작한 내 마음 속 '장기프로젝트'였습니다. 연재를 시작한지 1년 반쯤 지났을까요, 출판사 <네잎클로바>에서 책을 내자는 제의가 왔습니다.

연재를 얼추 반 정도 해온 터라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동의를 하였지요. 글쓰기를 시작한 지 14년 만에 책이 나온 셈입니다. 책을 내려고 글쓰기를 한 것은 아니니까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말이죠. 전문적으로 책을 내는 사람이라면 바보 같은 일을 했다고 할 겁니다. 

"왜 옛담인가?" 책을 낸 뒤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주로 한국미와 한국문화에 대해 글을 써온 나에게 옛담은 이 범주에 들어가는 한 글감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연재하기에 알맞은 글거리였지요. 책을 낸 후, 나를 '담꾼', '옛담 덕후'라 부르기도 합니다만,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입니다. '담 구경꾼'으로 불리는 것에 만족합니다.   

책보다 글쓰기

한주종택 옛담. 돌담과 흙돌담, 한주종택 대문과 회화나무, 여행객이 자아내는 풍경은 조선 선비가 상상하여 그린 그림 같습니다.
▲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 한주종택 옛담. 돌담과 흙돌담, 한주종택 대문과 회화나무, 여행객이 자아내는 풍경은 조선 선비가 상상하여 그린 그림 같습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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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내마을 옛담 고샅은 깊습니다. 마을사람들 성정과 어울려 성난 우리를 치유해줍니다.
▲ 가장 푸근한 옛담 삼지내마을 옛담 고샅은 깊습니다. 마을사람들 성정과 어울려 성난 우리를 치유해줍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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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오덕 선생의 글과 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글은 말에서 나왔고 말은 생각에서, 생각은 삶에서 나온 것이므로 삶이 곧 말이요 글이라는 것이죠. 글 다음이 뭘까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은 단지 글을 엮은 것이므로 책은 글에서 나온 것이죠. 삶→생각→말→글→책의 과정을 밟게 됩니다. 언젠가 모르게 이게 뒤바뀌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이 글을 지배하고 글이 말을 지배하여 책→글→말→생각→삶으로 거꾸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쓸 글이 없는데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는 않은지 요? 기자나 전문작가는 물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억지 글쓰기'를 잠시 미루고 열심히 취재하고 일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가꿀 때 할 말이 생기겠죠. 그때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거겠죠.

처음부터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책이 오염되고 강박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런 강박에서 해방되려면 엉뚱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책을 쓰지 말고 글을 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만 가려서 말하듯 '말이 되는 글'을 써야겠지요. 

그 다음은 출판사의 선택에 달렸겠죠. 그들의 품에 안기는 것은 순전히 운이라 생각할지모릅니다. 그러나 그동안 글을 쓰며 잘 몰랐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생각보다 많은 출판 관계자가 내 글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잘 팔릴 만한 책을 선호하는 출판사도 있지만 글감이 좋아 책을 내고 싶어 하는 '훌륭한' 출판 관계자가 많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잘 팔리지 않은 대가는 출판사 대표와 내가 감당해야 할지모릅니다. 이때부터 출판사와 나는 '운명'을 함께 합니다. 이런 출판사는 꼭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과 절박감까지 생깁니다. 내 책도 제목으로 짐작을 했겠지만, 잘 팔리지 않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 말주변 없는 내가 라디오 인터뷰까지 응하였으니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글쓰기를 계속하다보면 책으로 엮일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 속에 다음 책은 없습니다. 현재 연재하고 있는 '굴뚝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대로 숨어 있는 한국미를 찾아 떠날 겁니다. 꽃담, 꽃문, 옛다리, 옛길, 유물에 담긴 한국인의 얼굴, 정자, 서원, 원림.

초봄 새벽녘 부안 내소사 대웅전 꽃문에 홀린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나 일 것입니다. 한여름 한낮 소나기가 지나간 뒤, 무지개가 걸려있는 고성 건봉사 무지개돌다리(홍예)를 보며 땀을 훔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반갑게 맞아주길 바랍니다.

어둑어둑한 가을 어느 날, 어머니 닮은 경주 남산 부처골 감실불상을 보고 어깨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가 있다면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해주길 바랍니다. 동짓날 아침, 해남 대흥사 천불전 꽃담을 보며 넋을 놓고 있는 이가 있다면 나무라지 말고 먼저 다가와 인사말이라도 전하길 바랍니다.

남사마을은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불립니다. 마을 옛집의 고매(古梅)에서 뿜어내는 매화향 가득한 봄에는 남사를 따라올 마을이 없지요. 나무 밑을 지나면 부부금슬이 좋아진다는 몸 섞은 나무는 덤입니다.
▲ 추천하고 싶은 옛담 남사마을은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불립니다. 마을 옛집의 고매(古梅)에서 뿜어내는 매화향 가득한 봄에는 남사를 따라올 마을이 없지요. 나무 밑을 지나면 부부금슬이 좋아진다는 몸 섞은 나무는 덤입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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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마을 옛담 이야기 - 세월의 흔적을 따라가는

김정봉 지음, 네잎클로바(2017)


태그:#오래된 마을 옛담, #네잎클로바, #옛담, #오래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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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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