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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고든의 저서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표지의 일부.
 로버트 고든의 저서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표지의 일부.
ⓒ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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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미국 거시경제학자 로버트 고든이 쓴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 빠르게 반응한 것은 보수언론이었다.

그중에서도 <중앙일보>의 동작이 가장 재빨랐다. 이 신문은 전화로 저자를 인터뷰한 뒤, "AI가 이끌 4차산업혁명? 그런 건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며칠 뒤 <조선일보>도 "4차산업혁명과 빅데이터는 허구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공교롭게도 이 신문들은 그동안 '4차산업혁명'을 열심히 팔아먹던 매체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보도가 흥미를 끈 이유가 단지 '충격적 반전'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눈에 더 특이해 보였던 점은, 고든의 책을 '4차산업혁명'과 결부시키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습이었다.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의 핵심주제는 첨단 기술이 아니다. 고든은 자신의 책에서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장에 익숙해져 있어서 이것이 '정상'이라고 믿으며, 성장하지 않는 상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고든은 이 상식을 뒤집는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인류가 경험한 고속 경제 성장은 인간 역사에서 '일상'이 아니라 '예외'에 가까운 희귀한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경제성장이 끝났다고 단언하며, 주된 이유를 인구학적 변화, 빈부차, 비싼 대학 등록금 등에서 찾는다.

한국 언론의 보도와 달리, 고든은 기술의 눈부신 발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기술이 지난 한 세기 반, 다시 말해 인류가 가장 뛰어난 혁신을 이룬 속도로 발전한다고 가정하고 경제성장률 예상 그래프를 그린다. 그 결과가 과거 성장률의 반토막 수준이다.

만일 기술혁신이 더뎌진다면? 당연히 반토막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기술 혁신이 없어서 성장을 못하는 게 아니라, '혁신 할아버지'가 와도, 다른 사회적 요인이 따라주지 못하면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당연한 말이다. 기술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사회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직 기술적 가능성 하나를 놓고 '산업혁명 어쩌구'를 읊어대는 사람은 사회와 경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보수언론의 '4차산업혁명' 발빼기?

 네이버의 검색 트렌드를 보면, 4차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지난 4-6월에 크게 올랐다가 이후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네이버의 검색 트렌드를 보면, 4차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지난 4-6월에 크게 올랐다가 이후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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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4차산업혁명 장사' 선봉에 섰던 보수언론의 배신이 얄미울지도 모르겠다. '4차산업혁명'으로 야심차게 수업을 개설 중인 대학이나, 이 주제로 책을 써서 '대박'을 터뜨려보려는 열망을 지닌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잔치는 끝났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이 '4차산업혁명'과 별 관계도 없는 고든의 책을 소개하며 '4차산업 혁명은 허구다'를 외치는 것을, 나는 일종의 면피 행위로 본다. 눈치 빠른 상업언론이 이미 '파장' 분위기를 간파한 것이다. 앞으로도 얼마간 '4차산업혁명'을 우려먹겠지만, 목소리를 서서히 줄여가다가 나중에 언제 그랬냐는 듯 딴청을 피울 것이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로버트 고든도 아니고, 그의 책을 열심히 소개하고 있는 보수언론도 아니다. 검색 트렌드가 말해주듯, '4차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은 대선이 있던 5월에 정점을 찍은 뒤 꺼져가고 있는 중이다. 뭔가 요란하기는 했으나, 실속이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은 것이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인류역사에서 늘 되풀이되어 온 헛소동의 재탕일 뿐이니까. 라디오가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화성인과 교신할 수 있게 됐다'고 흥분했고,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는 '마법의 구슬이 탄생했다'고 열광했다.

인터넷이 일상화되기 시작했을 때는 "이제 '민족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마당에, 국경이나 내-외국인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것도 기술 문외한의 주장이 아니라,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창설자이자 초대 소장이었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의 확신에 찬 예견이었다.

이런 허풍이 되풀이되는 것은 사람의 기억력이 짧은 탓이겠지만, 망각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매번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도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게 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전문가'들의 왜곡이 다수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는다면, 이들에게 수치심을 깨닫게 해 줄 필요가 있다.

파장 분위기 '4차산업혁명론', 그래도 글 쓰는 이유

4차산업혁명론의 '조기 파장' 분위기로인해, 올 초부터 4차산업혁명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글을 연재해 온 나로서는 조금 '김 새는' 상황이 되었다. 4차산업혁명의 열기가 뜨거워야 적극적인 반론도 쏟아지고, 토론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계속 쓰려고 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입체프린팅, 공유경제 등의 기술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거나 새 경제성장의 동력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신기술이 무의미하거나 아무런 사회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 기술들은 유용하기도 하지만, 심각한 사회적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만일 기술의 진행 방향을 시민사회가 주도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대다수의 삶에 큰 해악을 끼칠 것이다. 미래형으로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시간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에서 '4차산업혁명론 전도사'로 활약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한국에 4차산업혁명이 보이지 않는다'고 위기감을 높이면서, '우리도 빨리 뭔가 해야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빨리 하자'면서도 구체적으로 뭘 해야하는지는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신기술이 가져 올 폐해, 예컨대 고용불안, 저임금, 실업 등에 대해서는 아주 손쉬운 답변을 내놓는다. '로봇세를 걷으면 된다'는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실업이 발생할 때 세금을 물려 실직자의 생활보조를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외계인이 아닌가 싶다. 알다시피, 한국은 지금 법인세를 인상하는 문제를 두고 각계가 치고 받으며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25%에서 22%로 낮춘 법인세를 원래대로 복귀 시키는 법안 하나를 두고도 재계와 보수언론에서 '세금 폭탄'이니 '경제파탄'이니 난리법석을 떠는 판이다.

이런 재계와 보수언론이 왜 '로봇세'에는 거품을 물지 않을까? 공상과학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공허한 이야기는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불편해 하지 않는다.

'로봇세' 말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사람들은 '로봇' 하면 공상과학 영화에서 본 이미지를 떠올린다. 모습이나 행동이 인간을 닮은 기계 '안드로이드(android)'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고, 앞으로도 빼앗아 갈 것은 이런 상상 속의 기계가 아니다.

현재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을 대량으로 해고하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경비로봇'이 등장해서인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경비원 모자를 쓰고 단지를 누비는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스마트 보안 시스템'이라는 장치다. '로봇세'를 주장해 온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다. 스마트 보안 시스템에 '로봇세'를 물려야 하지 않을까?

 인천공항에 설치된 승차권 무인 발매기.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로봇'은 공상과학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 닮은 기계들이 아니다.
 인천공항에 설치된 승차권 무인 발매기.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로봇'은 공상과학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 닮은 기계들이 아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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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한국행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몇 가지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처음 마주친 것은 '무인 입국심사대'였다. 카메라가 설치된 유리문 앞에서 여권을 스캔하고 손가락을 갖다 대니 스르르 문이 열렸다.

심사원에게 여권을 내밀고 도장을 받는 과정이 불필요해진 것이다. 이 시스템은 입국 심사관의 일자리를 하나둘 앗아갈 것이다. 자동출입국시스템에 '로봇세'를 물려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심사원 로봇이 심사대에 앉아 '무쇠팔'로 여권에 도장을 찍는 (결코 오지 않을) 그날까지 기다려야 할까?

공항문을 나서 버스터미널로 갔을 때, 두 번째 큰 변화를 목격했다. 매표소 창구가 대거 사라졌고, 그 자리에서 자동발권기 수십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표를 끊어주던 매표소 직원들은 지금 어디에서 일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태는 '로봇세론자'의 천진한 발상과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 예컨대 어느 순간 일자리를 빼앗을 로봇이 눈알을 굴리며 '짠'하고 나타나고, 사람들이 '저…저놈에게 세금 매겨!'라고 외치는 상황은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자판기, 무인 계산대, '하이패스' 단말기, 교통카드, 앱처럼 일상적 장치들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로봇'은 '자동화(automation)'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경비 로봇은 경비 아저씨를 닮지 않았다

 남부터미널의 매표소가 대거 사라지고, 이제 그 자리를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이 변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남부터미널의 매표소가 대거 사라지고, 이제 그 자리를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이 변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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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미국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이 고대 로마 시절부터 전해오던 건축 철학을 정리한 말이다. 이 말은 기술의 진화방식을 설명하기에도 적합하다. '스마트 보안 장치'가 경비 아저씨를 닮지 않았듯, 페인트공의 일자리를 빼앗을 기계가 페인트공을 닮을 이유는 없다. 예컨대 페인트 분사기가 달린 드론(무인비행체)으로 충분한 것이다.

기술은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하기보다 노동의 형태와 질을 변화시킨다. 페인트칠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기에 상응하는 임금이 주어진다. 하지만 '페인트 드론'이 도입되면 페인트공이 할 일은 드론에 페인트를 채우고 분사 노즐을 닦는 단순노동으로 바뀌게 된다.

한국의 학습지 방문교사를 보자. 이들의 노동은 본래 개인의 능력과 개성이 크게 작용하는 일이었다. 학생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교사가 인기를 끌고, 이것은 개인간의 수입의 차이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제 방문교사의 노동은 태블릿 피시에 설치된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틀어주고 오는 단순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단순직의 특징은 임금이 낮고, 해고와 대체 고용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술 발전이 자연적 진화가 아니라는 사실은 앞의 기사에서 밝힌 바 있다. 새로운 기술이 소개될 때, 우리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기술은 누구에계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인가? 노동자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고용주를 위해서인가? 사회 다수를 위해서, 아니면 소수 특권층을 위해서?

4차산업혁명, "겉멋만 부린, 멍청한 소리"

 미국은 소위 '4차산업혁명 기술'을 가장 잘 갖춘 나라로 꼽히지만, 생산성은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미국 뉴스매체 <쿼츠>는 지난해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소위 '4차산업혁명 기술'을 가장 잘 갖춘 나라로 꼽히지만, 생산성은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미국 뉴스매체 <쿼츠>는 지난해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 Qu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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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수경제지 <아시아경제>도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서평을 실었다. 이 매체는 책을 짧게 소개하면서 "4차 산업혁명은 허구?…'기술낙관론자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정보통신기술의 융복합을 통한 고도의 자동화가 생산과 소비의 근간을 바꿀 것이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감은 신화와 마찬가지로 자리매김한 상황이다."
그리고는 "이 거대한 신화적 믿음을 허구라고 일축한 책이 최근 신간으로 나왔다"고 덧붙인다.

정확히 말하면, 4차산업혁명에 대한 "거대한 신화적 믿음"은 한국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이제 '있었다'라고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미국을 보자.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공유경제, 인공지능 등에서 이 나라만큼 발전된 기술과 자원을 가진 나라도 없다. 이 '4차산업혁명의 종주국'의 생산성은 얼마나 뛰어 올랐을까? 이 나라의 2016년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낮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미국 <슬레이트>지는 다보스가 '4차산업혁명론'을 발표하자 마자 그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기사를 냈다. <가디언>은 보다 훨씬 원색적인 표현으로 그의 책을 비판했다.
 미국 <슬레이트>지는 다보스가 '4차산업혁명론'을 발표하자 마자 그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기사를 냈다. <가디언>은 보다 훨씬 원색적인 표현으로 그의 책을 비판했다.
ⓒ S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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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 살고,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지만, 그곳에서 4차혁명에 대한 '신화적 믿음'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 2016년 다보스 회장 클라우스 슈밥이 4차산업혁명을 처음 소개했을 때, 미국 <슬레이트>지는 "무의미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한술 더 떠 "겉멋만 부린, 멍청한 소리로 가득한 책"이라는 서평을 실었다.

한국사회는 순진한 (혹은 영악한) 발상으로 쓰여진 허술한 책에 종교적 권위를 부여했다. '뒤쳐지면 안 된다'는 한국사회의 강박적 경쟁주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일순간에 꺼질 허풍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파장'을 서운해 하지 말자.

덧붙이는 글 | 다음 글에서는 '4차산업혁명'을 대체할 훨씬 현명한 대안인, 독일연방정부의 '산업4.0'과 '노동4.0'에 대해서 살펴볼 계획이다. 명칭에는 '4'가 들어가지만, 4차산업혁명론과는 전혀 다른 개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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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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