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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보리출판사 앞마당에 들어선 밧줄과 그물로 만든 놀이터
 경기도 파주시 보리출판사 앞마당에 들어선 밧줄과 그물로 만든 놀이터
ⓒ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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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보리출판사 앞을 지나다보면 책 만드는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구조물이 눈에 띈다. 알록달록 칠해진 마름모꼴 구조물 여러 개가 길게 이어져있고, 그 안은 거미줄처럼 밧줄이 엮여 있다. 이른바 '밧줄과 그물로 만든 놀이터'다.

미끄럼틀과 그네, 시소가 없는 놀이터라니, 무척이나 낯설었다. 누가, 왜 이런 놀이터를 만들었을까. 지난 8월 17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놀이터 제작을 이끈 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PaTI, Paju Typography Institute) '생활기술과 놀이멋짓 연구소' 김성원 소장을 만나보았다('멋짓'은 '멋을 짓는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놀이터가 필요하다

"한국의 놀이터는 어딜 가나 똑같다. 유럽 사회가 1930년대부터 놀이터 획일화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획일화된 놀이터가 일본을 통해 한국에 전해진 탓인데, 산업주의의 유산이자 국가주의의 유산이다. 놀이터를 살리기 위해서는 놀이터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게 먼저다."

그는 판에 박힌 듯한 우리의 놀이터 문화가 "아이들의 경험을 축소하면서 규격화된 세계에 살도록 강요한다"고도 꼬집었다.

"놀이터는 아이들 스스로 관계를 발견하고 구성해나가는 아이들만의 시민사회이자 공화국이다. 이러한 공간이 골목과 공터, 자유 시간과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새로운 놀이터가 필요하다."

그가 보리출판사 앞마당에 만든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놀이 문화를 돌려주려는 첫 걸음인 셈이다. 'C프로그램'이 돈을 댔고 '놀이터 멋짓기 워크숍' 참여자들도 힘을 보탰다.

그가 만들려는 놀이터는 이른바 '모험 놀이터(Adventure Playground)'라 불린다. 아이들 스스로 구상하고 만들어가는 놀이터라는 점에서 여느 놀이터와 다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재료로 구조물을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 놀이 활동을 조직하면서 놀이터의 본질을 바꿔나간다.

"자격을 갖춘 건축가나 조경업체들만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만드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놀이터가 '모험 놀이터'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선 아이들이 또래나 어른들과 더불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생각하면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 모험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최상의 조건을 제공하는 창의의 공간이자 사회적 소통의 공간이다."

김성원 소장
 김성원 소장
ⓒ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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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놀이터 만드는 일을 도시에서 공유지를 확보하는 '공유지 운동'으로 이어가려 한다. 유럽에선 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폐허 위에서도 온갖 잡동사니(Junk)를 모아 아이들에게 놀이공간을 만들어주었고, 전후 재건으로 도시에 개발 열풍이 부는 가운데서도 시민은 이러한 공터를 국가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공유지'로 지켜나갔다. 68혁명으로 고조된 무정부주의도 도시에 자유의 기운을 불어넣는 데 한몫했다. 이렇게 '모험 놀이터'는 잡동사니 놀이터(Junk Playground), 무정부 놀이터(Anarchy Playground)로 불리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시민이 먼저 나서자 지방정부도 놀이터를 만들고 지키는 일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1998년 런던 자치구와 시의회의 주도로 아이들의 놀 권리와 공간을 지키려는 'London Play'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는 "유럽에서 모험 놀이터는 시민과 아이들이 함께 만드는 제작의 공간, 작업마당이기도 하고, 텃밭이기도 했다"며, "놀이터를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상상놀이터를 비롯해 새로운 놀이터가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놀이터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구 사회가 가진 160년에 달하는 놀이터 역사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없다. 놀이터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자칫 트렌드처럼 번져가는 건 위험하다."

귀촌 그리고 적정기술과의 첫 만남

김성원 소장을 찾는 이들은 다양하다. 그만큼 그는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적정기술부터 자전거와 직조, 천연 페인트와 미장 등이 그가 지금까지 파고들었던 분야들이다. 두 달 전에 나온 <시골, 돈보다 기술>(소나무)을 비롯해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 집>, <근질거리는 나의 손>, <자전거로 충분하다>, <화목난로의 시대> 등 그가 낸 책만도 벌써 열 권이다. 어느 하나에 꽂히면 긴 시간 진득하게 파고든다는 그는 미장과 천연 페인트를 붙든 지 벌써 7년째라고 했다.

그는 도시에 살다 마흔을 앞두고 전남 장흥 시골로 내려갔다. 아는 이도 없던 낯선 곳이었지만, 그는 이때부터 "인생이 풀렸다"고 한다. 적정기술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처음에 흙부대 집을 만들었고, 그 다음에 화덕난로를 만들었다. 내 삶에 필요한 걸 생태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며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적정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흙부대 집은 말 그대로 흙이 담긴 부대(자루)를 쌓아올려 지은 집을 말한다.)

로켓스토브를 만들고 있는 김성원 소장
 로켓스토브를 만들고 있는 김성원 소장
ⓒ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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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이 몸에 배어있던 그는 흙부대 집이나 화덕난로를 만들면서 익힌 기술과 경험을 인터넷 카페와 SNS에 올려 다른 이들과 나누었고, 그러다보니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워크숍과 강의를 하게 되었다.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도 꾸렸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기술과 경험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졌다고 한다. 처음엔 귀촌자로서 삶의 필요로 적정기술을 익혔다면, 2014년 즈음엔 다음 세대에게 기술을 전하는 활동이 더해진 것이다. 그가 놀이터에 매달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아이들에게 자신의 기술과 경험을 더 쉽게 전하기 위해서다.

그가 생각하는 적정기술의 본령은 "기술의 민주화"다.

"적정기술은 하이테크(High Tech)와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다. 기술을 적용할 때, 누가 기술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또는 기술의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시민에게 더 쉽고 편하게 전달할 것인가, 기술의 자원과 자산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쓰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놓쳐선 안 된다."

다시 적정기술의 의미를 묻다

오늘날 한국의 적정기술은 그의 마음 같지는 않다. 그는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의 적정기술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실패했다. 지속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정부개발원조) 적정기술이든 도시 적정기술이든 모두 지역에 뿌리 내리지 못했다는 게 그의 평가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아픈 평가이기도 하다.

"우간다에 가보니 도시만 근대화가 돼있을 뿐, 농촌은 원시시대에 가깝다. 적정기술로 뭔가를 만들어도 그들의 수입으로는 살 수가 없다. 대부분의 제3세계가 그렇다보니 현지화에 실패하게 된다. 우리나라 도시 적정기술도 여전히 체험프로그램과 워크숍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적정기술이 도시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는 뭘까. 그는 첫 번째 이유를 도시의 구조에서 찾았다.

"이미 도시 환경은 자본주의에 의해 구축된 기계적 시스템이다. 이걸 바꾸지 않고 사람들한테 적정기술이 필요하다느니, 생태적으로 살아야 한다느니 아무리 떠들어봐야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최근엔 그도 이 단단한 구조에 "틈을 낼 가능성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도시 인구가 줄면서 우리 사회의 개발압력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건물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회에 내놓는 '기부채납'이 늘고 있는 것도 좋은 신호로 꼽았다.

"이럴 때 새로운 공유지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공원만 만들 게 아니라 시민이 창조하고 놀 수 있는, 진짜 시민 활동을 위한 공간,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전환을 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럴 때 적정기술도 뿌리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적정기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꼽았다. 외국에서 들여온, 제3세계와 농촌에 적합한 적정기술을 그대로 도시에 적용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라도 도시에서의 적정기술은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 사회혁신의 도구로서 도시에 맞는 적정기술을 찾아내고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아이템에만 매달리지 말고 "도시의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적정기술에서 수공예로 한 걸음 더 내딛다

그는 수공예, 특히 직조에도 관심이 많다. 협동조합 일로 몹시 지쳐있던 무렵, 문득 수공예가 떠올랐다고 한다. 직조로 가족을 먹여 살렸던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갑자기 그 기억이 딱 떠올라" 마주앉게 된 베틀은 그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는 수공예에 점점 빠져들었다. 직조에서 목공예로 그리고 대장간 작업으로.

"외국 영상을 보니 초등학생 쯤 돼 보이는 아이가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대장작업을 하고 있더라.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쇠 만드는 일을 배우는 거다. 대학 고급 과정을 비롯해 이런 교육이 사회적으로 촘촘하게 짜여있다. 유럽 금속기술의 경쟁력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학 금속공예학과에서도 쇠를 직접 만들지 않는다.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수공예가 현대 산업의 경쟁력의 근간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고 했다.

베틀로 직조를 하는 김성원 소장
 베틀로 직조를 하는 김성원 소장
ⓒ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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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7 서울시(서울혁신파크) 사회혁신×리빙랩 프로젝트' 공모에 뽑힌 생활 직조 모델 만들기(123 컬렉터) 프로젝트를 곁에서 돕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직조가 생활기술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취미를 넘어 지역공동체의 경제 활동에 적용될 수 있는 기술로 직조가 뿌리 내리도록 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수공예가 현재화 되려면 아주 종합적인 모델이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그가 말한 '현재화'란 '과거의 기술을 오늘날에도 사용할 수 있게 새로운 의미부여나 변형을 통해서 적용시키는 것'을 뜻한다.

도시에서 공간과 시간을 되살리는 꿈

김성원 소장은 한 자리에만 머물지 않되 머무는 곳마다 깊은 자욱을 남긴다. 적정기술에서 수공예로 그리고 다시 도시의 공유지로 자리를 옮겨오는 사이 그가 곳곳에 남긴 발자취들이 이를 말해준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10여 년 만에 돌아온 이 갑갑한 도시를 바꾸는 일도 그 가운데 하나다. 요즘 그가 놀이터에 매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놀이터는 그에게 든든한 진지인 셈이다.

"도시로 오니까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땅이 있어야 작업장을 만드는데, 도시는 구조화된 시스템 속에서 공유지, 공간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시간도. 그러니까 공간과 시간, 이 두 가지를 회복하는 운동이 절실하다."

시간과 공간을 찾아 도시를 떠났던 그가 10여 년 만에 돌아와 이번엔 도시에서 그것들을 되살려 보겠다고 한다. 누구나 바라지만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 그러나 '김성원'이 나서면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기대가 스쳤다. 그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믿음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사색하며 몸소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사람, 작은 성취를 앞세워 제자리를 맴돌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 그러면서도 결코 조급해하지 않는 사람, 기술로 멋을 짓는 혁신가 김성원 소장이 바꿔 나갈 도시의 풍경이 무척 궁금하다.


태그:#김성원, #놀이터, #적정기술, #멋짓연구소, #사회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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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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