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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만인의총 사당
 남원 만인의총 사당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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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은 경상도를 거쳐 한강으로 북상했다. 1597년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남해안을 거쳐 전라도로 진격했다. 정유재란 때인 1597년 7월 16일 거제도 북서쪽 칠천량 바다에서 조선 수군을 대파한 일본군은 경남 하동, 전남 구례를 지나 남원을 공격했다. 남원은 경상도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전라도로 진입하는 관문이자, 장차 전주로 나가는 입구였기 때문이다.

정유재란이 벌어졌을 때 명나라 군대도 남원에부터 군대를 주둔시켰다. 3000여 군사를 거느리고 남원을 지키고 있던 명군 부총병 양원은 왜군이 북상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라 병사 이복남에게 조선군의 증원을 요청했다. 이복남은 관군 1000명을 이끌고 남원으로 갔다.

그에 비해 우희다수가(宇喜多秀家, 우키타 히데이에)를 주장으로 한 일본군은 무려 5만 6000여 대군이었다. 적은 8월 13일 남원성을 포위한 후 조총을 쏘며 공격해 왔다. 조 · 명 연합군은 승자총통과 비격진천뢰 등을 퍼부어 적을 격퇴했다.

아군은 4000명, 적군은 5만6000명

첫날 공격에 실패한 적은 다음 날부터 높은 누각을 세우고, 거대한 사다리를 새로 제작하고, 성 밖 참호를 메우는 등 본격적인 재공격 준비에 돌입했다. 군대의 규모가 워낙 차이가 났으므로 양원은 전주에 주둔 중인 유격장 진우충에게 두 차례에 걸쳐 지원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진우충은 전주성을 비워둘 수는 없다면서 군대를 보내주지 않았다. 양원과 이복남 군은 외부 지원 없이 홀로 혈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2차 진주성 싸움 때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16일 적은 총공격을 감행했다. 적은 높은 누각 위에서 성안을 내려다보며 조총을 쏘아대고, 아군이 몸을 움츠리는 사이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올랐다. 밤이 되자 왜군은 명군이 지키던 서문과 남문을 뚫고 성안까지 들어왔다.

패전 앞두고 스스로 불 질러 자결하는 아군들

북문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은 앞뒤로 적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결국, 이복남을 비롯한 조선군은 화약고에 불을 질러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양원은 50여 기를 이끌고 탈출했지만, 아군 군사와 백성 1만여 명은 장렬히 옥쇄했다. 뒷날 사람들은 이곳에 큰 묘소를 만들고 그 이름을 '만인 의총(萬人義塚)'이라 했다. 남원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전주성의 진우충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일본군은 싸움도 없이 전주를 무혈로 점령했다.

 남원 전투 순절 의사들을 기리는 '남원 순의탑'(남원 만인의총 경내)
 남원 전투 순절 의사들을 기리는 '남원 순의탑'(남원 만인의총 경내)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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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충렬사 뒤 만인 의총 앞에 가면 '만인 의총 비문'을 적어놓은 안내판을 보게 된다. 1964년 5월에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 지을 때 이만기가 짓고 쓴 글이 적혀 있다. 이 안내문을 읽음으로써 남원성 전투의 전말을 다시 한번 알아본다.  

'찬연히 빛나는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배달민족에도 허다한 시련이 있었으니 그 중에도 왜군의 침략은 잊을 수 없는 민족 수난이었다. 정유재란은 이 민족에 가장 큰 치욕이었으며 어느 곳보다도 모질고 쓰라린 참화를 입은 곳이 바로 이 고장 남원이었다.

잔인무도한 왜구들은 현해탄을 건너 파죽지세로 경상도를 불사르고 물밀 듯이 이곳 남원에 침공하였으니 때는 선조대왕 30년(1597) 정유년 8월 9일이었다.

여기에 호남의 요새지인 이 고장 남원을 수호하기 위하여 집결한 접반사 정기원, 전라 병마사 이복원, 방어사 오응정, 조방장 김경로, 교룡산성 별장 신호, 남원 부사 임현, 판관 이덕회, 구례 현감 이원춘 등 지휘 하에 관군 5,000 병마가 이리떼와 같은 왜적과 치열한 혈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족 세궁역진(勢窮力盡, 세력이 약해지고 힘이 다함)하여 동 8월 16일 성의 일각이 무너지자 이를 본 성 내외의 애국 시민들은 돌멩이, 죽창, 괭이 등을 무기로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다가 천추의 한을 품고 옥쇄하였으니 그 수는 만여 명을 헤아렸다.

이 장렬한 순국대의(殉國大義, 나라를 위해 의롭게 죽음)는 하해(바다)보다 넓고 일월보다 밝아 길이 만세에 빛나 후세 민족 수호의 귀감이 되다. 이에 후세 사람들이 그 유해를 거두어 한 무덤을 빗고 이를 <만인의총>이라 이름하다.'

 만인의총, 왼쪽에서 본 모습
 만인의총, 왼쪽에서 본 모습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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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 의총 기념관은 '임진왜란(1592) 때 호남을 정복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일본은 1597년 12만 대군을 동원하여 다시 침략, 적의 우군은 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000명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임진왜란을 처음 일으킨 1592년에 호남을 정복 못한 것이 큰 실책이었다고 판단한 일본이 1597년 남원을 집중 목표로 하여 쳐들어왔다는 뜻이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 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000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관 양원의 3,000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적은 8월 12일 남원에 당도하여 성을 겹겹이 포위하였으며, 13일부터 16일 밤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성민 6,000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혈전분투하다가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란에서 돌아온 성민들이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만인 의총이라 불렀다.'

 만인의총, 오른쪽에서 본 모습
 만인의총, 오른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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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후대인들은 남원성 1만 의사의 아름다운 이름을 한 분 한 분 불러보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분들의 성함이 모두 남아 있는 상황은 아니다. 만인의총관리소 누리집의 '주요 의사 소개'를 읽어본 다음 사당에 들러 참배를 한다.

'강덕복: 숙성령에서 왜적을 맞아 적 60여 급을 베고 분전하다가 순절
김경로: 전라 병사 이복남, 오응정과 합세하여 분전하다가 순절
김라복: 남원성 전투에 전라 병사 이복남 등과 분전하다가 순절
김   렴: 남원 전투에 참전하여 분전하다가 성 함락과 함께 순절
김   부: 금성 유진장으로 남원성 전투 때 분전하다가 순절
김수연: 세 아들과 함께 남원성 전투에 참가, 장열히 전사
김응배: 남원성이 포위되었을 대 부사 임현 등과 분전하였으나 순절

 농민들이 남원 전투 때 사용된 쇠스랑(전진한 기증, 만인 의총 기념관 소장)
 농민들이 남원 전투 때 사용된 쇠스랑(전진한 기증, 만인 의총 기념관 소장)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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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남원성이 포위되었을 때 입성하여 분전하다 순절
마응방: 74세의 고령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분전하다 장렬하게 순절
문기방: 동생 문명회와 함께 적에 맞서 분전하다 장렬하게 순절
문명회: 병사 이복남을 따라 참전하여 분전하다가 함께 순절
박계성: 둔산남의 인후 지역을 지키다가 적 50여 급을 참획하고 분전하다 순절
박기화: 무기고의 책임을 맡고 있던 중 병기를 화약고로 옮긴 후 불을 놓아 스스로 순절
박은종; 병사 이복남과 함께 분전하다가 순절
서진주: 병사 이복남을 따라 남원 전투에 참전, 순절
손공생: 이원춘 구례 현감의 따라 최후일각까지 분전하다가 순절
송국한: 병사 이복남을 따라 참전하여 분전 중 순절

 양상욱이 기증한 남원 전투 때의 북
 양상욱이 기증한 남원 전투 때의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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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장: 아들 진부, 진해와 함께 순절
송약선: 화살이 떨어지자 활시위로 목을 메어 전사
송진부: 부친 송상장, 아우 진해와 함께 순절
신   호: 교룡산성 별장으로 남원성에서 분전 중 순절
양대박: 고경명과 함께 창의, 많은 공을 세우고 순절
오동량: 남원성에서 부 응정, 형 욱과 함께 모두 순절
오   욱: 부 순천 부사 오응정, 아우 동량과 함께 순절
오윤업: 수십 명 가동을 데리고 분전하다 순절         
오응정: 순천 부사로 두 아들 욱, 동량과 함께 순절   
오흥업: 최후까지 분전 중 화약고를 터뜨려 순절
윤   의: 전라 병사 이복남을 따라 남원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순절
이덕회: 남원성 사수 계책을 세우고 입성하여 분전하다 순절

 만인의총에서 본 사당
 만인의총에서 본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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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전라 병사로서 남원성 전투에서 분전하다 순절
이용제: 분전하다가 남원성 함락과 함께 장렬하게 순절
이원춘: 구례현감으로 석주관을 지키다가 남원성에 입성하여 순절
이춘풍: 가동 수십 명을 이끌고 남원 전투에 참전하여 장렬히 순절
이평형: 남원성 전투에 병사 이복남을 따라 분전하다가 순절
이   해: 남원성 전투에 병사 이복남과 함께 용전하다가 장렬히 전사
임   박:  병사 이복남을 따라 참전하여 분전하다가 순절
임   현: 양원의 도망을 극구 만류하고 왜적에 항전하다가 순절
임   혼: 병사 이복남을 따라 참전하여 분전하다가 순절
조언호: 병사 이복남의 중군으로 분전하다가 아우 천생과 함께 순절
조익겸: 육순의 나이에 이복남 막하에서 시종 분전하다 순절

 남원 전투 때 순절한 조익겸이 당시에 사용했던 주전자(조승규 기증)
 남원 전투 때 순절한 조익겸이 당시에 사용했던 주전자(조승규 기증)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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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응협: 오응정을 따라 남원성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장렬하게 순절
정기원: 대장 마귀와 총병 양원의 지원을 받는데 성공했고,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
정민득: 지 수십 명을 모아 성에 들어와 왜적과 싸우다 순절
태귀생: 남원성 전투에 참가, 분전했으나 아우 천생과 함께 순절
태   색: 이 함락된 날 다섯 명의 숙질이 함께 순절
태시경: 전라 병사 이복남 막하에서 분전하다가 장렬하게 순절
태   우: 전라 병사 이복남의 종사로 참전하여 분전하다가 순절
태천생: 형 귀생과 함께 남원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모두 순절
형   련: 남원성에 입성하여 분전하다 순절
황대중: 흩어져 있던 군졸 200명을 이끌고 남원성에 입성하여 분전하다 장렬하게 순절
최   준: 전라 병사 이복남 등과 분전하다가 장렬하게 순절
최보의: 아버지 최준과 함께 참전하여 분전하다가 순절'

만인의총 기념관을 꼼꼼하게 둘러본다. 선열들을 기리는 현창 시설에 왔으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기록화들이 눈에 띈다. 1597년 8월 14일 상황을 묘사한 「적의 공격과 아군의 반격」, 8월 15일을 그린 「적의 협상 요구를 거절하는 아군」, 8월 16일 전투 장면을 보여주는 「아군의 최후 전투 상황」 등이 있다.

 남원 전투 때 순절한 박계성의 붓(박윤식 기증)
 남원 전투 때 순절한 박계성의 붓(박윤식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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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 병사(전라도 병마절도사) 행차 위용」도 있다. 남원 전투 때 사용된 전고(전투 신호용 북)도 있다. 양상욱이 기증한 전고를 보노라면 전라 병사 이복남이 김경노 · 신호 등의 장수들, 임사미 등 50여 기병, 수백 보병들과 함께 행진을 벌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복남은 당시 선두에 서서 직접 북을 치며 적을 향해  '물러가라!' 하고 크게 호령했다고 전한다. 기록화 「아군 병사 행차 위용」는  바로 그 광경을 보여주는 기록화이다.

오정태와 노상준이 기증한 당시 화살촉, 전진한이 기증한 쇠스랑도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최후의 순간까지 왜적과 싸운 남원성 백성들은 쇠스랑 등 농기구를 들고 맞섰다고 한다. 전투에서 순절한 조익겸이 귀한 손님이 집을 방문했을 때 썼던 당대의 주전자도 있다. 이 주전자는 조승규가 기증했다.

당시에 썼던 붓, 주전자 등 눈물겨운 유품들

양대박의 격문인 「창의문 첩서」(양상욱 기증), 이복남의 11대손 이정문과 한국명예총영사 심의관이 기증한 「왜군 남원성 침공 작전도」, 정기원을 의정부 좌찬성(종1품)에 추증하는 교지(정하채 기증), 마응방을 승정원 좌승지(정3품)에 추증하는 교지(마성수 기증), 박계성을 이조참의(정3품)에 추증하는 교지(박윤식 기증) 등도 있다. 박계성 유품으로는 그가 사용했던 붓도 있다.

조선 시대에는 문집이 없으면 선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당연히 문집 전시가 없을 리 없다. 마응방의 《용암집》,형련의 《제안제행록》(형성욱 기증), 박계성의 《죽산박씨세고》, 충렬사의 사적을 기록한 뒤 1804년에 김규하가 발문을 붙인 《충렬록》(황의석 기증), 황대중 문집 《양건당집》 등이 있다.

'아, 모두가 남원 전투의 피 묻은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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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소설 의열단><소설 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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