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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정치는 결코 무관할 수 없다. 북한을 둘러싼 일촉즉발의 국제정세, 극심한 청년실업과 빈부격차, 무너지는 소상공인과 위축되는 중소기업, 눈을 씻고 찾아봐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성장동력 등 한국사회에 당면한 문제 모두가 정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치가 사회의 어떤 가치를 우선해 보호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경제문제들이 말끔하게 해결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제껏 많은 경제전문가가 정치에 몸을 담갔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과 직면했으나 일부는 정치를 수단 삼아 나라와 국민의 삶을 더 낫게 하고자 오늘도 분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작동이다.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당 경제재도약 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촉된 최용식씨가 정치에 발을 담근 것도 그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는 여기 소개할 책 <경제전쟁>을 비롯해 발표한 저서 여러 권을 경제재도약추진모임이란 단체와의 공저로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임은 이후 창당된 국민의당 산하 경제재도약추진위원회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사실상 국민의당이 최용식이 제시한 경제정책을 받아들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정권 창출에 실패하며 도전은 무위로 끝난 듯하다.

최용식은 외환위기 사태를 경고하며 명성을 얻은 후 20여 년 동안 경제지식을 전파하고 있는 재야 경제전문가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수차례 경제강의를 한 일화가 유명하고 제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행정관을 역임하는 등 참여정부와 인연을 쌓았다.

자유경쟁과 성장주도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해 온 그의 경제관과 참여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맞아떨어져 한때나마 적극적인 친노로 활약했으나 참여정부의 가계부채 억제책 등을 비판하며 반대파로 돌아선 전력도 갖고 있다.

책 표지
▲ 경제전쟁 책 표지
ⓒ 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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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쟁>은 국민의당 창당 2개월여 전인 2015년 12월 발표된 최용식의 저술이다. 극심한 경제난에 빠진 한국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국경제가 처한 문제와 원인, 타개책과 가능성 등을 돌아봤다.

분배에 앞서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관점이나 지난 정권이 일으킨 경제난의 근본 원인으로 고환율 정책을 지적한다는 점은 기존에 최용식이 펼쳐온 입장 그대로다.

저자는 한국 경제에 어려움을 불러온 근본 원인으로 정부의 정책실패를 든다. 단군 이래 최대 경제위기라 불린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 역시 1993년의 화폐발행 증가와 1995년 재정지출 팽창에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경기과열은 왜 일어났을까? 우선, 1993년 말에 화폐발행 증가율이 무려 42%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그 증가율이 10%대이거나 이보다 더 낮았다. 그랬으니 경기과열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이것 역시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화폐발행을 이렇게 많이 증가시키면 물가가 먼저 불안해지는 게 정상이지만, 세계화를 내세워 수입개방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침으로써 값싼 수입품이 물밀 듯이 국내에 들어와 물가를 안정시켰다. (...) 결정적인 정책실패는 재정팽창이었다. 화폐 증발로 잠시 상승했던 국내경기가 하강을 시작하자 정책당국은 재정지출을 1995년에 43%나 증가시켰다. 이것은 예년의 재정지출 증가율보다 서너 배나 더 큰 규모였다. (...) 파국적인 외환위기를 일으킨 범인은 1993년 말에 화폐를 증발시켰던 자이고, 1995년에 재정지출을 팽창시켰던 자이지만,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24, 25p

저자가 볼 때 정부의 정책실패는 외환위기 당시에만 있지 않았다. 최근 10여 년 간 지속해 온 정책당국의 적극적 환율개입 역시 커다란 국가적 손실을 불러왔다는 게 그의 일관된 입장이다.

정부가 수출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이려 했고 외환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국가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운용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경상수지 흑자가 낳는 경제적 문제를 돌아보며 독자로 하여금 국가 경제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는다.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면 통화 가치가 상승압력을 받게 되고, 실제로 통화 가치가 지나치게 상승하면 수출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결국에는 국제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며, 자칫 외환보유고가 고갈됨으로써 외환위기라는 파국을 맞기도 한다. 그래서 정책당국은 흔히 환율 방어에 나서며, 이를 위해서는 외환을 매입하여 외환보유고로 쌓거나 해외투자를 적극 유도한다. 우선, 외환의 매입은 소중한 자원의 퇴장을 의미한다. 성장잠재력과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사용해야 할 소중한 국가자원이 외환보유고로 퇴장되면, 국내경기는 장기적으로 하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해외투자의 유도는 수출로 애써 벌어들인 소득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소득이 해외로 이전되면 내수가 부진해져 국내경기는 당연히 하강한다. 일본경제나 독일경제가 초창기 경기 부진에 시달렸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100, 101p

그는 당국자들이 경제 흐름을 잘못 읽어 이 같은 정책실패가 반복됐다고 지적한다. 줄곧 정책당국이 시장의 경기 흐름과 반대되는 대책을 실행해 온 이유가 경기 호조와 부진, 경기 상승과 하강의 차이를 정확히 읽어내는 데 실패한 데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가 책 후반부에 수록한 각종 통계자료는 이 같은 그의 해석에 힘을 싣는다.

'정책당국은 대부분의 경우 경기 흐름과는 반대로 경기대책을 시행해왔다. 경기가 상승세일 때는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상승속도를 더 빠르게 하거나 경기과열을 부름으로써 경기상승 기간을 짧게 하거나 경기조정을 초래하곤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경기 흐름을 매번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 답은 간단하다. '경기가 호조냐 부진이냐'와 '경기가 상승하느냐 하강하느냐'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지하 6층에서 지하 1층으로 옮겨간 것은 여전히 낮은 곳에 있지만 올라간 것이며, 지상 10층에서 8층으로 옮겨간 것은 여전히 높은 곳에 있지만 내려간 것이 틀림없다.' -137, 138p

책에선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도 찾아볼 수 있다. 공공부문 확대·정책적인 일자리 창출·노동시간 단축·최저임금 인상 등 현 정부가 추진해온 각종 사안에 적극적으로 반대 견해를 표명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도 같은 논지를 펼쳐 비판의 날을 세운다.

공공부문이란 생산성이 떨어져 시장에서 해결되지 않기에 정부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인데 공공부문에 사회의 전력이 양과 질 모두에서 과다하게 투여될 경우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중심된 생각이라 하겠다.

특히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나 위임을 받는 공공부문을 공직에 더할 경우 한국의 공공부문 고용률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통계를 들어 한국 경제구조의 비효율을 지적하는 부분은 꽤 아프고 날카로운 지적이다.

'공공부문을 축소시키면 공공부문에서 절약된 자원은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찾아가기 마련이다.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찾아가면 더 높은 이익과 소득을 얻을 수 있는데, 자원이 어찌 유휴화하거나 사장되겠는가? 돈을 비롯한 각종 자원은 이익이 많은 곳을 스스로 찾아가는 속성을 지녔지 않은가. 한정된 자원이 생산성 높은 분야로 이동하면 당연히 국가 경제의 생산성은 높아지며 성장률이 높아지고 경쟁력도 높아진다.' -151p

오랫동안 경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해온 전문가의 지적답게 책은 따로 떼어두고 깊이 생각해볼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일부에선 사실을 넘어 저자의 가치관이 강하게 반영된 부분도 있어 읽는 이에 따라 논란으로 삼을 수 있는 부분도 많아 보인다.

시장의 현실을 반영해 경쟁 중심의 교육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정책당국의 허가 없이 금융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 외환위기 전후에 불법이 인정된 기업인들을 옹호하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외환위기에 앞서 부실한 내실을 감추고 몸집 키우기에 전념한 기업, 회계사기를 저지르면서까지 이 같은 상황을 불러온 재벌의 잘못에는 사실상 면죄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법치주의를 따르는 일반 독자의 시선에선 좀처럼 공감하기가 어렵다.

'한보 사태로 감옥살이한 정태수 회장, 한보철강이 무너진 것은 당신 탓이 아니다. 한보 그룹 전체를 몰락으로 내몰았다던 한보철강은 지금 현대제철로 이름을 바꿔 호조를 지속하고 있다. 한보그룹이 도산한 것은 외환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고, 외환위기를 발생시킨 책임은 정책당국이 져야 한다. (...)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삼미, 대농, 진로, 해태, 나산, 한신, 기아 등의 재벌이 줄줄이 무너졌는데, 이 재벌 회장들 역시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평생을 바쳐 일궜던 사업이 몽땅 무너져 내린 것도 억울한 일인데 대부분 감옥까지 다녀왔지 않은가 말이다. (...) 대우그룹을 무너뜨렸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국내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김우중 회장, 당신이 책임질 일도 거의 없다. 경제정책이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대우그룹은 여전히 거대 재벌로 살아남아 번창했을 것이다. 정책당국이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대우그룹이 무너졌을 따름이다.' -23, 25p

이 같은 측면을 돌아볼 때 시장을 옹호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그의 시각엔 과도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한국 경제가 처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한다는 시장 지상주의자의 입장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그에 따르면 복지란 영원히 성장에 앞설 수 없고, 많은 경우 정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기에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받아들일 바람직한 경제론인지 의문이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시장을 우선하는 경제전문가가 한국이 처한 경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개략적으로 풀어낸 저술로 가치가 있다. 시장실패를 중점적으로 다룬 경제서적과 비교해가며 읽는다면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경제전쟁 / 강단 / 최용식 지음 / 2015. 12. / 13,800원>



경제 전쟁 - 대한민국 경제, 어디로 갈 것인가?

최용식 지음, 강단(2015)


태그:#경제전쟁, #최용식, #강단, #김성호의 독서만세, #경제재도약추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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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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