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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과 <길은 멀다 친구여> 등의 시집으로 잘 알려진 이시영(68)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새로운 노래로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하동>(창비)으로 명명된 이 시인의 최근 시집은 '짧아지고 짧아져서 더 이상 응축할 수 없는 절창' 몇몇으로 빛난다.

이시영 신작 시집 <하동>.
 이시영 신작 시집 <하동>.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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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로부터 시를 평해온 학자들은 말했다. "좋은 시는 길지 않다." 아래와 같은 작품은 이시영이 견뎌온 70년 가까운 인생이 가까스로 얻어낸 보석 같은 답변으로 읽힌다.

보도블록과 보도블록 사이에서
민들레 한 송이가 고개를 쏘옥 내밀었다
너 잘못 나왔구나
여기는 아직 봄이 아니란다.
- 위의 책 중 '봄' 전문.

젊은 날의 열정과 치기에 머물지 않고 문학적 갱신을 지속해온 이시영은 문단에서 "간명한 언어와 따뜻한 서정으로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탐구해온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하동>은 그의 14번째 시집이다.
 
아직 성급해 보이는 이시영의 '포기 선언'

그는 책의 마지막 '시인의 말'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창조성이 쇠진되었다고 느끼면 깨끗이 시 쓰기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한다. 노장의 결기가 묻어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다음에 인용하는 '무제'와 같은 시를 앞으로도 쓸 수 있다면 성급한 '포기 선언'은 조금 뒤로 미루어도 좋을 듯하다.

겨울 속의 목련나무에 꽃망울이 맺혔다
세상엔 이런 작은 기쁨도 있는가.

작은 나무 한 그루에서 세상사 진실을 발견해내는 능력. 이를 '시인의 힘' 외에 어떤 단어로 말할 수 있을까?

고희(古稀)를 눈앞에 두고도 문학적 실험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 이시영의 근작(近作)을 접한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그의 시가 더 깊은 침묵을 향할지, 아니면 세상과의 전면전으로 나갈지 긴장하게 된다"는 말로 이시영의 시적 미래를 궁금해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문장을 만나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작품이 실린 <시가 흐르는 골목길>.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작품이 실린 <시가 흐르는 골목길>.
ⓒ 출판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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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에 수록된 시가 중진의 묵직함을 전해준다면, <시가 흐르는 골목길>(출판이안)에 실린 작품들은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투박하지만 진솔함이 담긴 문장.

할머니 나는 할머니 껌딱지 사랑딱지
이 말을 들을 때 행복하네 그래 나두나두
언제까지 할머니 사랑할까
100년 영혼까지
할머니가 되어도 껌딱지 사랑딱지
듣고 또 들어도 웃음꽃 피네
- 위의 책 중 '할머니와 손녀' 전문.

권경자 외 12명의 사람들이 묶어낸 <시가 흐르는 골목길>은 문학이란 사람들 사이에서 늘 존재해온 것이란 새삼스런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단순해 보이지만 따뜻하고,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시편들이 세상사 먼지에 찌든 독자들을 위로한다.

이 시집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문학과는 동떨어진 생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 하지만, <시가 흐르는 골목길>에서 만난 89편의 작품들까지 문학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알고 있다. 시를 쓰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시가 흐르는 골목길>은 삶이 주는 고통과 상처를 끌어안고 눈물과 한숨 속에서 나이 먹어온 독자들의 어깨를 다독여준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은 책이다.


하동

이시영 지음, 창비(2017)


시가 흐르는 골목길

권경자 외 지음, 출판이안(2017)


태그:#이시영, #하동, #시가 흐르는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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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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