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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도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잊지 않고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2006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들어왔던 바로 그 말이었다.

"아직도 <오마이뉴스> 기사 열심히 쓰지?"
"네. 그렇죠 뭐."
"제발 살살 좀 써라. 너무 치우친 주장은 위험해."
"아직도 주위 분들이 제 기사 찾아 본 다음에 뭐라고 해요? 치우친 주장이 아니라니까. 이젠 제 의견과 같은 사람이 어머니 지인들보다 훨씬 더 많아요. 태극기는 이제 15% 안팎이에요."

어머니의 걱정

이제는 고작 15% 안팎이다
▲ 어머니 주변의 의견 이제는 고작 15% 안팎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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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늘 불편하다. 아들의 말이 옳다고는 생각하지만, 어머니의 주위 분들이 전혀 다른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지인 분들이 내 기사를 보고 내에 대해 편견을 갖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신다. 같은 맥락으로 내가 기사를 쓴답시고 손주들을 비롯해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 역시도 못마땅해 하신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의 글에 대해서 정작 더 걱정하시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들'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너무 세게 쓰면 잡혀 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에이, 어머니도.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글 쓴다고 잡혀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그런 세상은 오지 않으니까."
"그래도 혹시 몰라. 그러니까 조심해."
"예. 그래도 저는 살살 쓰는 편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매번 반복되는 패턴의 대화. 결국 어머니가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내 기사가 당신 세대들의 기준에서는 소위 '좌빨'이기 때문이다. 글 한 번 잘못 써서 회사를 잘리고 삼청교육대 등을 다녀온 사람들을 봤던 어머니로서는 당연한 걱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내가 항상 들이밀었던 논거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글을 쓰고 유통시킬 수 있는 요즘, 이제 언론사의 직업 기자만이 기사를 쓰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시민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열심히 표현하고, 그것이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며, 이런 시대적인 흐름은 거스르기 힘들다.

이렇게 어머니께 말씀드렸건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지난 13일 <경향신문>의 단독보도는 나의 이런 생각이 너무 순진하고 낙관적이었음을 보여줬다. MB는 내가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시대적 흐름을 아주 꼼꼼하게 되돌리고 있었다.

시민기자는 '사이비'

육아일기도 정치다
▲ 일상이 곧 정치다 육아일기도 정치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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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MB정부의 '좌파 인터넷 매체 시민기자 확충으로 세 확산'(2011년) 문건에서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시민참여 저널리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민참여 저널리즘이란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일상에서부터 정치 영역까지 시민들이 주체가 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저널리즘을 뜻하는데 MB정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글을 쓰는 시민 주체를 '사이비'라고 폄훼하며 그런 시민기자를 양성하는 <오마이뉴스>를 불온하게 바라봤다.

"시민기자에게 '기자증·명함'을 배부하고 있어 정식 기자를 사칭한 악의적 취재활동으로 논란 야기 가능성. … (<오마이뉴스>는) 일반인들을 시민기자로 선정해 기사나 칼럼을 지면에 게재하는 등 사회 이슈에 대한 적극적 참여·공감 유도."

그들에게 시민기자란 기자를 사칭해 정부에 불리한 기사를 싣는 사이비 기자일 뿐이다. 기자라면 반드시 소위 언론고시(언론사 입사 시험)를 통과해 어쨌든 데스크의 통제를 받으며 기사를 써야하는 존재인데, 시민기자는 그와 같은 관계망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시민기자의 영향력이 생각 외로 크기 때문이다.

"시민기자의 기사는 독자에게 일반인의 여론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데다 언론사 이미지가 더해져 신뢰도(를) 제고. 개인적인 의견을 과장해서 쓸 수 있으나 정식 기사와 다름없이 게재. … 이들의 활동량에 따라 온·오프라인 상 반정부 여론이 쉽게 전파 가능."

사실 <오마이뉴스>의 가장 큰 장점은 '사는 이야기'다. 악플러들은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보며 '일기장은 일기장에 써라'라고 비난하지만, 사람들은 시민기자들이 쓴 나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보며 공감하고 분노하며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육하원칙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보고서는 일어나지 않는 공명이 시민기자의 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예컨대 '금강요정' 김종술 기자의 기사를 보자. 그 어떤 전문가가 와서 백 번을 떠들어도 그가 그동안 금강을 지키기 위해서 썼던 글과 사진을 이길 수는 없다. 4대강의 폐해를 절절히 깨닫는 데 있어서 이만큼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이는 결국 이 시대에 시민참여 저널리즘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준다.

충남 논산시 황산대교 인근 강물에 들어가 버려진 바가지로 강물을 퍼담아 뿌렸다
 충남 논산시 황산대교 인근 강물에 들어가 버려진 바가지로 강물을 퍼담아 뿌렸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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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민참여 저널리즘'이다

"중앙 부처와 자치단체가 사이비 기자에 신중 대처하고, 반정부·왜곡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 제소 등 적극 대응하도록 주문."

지난 9년 그들의 압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당연한 생각에 대해 자아검열을 하였으며,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악플에 지쳐 펜을 꺾었다. 정부의 말도 안 되는 고소·고발에 더럽다며 눈을 돌리기도 했었다. 사회는 우리 어머니가 염려하던 그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MB 정권이 가고 박근혜 정권은 무너졌다. 그리고 현재 9년의 적폐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들이 정권연장을 위해 어떻게 저널리즘을 망쳐왔고, 언론을 악용해왔는지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시민기자를 사이비라 칭했던 그들에 맞서 많은 시민기자들이 다시 펜을 들어야 한다. 자신의 일상에서부터 정치 영역까지 좀 더 치열하고 뜨겁게 기록하고 주장함으로써 그들이 앗아가려 했던 우리의 시민참여 저널리즘을, 참여 민주주의를 되찾아 와야 한다.

시민기자 화이팅
▲ 부끄럽지 않은 아빠 시민기자 화이팅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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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까이 시민기자로 글을 써온 내게 이번 MB정권의 문건은 하나의 훈장이다. 나의 글이 MB를 불편하게 했다면 그것은 내가 그만큼 제대로 살았다는 증거이며, 나의 존재가 MB에게 '사이비'였다면 그것은 내가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시민기자 화이팅!


태그:#오마이뉴스, #시민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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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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