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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민들의 쉼터이자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인 충남 공주시 공산성 앞 모래강변입니다. 4대강 불도저가 밀려오던 날에도 아이들은 그곳을 지켰습니다.
 공주시민들의 쉼터이자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인 충남 공주시 공산성 앞 모래강변입니다. 4대강 불도저가 밀려오던 날에도 아이들은 그곳을 지켰습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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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김종술입니다. 이름보다 '금강요정'이란 애칭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커먼 얼굴에 '요정'이란 낯부끄러운 별명이 붙은 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맞서 싸운 덕분(?)입니다. 저를 한 줄로 설명하라면 이렇습니다.

'지난 9년간 4대강 사업으로 망가진 금강을 기록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저는 인생의 황금기를 금강에서 보냈습니다. 불혹의 나이엔 '4대강 사업'이란 대국민 사기극에 미혹되지 않고 죽어가는 금강을 기록했습니다. 지천명의 나이가 된 지금은 하늘의 명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4대강 사업의 참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저는 3285일 눈뜨면 금강에 나가고 하루가 멀다 하고 강변 풀밭에 텐트를 치고 한뎃잠을 잡니다. 풍찬노숙한 날도 900일이 넘었습니다. 죽어가는 금강의 곁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다."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금강의 뼈와 살을 발라내던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금강의 뼈와 살을 발라내던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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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날, 금강에서 "야~호"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생중계를 보면서 금강을 걸었습니다. 아마 죽는 날까지 그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고요? 금강에 희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기극의 종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겨서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1호는 '이명박 4대강'이여야 합니다. '이명박 4대강' 탄핵 없이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인 적폐청산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4대강 사업은 단순한 환경파괴가 아닙니다. 강과 더불어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도 송두리째 파괴했습니다. 강과 얽힌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의 가슴에도 비수를 꽂았습니다. 평생을 바쳐 일군 농토를 잃은 시골 농부는 쫓기듯 도시로 가서 빈민이 됐습니다. 끝내, 지역공동체가 파괴되는 현상까지 이어졌습니다.

저는 금빛 모래강을 기억합니다. 해질녘 금강에 드리운 황금빛 노을을 기억합니다.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노닐던 고라니를 기억합니다. 반짝 빛나는 눈을 가진 녀석은 '나 잡아봐라'란 듯 우아하게 엉덩이를 흔들었습니다. 초롱초롱한 눈을 기억합니다.

저는 함박웃음을 기억합니다. 모래사장에서 소꿉장난을 하며, 까르르 웃던 아이를 기억합니다.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걸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던 커플을 기억합니다. 나물을 캐며 해맑게 웃던 아낙네의 미소를 기억합니다. 찰랑이는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아이 웃음 소리를 내던 배불뚝이 아저씨를 기억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4대강 적폐청산'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금강엔 아직도 웃음소리가 아닌 고통의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일 수문 개방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5개월, 금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알립니다. 

지난 6월 1일 문재인 대통령님의 지시로 4대강 수문개방이 있었습니다. 공주보의 수문이 18도로 기울여 20cm 낮아졌습니다.
 지난 6월 1일 문재인 대통령님의 지시로 4대강 수문개방이 있었습니다. 공주보의 수문이 18도로 기울여 20cm 낮아졌습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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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 4대강 수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금강의 수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공주보 의 경우, 수문 각도를 18도로 기울여 수위가 고작 20cm 낮아졌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수문 개방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변화도 없었습니다. 금강의 수문이 낮아진 10일 후, 물고기 집단 폐사가 발생했습니다. 이틀 뒤엔 녹조가 금강을 뒤덮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 부화뇌동했던 관피아들은 '찔끔' 방류로 녹조를 제거한다고 했습니다. 허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론 4대강 적폐세력들이 문재인 대통령님 얼굴에 먹칠을 한 것입니다.

적폐세력들은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양수제약수위'(농업용수 이용을 위한 양수장 취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위)
'지하수제약수위'(지하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위)

지난 6월 13일 금강을 찾았던 성가소비녀회 최다니엘 수녀가 금강에 들어간 모습입니다.
 지난 6월 13일 금강을 찾았던 성가소비녀회 최다니엘 수녀가 금강에 들어간 모습입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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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 구더기입니다. 지난해 한국수자원공사가 백제보 상류에 수거해놓은 녹조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녹조 구더기입니다. 지난해 한국수자원공사가 백제보 상류에 수거해놓은 녹조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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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용어를 동원해 국민의 귀를 막았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국민의 눈을 속였습니다. 이런 적폐세력들의 행태를 현장용어로 말하면, 수문 개방은 '방류쇼'였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계산기를 두드릴 게 아니라 현장에서 몸으로 겪으며 직접 수문 개방 효과를 살펴봐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또 다시 말장난으로 허물을 뒤덮으려 하고 있습니다.

강은 흘러야 합니다. 이게 상식이고 진리입니다. 금강이 흐르고 하굿둑까지 연다면 금강은 다시 금빛 모래강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게 최선의 방법이고 최고의 묘책입니다.

지난 6월 1일 금강의 수문이 낮아진 10일 후, 죽어간 물고기입니다.
 지난 6월 1일 금강의 수문이 낮아진 10일 후, 죽어간 물고기입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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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4대강 사업이 준공되면서 금강에선 단군 이래 최악의, 환경사고가 터졌습니다. 수십 만 마리의 물고기 떼죽음이 일어났습니다. 현장에서 10일간 제가 확인한 숫자만 60만 마리가 넘습니다. 눈앞에서 여기저기 찢기고 썩어가는 물고기 사체와 젓갈 국물로 변해가는 강물을 지켜봤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녹조강으로 변한 금강도 끔찍했습니다. '녹조라떼', '녹조잔디구장', '녹조카펫' 등으론 설명하기 힘든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이 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자식들에게 농산물을 줘도 되는지 물으며 걱정과 한숨을 끊임없이 토했습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금강에 괴생명체가 나타났습니다. 큰빗이끼벌레입니다. 처음엔 작은 축구공 크기였으나 시간이 흘러 몸집이 최대 3m 50cm까지 자란 초대형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환경부가 수 생태 4급수 오염지표종으로 지정한 붉은깔따구입니다. 금강을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뒤덮고 있습니다.
 환경부가 수 생태 4급수 오염지표종으로 지정한 붉은깔따구입니다. 금강을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뒤덮고 있습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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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은 오늘도 썩고 있습니다. 강바닥에 쌓인 펄들이 썩으며 물속 용존산소가 고갈되고 있습니다. 켜켜이 쌓인 썩은 펄들은 기온이 상승하면 메탄가스를 내뿜어 내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꼭 화산 분화구에서 용암이 보글보글 끊는 거 같습니다.  

강바닥에는 실지렁와 붉은깔따구가 삽니다. 시궁창이나 하수구에 사는 생명체입니다. 어두컴컴한 강바닥에 플래시를 비춰보면 실타래처럼 얼기설기 뒤엉켜 있는 이 녀석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환경부가 수 생태 최악의 오염 지표종으로 지정한 생명체입니다.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이명박근혜 정부는 물고기 떼죽음이 4대강 사업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언론은 침묵했고, 학자들은 입을 닫았습니다. 4대강 사업에 동조한 자들은 물고기 몇 마리 죽는 게 무슨 대수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국민을 대상으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은폐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했습니다. 적폐를 청산해야 합니다. 아직도 4대강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관피아를 찾아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명박 4대강'으로 누가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아왔는지 낱낱이 밝혀내 처벌해야 합니다.

썩은 물이 살아나려면 흘러야 하듯 이명박 4대강의 해법은 적폐청산입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님이 후보시절 "4대강 보를 상시 개방해 강이 다시 흐르게 하겠다"고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을 검증하고 수문개방과 함께 적폐세력을 청산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울긋불긋 물든 낙엽이 휘날리는 가을입니다. 금강에도 단풍이 찾아왔습니다. 강물 위에 흩어진 형형색색의 나뭇잎이 오색찬란합니다. 멀리서 보면, 여전히 아름다운 금강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릅니다. 그 속에 차가운 죽음이 있습니다.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다."

수문개방은 이런 것입니다.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천은 농번기가 끝나면 수문을 열어 놓습니다.
 수문개방은 이런 것입니다.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천은 농번기가 끝나면 수문을 열어 놓습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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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을 걷다 들었던 그날처럼 '4대강 수문을 전면 개방하라'는 대통령님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올 가을 시간이 되신다면, 금강을 한 번 찾아주십시오. 함께 강변을 걸으며, 지난 9년간 금강을 기록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금강요정과 함께 금강 나들이 하시겠습니까.


태그:#4대강 사업, #문재인 대통령, #수문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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