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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욱 소믈리에, 임광수 대표, 이병금씨
 최정욱 소믈리에, 임광수 대표, 이병금씨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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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와인기행] 홍천 샤또 나드리 ①에서 이어집니다.

샤또 나드리는 2010년에 너브내라는 이름으로 레드와인을 첫 출시했고, 2012년에 화이트와인을 선보였다. 와인판매는 샤또 나드리가 운영하는 펜션 손님이나 지인을 통해서 이뤄졌다. 생산량이 1000병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판매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외부 홍보는 일체 하지 않았다. 왜?

"와인 품질을 확신할 수 없었어요. 섣불리 세상에 내놔서 첫 인상을 구기느니 내놓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또 다른 이유는 아주 재미있다. 와인제조장이 집 지하실이라서 와인을 밖으로 갖고 나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단다.

"누가 100병을 주문하면 그것도 일이야. 저걸 어떻게 들고 나오지? 한 번에 10병씩 들고 나와야했거든요. 와인을 옮길 생각을 하면 주문이 오는 것도 무서울 정도였죠."

물론 지금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시음장을 갖춘 60평 규모의 와인제조장을 집 앞에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와이너리 운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계기가 있었다. 다른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와인이 어떤지 궁금해진 것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농한기에 전국 와이너리 투어에 나섰다. 그의 말을 빌자면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 구경'을 나선 것이다.

"2015년 1월이었을 겁니다. 영주부터 시작해 봉화, 영동, 영천, 무주 등의 와이너리에 갔어요. 가서 보니 거기는 사람이 사는 데고, 여기(홍천)는 사람이 사는 데가 아닌 거야. 너무 놀랐어요. 우리가 너무 안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거죠."

샤또 나드리 와인제조장
 샤또 나드리 와인제조장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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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대표는 전국 와이너리 투어를 다녀온 뒤 자신이 만든 와인을 갖고 바깥세상 문을 두드렸다. 2015년 4월에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서울국제와인&주류박람회'에 처음 참가한 것이다. 자신이 만든 와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받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 때 행사장에서 최정욱 소믈리에를 처음 만나게 된다. 최 소믈리에는 너브내 화이트와인을 시음한 뒤 그 맛에 반해 곧바로 임 대표에게 광명동굴 납품을 제안했다.

광명동굴 와인납품은 절차가 간단하지 않다. 광명시와 와이너리가 소재한 자치단체가 업무협약(MOU)을 체결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어찌 보면 번거로운 절차지만 그 배경을 알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광명동굴에서 판매하는 한국와인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한국와인산업 육성과 밀접한 관련이 때문에 와이너리가 있는 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양기대 광명시장은 이를 위해 MOU 체결이 꼭 해야 한다고 주장, 이를 실행하고 있었다.

광명시와 홍천군의 MOU 체결은 노승락 홍천군수에게 홍천 너브내 와인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홍천에 단 하나밖에 없는 와이너리의 존재가 광명동굴을 통해 홍천군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노승락 군수는 MOU를 체결하는 자리에 직접 참석했고, 이후 너브내 와인을 널리 홍보해주었다. 노승락 군수는 너브내 와인을 꾸준히 구입, 홍천 홍보용 선물로 사용한다고.

"군수님도 많이 도와주었지만, 홍천농업기술센터에서도 와인 제조와 생산에 많은 도움을 줬어요. 저도 와인제조경험이 없어서 기술센터에서 지도를 해주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임 대표는 책으로 공부를 하면서 실전에 적용시키는 스타일이란다. 학구파라고나 할까. 그는 포도주 제조 관련 책을 많이 읽었지만, 이론과 실전은 아무래도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문제를 홍천기술센터 직원들이 해결해주었다는 것이 임 대표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홍천기술센터에서 예산 지원이나 관련 정보도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좋은 와인 생산에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한다.

임광수 대표
 임광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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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2008년에 처음 와인을 만들었을 때를 비교하면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와인제조 설비를 갖추면서 보다 위생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와인 품질도 이전보다 정밀하게 접근하게 되었죠. 만드는데도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겼어요. 와인을 만들면서 이런 단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지, 하면서 데이터를 메모하거든요. 와인을 만들기 전에 이전 데이터들을 죽 다시 보면서 올해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 생각을 정리합니다. 이전의 레시피를 보고 와인제조 흐름을 다시 짚어보는 겁니다. 물론 생각한 대로 만족스럽게 적용하지 못하지만 다음에는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는 거죠."

와인양조에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가끔 마음이 아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몇 번의 실패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제조하는 와인 양조 실패는 엄청난 손실로 이어진다. 임 대표도 그런 과정을 겪었다. 와인 560리터를 과감하게(?) 버린 경험이 있다.

"화이트와인인데 뚜껑을 열었더니 이상한 냄새가 확 나는 거예요. 어, 왜 이러지? 망쳤구나, 싶었죠. 효모 지꺼기가 올라온 건데, 그걸 몰랐죠. 고민을 하다가 과감하게 버렸는데, 그 향기가 어찌나 좋던지. 버리고 나서 몇 번이나 후회를 했어요. 버릴 게 아닌데 괜히 버린 게 아닐까 하면서. 버릴 때만 해도 영웅적인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제품을 손님들에게 팔 수 없어, 이런 거죠. 근데 그게 여과를 하면 날아가는 냄새였어요."

나중에 와인 제조 경험이 쌓이면서 그 와인을 성급하게 버린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두고 상태 변화를 확인했어야 했다고. 와인 품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증류를 하는 방법도 있는데 말이다. 그 때문에 2016년에 화이트와인이 없어서 광명동굴에 납품하지 못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임 대표는 올해 새로 만들어 숙성을 시키는 와인을 시음용으로 꺼내왔다. 짙은 보랏빛 와인은 묵직해 보였다. 아직 탄산가스가 다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고추냉이 맛 같은 스파이시한 뒷맛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블랙선과 블랙아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었다. 토종머루와 다른 품종을 교배해서 나온 품종들로 우리나라에서만 나오는 머루품종이라고 한다. 임 대표는 다른 와인과 블렌딩을 한 뒤 제품으로 출시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 대표는 매년 강원도농업기술원에서 포도양조용으로 개발한 포도들을 가져다가 새로운 와인 만들기에 도전한다.

"명품와인을 만들겠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니까. 대신 나만의 와인을 만들고 싶어요. 샤또 나드리에서만 만들 수 있는 와인. 마시면 이건 샤또 나드리의 와인이야 하는 와인이죠."

이병금씨
 이병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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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을 개발할 때 와인 맛을 테스트 하는 것은 아내 이병금씨 몫이다. 임 대표는 병금씨가 맛을 구별하는데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자랑한다.

"아내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데 맛은 아주 잘 구별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요. 와인 맛은 전부 다 아내가 보고 어떤 와인으로 할지 결정하죠."

남편이 귀농을 결정하는 바람에 홍천까지 '끌려왔다'는 병금씨는 얼마 전에 주니어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 남편이 포도농사를 지을 때는 포도를 직접 팔았고, 지금은 남편이 만든 와인을 판다. 와인시음장을 보기 좋고 예쁘게 꾸민 것도 병금씨 생각이었다. 와인시음과 와인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와인기행] 홍천 샤또 나드리 ③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치분권뉴스>에 실렸습니다.



태그:#샤또 나드리, #너브내, #임광수, #한국와인,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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