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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확정판결로 직위를 잃은 권선택 전 대전시장이 지난 15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이임식을 한 뒤 승용차에 올라 공무원들에게 목례를 하고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직위를 잃은 권선택 전 대전시장이 지난 15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이임식을 한 뒤 승용차에 올라 공무원들에게 목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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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로 시장직을 상실한 권선택 대전시장의 이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권선택 전 시장은 임기 내내 지역 시민사회의 반발을 불러온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과 갑천 친수구역 개발 사업에 대해 "100점짜리 정책은 없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업이 있다"라면서 "대전의 미래를 보고 판단해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굳이 공무원과 정치권을 두루 경험한 권 전 시장의 전력을 고려하지 않아도 지역 내 다양한 시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시장의 위치에서 "100점짜리 정책은 없다"라는 말에는 일정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대전의 대표적인 녹색 공간이자 대전의 허파라 불리는 월평공원과 갑천지구에 수천 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사업에 대해 '대전의 미래를 보고 판단해달라'는 권 전 시장의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심의 울창한 숲과 맑은 하천을 없애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게 150만 시민이 사는 도시 대전의 미래란 말인가.

나무 한 그루에 담긴 '도시 인권'

대전시가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려고 계획중인 월평동 공원
 대전시가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려고 계획중인 월평동 공원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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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총인구 5170만여 명 중 4747만여 명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도시 거주 인구비율이 91.82%에 달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 대부분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인권침해는 자유권과 사회권을 아울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주목하는 도시 인권문제의 주요 이슈 중의 하나는 단연 환경권에 대한 것이다.

실제 이상기후에 따른 피해만 해도 지진, 폭염, 홍수 피해의 대부분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매년 여름 기록적인 폭염 피해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으며 봄마다 찾아왔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피해는 이제 계절을 가리지 않고 1년 내내 도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에 21세기에 들어와 도시 차원의 인권을 의제로 만들고 실천했던 캐나다 몬트리올 권리와 책임헌장(2005), 도시에서 인권 보호를 위한 유럽헌장(2000), 도시에 대한 권리 세계헌장(2005) 등에는 공통으로 도시에서 개인이 가지는 환경권의 보장을 주요 조항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환경권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 제정된 광역행정 단위 차원의 인권선언과 헌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대전의 이웃인 충남에서 2014년 제정한 충남인권선언은 9조에 환경에 대한 권리 조항을 뒀다. "충남도민은 오염되지 않고 건강한 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충청남도는 도민들이 쾌적하고 건강한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책무가 있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처럼 근래 들어 도시 차원에서 환경권이 집중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환경 문제가 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건강과 생존문제에 직결되는 기본적인 인권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국제기후변화협의체 IPCC가 2013년 발표한 5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대가 오면 한반도는 현재보다 폭염지속일수가 1.8~2.8배 늘어난다고 한다. 그 결과로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2040년대에 이르면 열사병 사망자 수가 지금보다 5~7.2배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을 발표했다.

환경부 대기질통합예보센터는 올해 1~3월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횟수는 86회로 작년 같은 기간 48회의 2배에 가깝게 늘었으며 미세먼지농도 '나쁨'(81∼150㎍/㎥) 발생 일수도 지난해보다 2배나 늘어난 8일이라고 밝혔다.

나무 베고 아파트 짓기, 이게 대전의 미래인가

월평공원아파트건설반대 천막 농성장을 찾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제작한 현수막
 월평공원아파트건설반대 천막 농성장을 찾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제작한 현수막
ⓒ 월평공원아파트건설반대주민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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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보자. 도시 안의 환경권 보장까지는 아니어도 날로 심해지는 폭염과 미세먼지와 같이 현재도 겪고 있고, 미래에는 날로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문제에 대해 대전시는 어떠한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전 지구적인 차원의 난개발과 환경파괴로 인한 폭염과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와 국내 서해안에 집중된 화력발전소의 영향으로 생기는 미세먼지의 증가를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을 사실 대전이라는 도시 안에서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글로벌하거나 거대한 구조 때문에 생기는 기후 인권침해를 도시 안에서 해결하거나 막아내는 간단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나무 심기와 숲 조성이라고 주장한다. 나무와 도시 숲이 온도를 내리거나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는 기능이 있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된 사실이며 많은 선진국은 물론이거니와 국내의 지자체들도 도시의 환경권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이고도 확실한 대책으로 나무심기와 도심 숲 조성을 서두르고 있는 형편이다.

이른바 도안지구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개발이 확장돼 가는 대전지역에서, 그 중심에 우뚝 선 월평공원의 울창한 숲은 대전시민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존재다. 나아가 도시 안의 반인권적인 환경피해를 막아줄 대전의 가장 든든한 '미래'로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권선택 전 대전시장은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보다는 '대전의 미래'를 위한다며 월평공원과 갑천의 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는 정책을 시장직을 그만두는 날까지 밀어붙였다.

주거권도 중요하다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국내셔털트러스트 지정 '이 곳만은 지키자'에 월평공원 선정되어 아파트 건설을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대책위 관계자들
 한국내셔털트러스트 지정 '이 곳만은 지키자'에 월평공원 선정되어 아파트 건설을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대책위 관계자들
ⓒ 월평공원 대규모아파트 건설저지 주민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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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아파트를 건설함으로써 생기는 주거권도 인권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주장하는 아파트 건설론자들에게는 지난 대통령선거를 통해 확인한 통계수치를 공유하고 싶다. 지난 5월 치러진 19대 대통령선거의 대전지역 유권자 수는 122만 명에 달했는데 당시 대전시 전체 인구의 약 80%를 넘는 숫자였다. 거꾸로 얘기하면 19세 미만의 인구비율이 20%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여서 인구 절벽시대를 보여주는 다소 충격적인 수치인 것이다.

미래세대인 10대의 비율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암울한 상황에다가 2013년 말 기준으로 이미 대전지역 주택보급률이 101.4%에 이르는 조건에서 양적인 측면의 주거권은 대전에서 이미 그 실체와 의미가 없다.

권 전 시장의 말처럼 미래를 보고 아무리 판단해 봐도, 대전은 아파트보다는 한 그루의 나무가 더 소중한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다. 거창하게 '미래'까지 가지 굳이 갈 필요도 없이 현재에도 풀지 못한 여러 가지 반인권적 환경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월평공원과 갑천은 지금 그대로 아니 지금 보다 훨씬 더 울창한 자연의 모습으로 시민들 곁에 있어야 한다.

콘크리트가 이 도시의 미래일 수는 없다. 미래가 돼서는 안 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월평공원과 갑천에 아파트를 지으려는 '과거'와 단절하자. 이와 같은 측면에서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물질적 결핍만이 아니라 '자연녹지 결핍' 역시 반인권적 환경이라는 사실이 이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도시 녹지공간은 단기적으론 기후변화 적응에, 장기적으론 기후변화 완화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수풀 우거진 청산(靑山) 도시에서 살 권리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작성한 이상재기자는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입니다.



태그:#월평공원, #환경권, #대전미래, #권선택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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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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