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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사 가는 길, 주산천 갈대가 흰색의 몸짓으로 사랑을 타전한다.
 유마사 가는 길, 주산천 갈대가 흰색의 몸짓으로 사랑을 타전한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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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군 남면에 있는 유마사를 찾아가는 길, 사수리와 주산리 천변을 따라 하얀 갈대의 몸짓이 흐드러진다. 가을바람을 타고 갈대가 보내는 흰색의 타전은 절묘한 사랑의 기호 같다. 멀고 아득했던 두 행성의 거리를 급격하게 좁혀 버린 흰색의 물리력.

가공할만한 흰색의 물리력은 사랑을 시작시킨다. 하얗게 태어난 새로운 우주, 새로운 사랑의 시작은 이별이라는 초신성의 폭발이 가져온 선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시작은 불안하고 두렵다. 급격하게 좁혀진 거리만큼 예민하고 섬세해지니 더욱 그렇다. 운명이 일치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흰색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새로운 두려움이기도 하다. 사회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소설가 에바 헬러(Eva Heller)는 흰색을 '삭막하기까지 한 청결함'이라고 말했다.

흰색은 청결과 순수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 연상은 순결과 희생으로 이어져 이를 실행할 희생양을 찾는다. 인류의 죄를 대신 씻기 위해 제물로 희생 당하는 어린 양, 너만은 순수하고, 순결하라고 강요당하며 살아야 했던 여성.

양과 여성은 모두 흰색으로 이미지 규정을 당한다. 어리고 흰 양, 갸날프고 흰 여성. 서양에서 여자 이름이 흰색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영어권의 캔디(Candy)나 제니퍼(Jennifer), 이탈리아의 비앙카(Bianca), 아일랜드의 피놀라(Finola) 모두 흰색을 기원으로 하는 여자 이름이다.

그나마 세상이 변해서 여성을 순수와 순결의 희생양으로 감금시키는 세태는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도처에 여성을 순수와 순결의 덫에 감금시키려는 음험한 잔재들이 많이 남아있다. 희생양이 아닌 그 자체로 온전한 사랑이어야 한다. 흰색이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색이듯.

유마사를 안내하는 돌의 빛깔과 뒷배경이 되고 있는 나무의 빛깔조차 희다.
 유마사를 안내하는 돌의 빛깔과 뒷배경이 되고 있는 나무의 빛깔조차 희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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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2교를 건너자 유마사(維摩寺) 가는 길이 시작된다. 유마사는 모후산 자락 품 안에 살포시 안긴 듯 매우 편안한 형세를 하고 있다. 특히 유마사 일주문 들어서는 길은 비밀의 정원에 들어서는 것처럼 은근하다. 절을 휘감고 내려오는 계곡이 거칠지 않게 주변 소나무와 단풍나무, 부도탑과 어울리는 모양이 한껏 정겨워진다.

유마사는 백제 무왕 28년(서기 627년)에 중국의 고관이었던 유마운(維摩雲)이 딸 보안(普安)과 함께 건너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내력을 1915년에 작성된〈동복읍지〉는 다음과 같이 뒷받침한다.

"현(縣)의 남쪽 20여리 모후산 아래에 있는데, 당(唐) 정관 원년 정해년(627)에 유마운이 창건하였으며, 현종 11년(1670)에 중건하였다. 귀정암, 금릉암, 운성암, 사자암, 오미암, 동암이 모두 유마사 부속 암자인데 지금은 없다."

무려 여섯 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유마사, 천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그 규모 또한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마사 가는 길이 설렌 까닭은 색다른 사랑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서다. 수도승과 민간인, 수도승과 수도승 간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은 많다. 그러나 유마사처럼 실존했던 인물의 이름을 특정해서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은 흔치 않다.

유마사를 창건한 유마운의 딸, 보안은 자색이 곱디 고왔던 모양이다. 유마운의 불제자였던 응일이 보안에게 고백을 했다. 유마운이 죽은 뒤였다. 보안은 유마사의 샘인 제월천(濟月泉)에 담긴 달을 채로 건져주면 아내가 되겠노라고 응일에게 약속했다. 물속의 달, 수월(水月)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동양의 득도(得道) 설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그 제안을 한 보안은 샘물 속의 달을 표주박에 담아 금방 건져내지만 수도승이었던 응일은 달을 건져내지 못한다. 사랑이 깊으면 어리석은 미련도 깊어지는 것일까. 한낱 인간이 샘물 속 달을 무슨 수로 건져낼 수 있을까. 이쯤이면 포기할 법도 한데 응일은 사랑을 접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보안을 내내 지켜보기만 했다.

유마사 일주문으로 들어서는 길.
 유마사 일주문으로 들어서는 길.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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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불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보안에게 응일이 다가간다. 보안은 이대로 가다간 응일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꽃이 되어 멀리 날아가 버린다. 연꽃이 되어버린 사랑, 그제서야 응일은 보안을 연인이 아닌 도반(道伴)으로 받아들이고 불도에 정진한다.

사랑은 떠나고 나만 남았다. 지독한 사랑의 편린은 남아 있는 자나 떠난 이에게 아련한 무엇을 남기나 보다. 멀리 떠난 보안은 절로 오는 길의 계곡이 깊어 불자들이 쉽게 오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보안은 치마폭에 큰돌을 싸안고 와서 돌다리로 삼는다. 그 다리가 바로 '유마동천 보안교'다.

길이가 5m가 넘고 두께가 50cm가 되는 돌덩이를 치마폭에 감아 한걸음에 달려온 마음,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른 아침, 유마사에 안개가 내린다. 안개는 갈대의 색을 닮았다. 착하고 정직한 흰색, 일방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의 색. 그러고 보니 유마사에 있는 모든 것들은 깊은 흰색이다. 옛 대웅전 터를 지키는 고인돌과 회랑의 흔적도 깊은 흰색이고, 사랑으로 만든 보안교도 깊은 흰색이고, 혜련 스님의 부도탑도 깊은 흰색이다.

그래서 흰색은 시작이고 부활이다. 끝이, 끝이 아니다. 이별이, 이별이 아니다. 지극히 단순한 윤회(輪廻)의 과정에 우리는 찰라로 스쳐 영원을 기약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두 번 다시 없을 미련한 기약을 되풀이 하는 것. 사랑이여, 흰색의 쓸쓸한 적멸(寂滅)이여.  

유마사에는 대웅전이 없다. 대웅전 노릇을 함께 하는 관음전으로 아침 안개가 흐르고 있다.
 유마사에는 대웅전이 없다. 대웅전 노릇을 함께 하는 관음전으로 아침 안개가 흐르고 있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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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마사, #화순, #흰색, #사랑, #남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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