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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화순 연둔리 숲정이길에 가을이 깊었다.
 전남 화순 연둔리 숲정이길에 가을이 깊었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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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봄이었다. 나무들은 신록(新綠)이 짙어져 녹음(綠陰)으로 한창이었다. 아무 통증 없이 소년의 시절을 보내고 청년의 날을 맞이한 철부지처럼 자기만의 시절로 한창인 나무들의 푸른 행렬.

요란스럽진 않지만 잡티 하나 없이 유쾌한 나무들의 대화가 이어지던 전남 화순 연둔리 숲정이길. 그 푸르게 달콤했던 봄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청춘(靑春)은 구김살 없는 수다의 시절 아니었던가.

키 다른 어깨가 서로 닿을 듯 말 듯 느리게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반복한다. 아직 꼬옥 맞잡아본 적 없는 손은 서로 등을 스치는데 손등에선 약간의 열이 나고, 손바닥은 두근거리는 땀방울로 벌써 송글송글하다.

몇 마디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억겁의 세월이 지나버린 듯하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걸었는데 길은 압축돼 성큼성큼 다가온다. 몇 걸음 아껴보려고 자꾸자꾸 멈춰 선다. 녹음 사이 깃든 파란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괜시리 나무를 보듬으며 만져도 모를 나무의 나이를 세어보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매겁는('아무 의미나 의도 없는'의 전라도말) 소리를 하는데 서로 다 알아먹는다. 우스갯소리 한 마디 없는데 입가에선 실실 미소가 그치질 않는다. 기분 좋게 미쳐버린 봄날, 연둔리 숲정이길에서 청춘의 수다는 끝날 줄 몰랐다.  

 지난 늦봄, 한 중년 여성이 화순 연둔리 숲정이길 느타나무 아래에 홀로 앉아 있다.
 지난 늦봄, 한 중년 여성이 화순 연둔리 숲정이길 느타나무 아래에 홀로 앉아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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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화순군 동복면 연둔리에 있는 숲정이길.
 전남 화순군 동복면 연둔리에 있는 숲정이길.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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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늙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 한 중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기운이 빠져 등은 약간 구부정하게 굽었고, 초점 잃은 동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앞에서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 길을 홀로 걷는 것일까. 여기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한 것일까. 그녀가 한참을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었지만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매겁시('아무 뜻이나 목적 없이'의 전라도말) 기다리기로 한 것일까.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무들과 함께 그녀의 쓸쓸한 등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머지않은 날 나의 이야기거나 어릴 적 엄마가 낮잠 결에 들려주어 흘려버린 이야기. 연둔리 숲정이길에서 소녀가 된 엄마가 들려주는 자장가를 들었다. 

눈물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나무들은 새록새록 잠들기 시작했다. 강물은 잠시 멈추고 그 여자를 안아주었다. 여자가 보에 안긴 아기처럼 순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참매미 한 마리 울지 않는 지난 늦봄 연둔리 숲정이의 오후를 잊지 못한다.

'숲정이'는 마을 근처의 숲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연둔리 숲정이는 약 1600년 전에 물을 다스리기 위해 둔동보를 만들었는데 혹시 보가 감당하지 못한 물로 마을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해 만든 인공림(人工林)이다. 물이 범람해 마을을 덮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수림(防水林)인 것이다. 섬마을이나 바닷가마을에 거친 바람을 막아 마을을 보호하는 방품림(防風林)이 있듯 육지 강변마을엔 방수림이 있다.

1km 남짓 이어진 연둔리 숲정이엔 227그루의 나무가 어울려 살고 있다. 주로 느티나무, 서어나무, 검팽나무, 왕버들나무다. 나이 많은 나무는 수령 200년을 웃돌고, 젊은 나무는 50년 안팎의 나이테를 뽐내고 있다. 주민들은 숲정이에 어울리는 종을 골라 요즘도 때때로 나무를 심고 있다. 그렇게 나무의 또 한 세대가 이어진다. 사람의 사연이 이전 세대에서 이후 세대로 이어지듯.

 가을 숲정이길을 다정하게 걷고 있는 사람들.
 가을 숲정이길을 다정하게 걷고 있는 사람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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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정이길을 따라 둔동교를 건너 구암마을에 들어선다. 구암마을은 조선후기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1807~1863)이 숨지기 전까지 머문 곳이다. 김삿갓은 구암마을을 1841년, 1850년, 1857년 모두 세 차례 방문했다.

특히 그는 1857년부터 생의 마지막 6년을 화순 동복에서 보냈다. 1863년 3월 29일 김삿갓이 길고 긴 유랑의 눈을 감은 곳도 구암마을이었고, 그렇게 죽어 처음으로 묻힌 초장지(初葬地)도 구암마을 뒷산이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저 먼 경기도 양주 땅,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는 구암마을을 고향삼아 본가(本家)삼아 살다가 생을 마쳤다. 서른 넘어 길을 잡은 남도길, 구름처럼 떠돌던 김삿갓에게 구암마을은 평생에 하나밖에 없던 거처(居處)가 되었다.

무수한 관계망에 묶여 살면서도 늘 섬처럼 외로운 그대여. 그대의 거처는 어디인가?  

"고운 이끼 푸른 풀 우거진 곳에 개구리 울어대고
손님 끊긴 문전에는 촌길만이 가파르네

산에서 비 몰아치니 바람은 대나무 흔들고
연못에서 물고기 뛰어 물 뿌리니 연꽃이 번뜩인다

한가로이 시를 읊으니 달은 창가에 가득하고
버들에 가린 골목길은 엷고 푸른 안개로 가득 차고

늙은 홀아비 오늘밤 좋은 경치로 만족한데
붉은 얼굴 다 지나가고 흰 머리털만 성성하네."

- 김삿갓 <비갠 뒤 지은 시>

 둔동교를 건너면 구암아을이다. 이 마을은 방랑시인 김삿갓이 생의 마지막 6년을 살다가 눈을 감은 곳이다. 마을에 있는 김삿갓 문학공원.
 둔동교를 건너면 구암아을이다. 이 마을은 방랑시인 김삿갓이 생의 마지막 6년을 살다가 눈을 감은 곳이다. 마을에 있는 김삿갓 문학공원.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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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기행 1편에 이어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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