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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판이 멀쩡한 북극서점
▲ 북극서점 간판이 멀쩡한 북극서점
ⓒ 황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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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구청 근처에 골방 같은 서점이 하나 있다. 주인 취향의 책을 갖추어 팔고 있는데 책방을 둘러보면 옛날 잡지도 팔고 헌 만화책도 많이 있다.책  아닌 것들도 보인다. 에코백과 CD도 팔고 빈티지 물건들도 있다. 또 살펴보니 엥? 옷도 있네. 그래 옷도 판다. 5평이 될까 싶은데(50평이 아니라 5평임) 물건이 꽤 잡다구리하게 많다. 근데 그 잡다구리한 물건들 하나같이 매력 있네.

골방 같은 서점 가장 안쪽 구석엔 주인장이 테이블을 마련해서 앉아 있다. 한 사람 앉으면 다 찰 것 같은 공간인데 손님이 오면 의자 서너 개를 꺼내와 앉으라고 한다. 좁지만 몸을 반쯤 접으면 다 앉을 수 있다. 그렇게 둘러앉으면 주인장은 꼼짝없이갇힌 형국이다.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줄줄이 다 일어나야 한다.

이곳에서는 책이든 옷이든 뭐라도 사게 된다. 주인장은 뭐라도 산 손님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구석에서 주섬주섬 엽서니 반짝이 배지니 매직아이 책받침 같은 것을 꺼내준다. 딱히 생활에 유용한 물품들은 아니나 하나 정도 소장하면 괜히 왼쪽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물건들이다. 책도 개성 있는 독립출판물과 양서들이 골고루 갖추어져있다. 여기가 바로 북극서점. '차가워지지 않기 위해 읽어 가겠다'는 다짐으로 연 북극서점이다.

북극서점은 염 사장, 순 사장 두 분이 운영한다. 염 사장님은 디자인을 하시고 순 사장님은 노래도 하고 글도 쓰시는데 '슬로보트'라는 이름으로 창작 활동을 한다. <섬광>이라는 독립출판물을 발행하고 최근엔 <각자의 해변>이라는 책을 쓰셨다.

염 사장은 월 화 수 토, 순 사장은 목 금 토 일, 책방을 지킨다. 두 분은 영혼이 비슷하여 SNS에 올리는 글만 봐서는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같이 있으면 이후북스의 황부농과 상냥이처럼 투닥거린다고 하던데 아직 우리를 따라잡으려면 멀었다. 북극서점 간판이 멀쩡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이후북스는 두 번 쪼개짐). 아무쪼록 두 사장님 간판 던져가며 싸우시길 바라요. 아니 아니 사이좋게 지내세요.

북극서점에 대한 설명이 길었는데 이만 줄인다. 여기까지 읽고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찾아가 보시길.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나는 본론이 더 짧지만) 순 사장님이 쓴 <각자의 해변>을 소개하고자 한다.

 북극서점 순사장님의 일기 <각자의 해변>
▲ 각자의 해변 북극서점 순사장님의 일기 <각자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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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해변>은 순 사장님이 8년 동안 쓴 일기다. 일기니까 생활에서 발견한 여러 모습과 생각들이 담겨있다. 아주 극적인 사건들을 적거나 한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여운은 길다. 편안함+청량감+감미로움+보드라움+포근함+어여쁨 등 여러 가지 단어를 더해 말하고 싶은데 길다 길어.

그 단어들을 모두 모아 버무리니 '새싹'이 어울리네. 파릇파릇하면서도 연약해서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싶은. 아니지, 이 책은 길고양이 같다. 홀로 씩씩하게 걷지만 밥 한 끼 챙겨주고 싶은. 아니지, 이미 순 사장님이 적절한 이름을 붙였구나. '슬로보트. 세상을 좀 더 찬찬히, 그리고 풍성히 겪으며 항해하는 배'

풍성하고도 찬찬히 스며드는 맛있는 일기다. 분류되지 않는 서랍을 보며 조금 울고, 비를 피하는 아이의 열 걸음을 담아두고, 파도 소리 '쪼륵 촤알썩' 따라해 보고,  행복을 '아침에 눈뜨면 머리맡에 놓여있는 선물 같은 게 아니라 두 손을 묶고서라도 따먹어야 하는 실에 매달린 운동회 과자 같은 거라' 정의하며, 김포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과 너무 많은 노래를 불러 옆 반 선생님에게 잔소리 듣는 어떤 천진한 풍경을 가진, 무술 연습을 하는 고양이 '소룡이'의 언니. 한 사람의  8년 치를 책 한 권으로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해변>에 동동 일렁이는 파도를 보니 슬로보트가 지나간 자리라는 것 알겠네.

순 사장님은 이 책을 소량 찍어 혼자서만 팔고 있다. 왜냐면 책을 만들어놓고 부끄럽다나 뭐라나? 단가도 잘못 책정해서 책 가격의 70%가 인쇄비다. 그러니 다른 서점에 공급하지도 못한다. 아 놔 장사 한두 번 합니까? 그렇긴 하네. 우리는 장사를 처음 시작한 존재들이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1쇄는 순 사장님이 북극서점에서 판다 치고, 중쇄는 천 부 정도 찍어서 전국 책방에 뿌립시다! 해변에서 둘이 같이 읽다 한 사람이 모래사장에 파묻혀도 모를 정도로 재밌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하긴, 소문이라는 것은 당사자가 제일 늦게 아는 법이다.

 북극서점에서 재미난 것 많이 팔아요
▲ 북극서점 내부 북극서점에서 재미난 것 많이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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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랜만에 올리는 책방일기. 북극서점을 운영하는 순사장님의 일기 <각자의 해변>을 읽고 썼습니다. 책방지기들 일기는 다 재미있나 봅니다. 히히



태그:#북극서점, #이후북스, #순사장, #염사장, #황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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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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