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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의 존재는 늘 아이로 대체됩니다. 아이를 품은 '엄마'가 아닌, '미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라는 대중교통 임산부석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자신의 이름은 사라진 채 누구누구의 엄마로 살아가는 엄마들. [주간애미]는 '애 말고 엄마'들을 위한 콘텐츠를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직장에 다니며 아들 둘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달려왔다. 출근할 때 뛰고 퇴근할 때 뛰는 게 운동이라면 운동이었다. 40대 후반이 되면 몸 관리를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이 확연히 구별된다. 체력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외모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최근 들어서 나는 청소기만 돌려도 머리가 핑 돈다. 내가 청소기를 돌린 건지 청소기가 나를 돌린 건지 모를 지경이다. 직장을 그만둔 지금이 운동을 해볼 수 있는 적기다.

에어로빅 학원을 기웃거려 보았다. 유리창 안쪽에 보이는 언니들의 과격한 몸짓에 기가 죽었다. 에어로빅 강사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랫배를 튕겨 튕겨."

나는 튕겨 나왔다. 헬스클럽도 가 보았다. 온 김에 등록 안 해도 좋으니 한번 해 보고 가란다. 마침 운동복 차림이라 러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부착된 TV를 보며 신나게 뛰는데 갑자기 고관절이 아팠다. 속도를 내리고 러닝머신 위에서 내려왔는데 내 다리가 멈춰지지 않는다. 뛰어볼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그런데 고관절이 너무 아파 못하겠다고 감사인사를 해야 하는데 나는 저절로 열린 문으로 나와졌다. "죄송해요, 다음에 올게요"라는 말과 창피함을 남긴 채.

"허리를 꼿꼿이 펴고 배가 허벅지에 닿고 이마가 정강이에 닿게 숙이라는데, 내 등은 공격당한 쥐며느리처럼 동그랗게 말아지고 무릎은 구부러지고 속절없는 땀만 뚝뚝 떨어졌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배가 허벅지에 닿고 이마가 정강이에 닿게 숙이라는데, 내 등은 공격당한 쥐며느리처럼 동그랗게 말아지고 무릎은 구부러지고 속절없는 땀만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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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특별 할인. 3+3. 3개월 결제하면 3개월을 더 준다는 현수막이 집 앞에 붙었다. 길 건너에 있는 요가학원이 벌써 10년이 되었나 보다. 머리를 굴려본다. 3개월에 39만 원인데 6개월을 준다는 말인 거지? 그럼 한 달에 6만5천원. 요가는 꼭 해보고 싶었으나 가격이 부담이었었다. 되도록 가성비가 좋은 주민센터에서 주최하는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인기가 많은 요가반은 늘 대기 상태였다. 재수생 아들 밥을 차려주고 상담을 하러 갔다.

원장은 4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온화한 미소를 가진 그녀는 잔 근육으로 온몸이 덮여있다. 인간이 가진 근육의 결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녀의 몸을 보니 내 맘속에서도 의욕이 불끈 솟았다. 핫 요가라서 공기도 따뜻하고 분위기도 따뜻하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잔잔한 음악이 깔려있고 예쁜 요가 선생님들이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를 단 채 상냥한 목소리로 수강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사뿐한 걸음으로 이 방 저 방을 정리하러 다닌다. 

허리야 다리야, 왜 안 펴지니

첫 수업 날, 꽃향기가 솔솔 풍길 것 같이 예쁘고 젊은 선생님이 들어왔다. 얼굴만 봐도 힐링이 된다. 말도 어찌나 차분차분 잘 하는지.

"숨을 최대한 깊숙이 들여 마십니다. 갈비뼈 사이사이에 신선한 공기가 꽉 찬다는 느낌으로. 자, 이제 숨을 내쉽니다. 내 숨 속에 오늘 하루 힘들었던 모든 것들을 다 흘려보냅니다."

이 한마디에 내 힘들었던 것들이 그 순간에는 내 호흡과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가 제대로 왔구나'라는 생각은 수업이 끝날 때쯤 '내가 버틸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보통 일이 아니다.

밤새 끙끙 앓았다. 그동안 겸손하게 수축해 있던 내 모든 근육들이 50여 년 만에 깨어났다. 먼저 요가를 시작한 친구는 아파도 계속해야지 근육이 풀어진다며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한다.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다시 요가를 하러 갔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배가 허벅지에 닿고 이마가 정강이에 닿게 숙이라는데, 내 등은 공격당한 쥐며느리처럼 동그랗게 말아지고 무릎은 구부러지고 속절없는 땀만 뚝뚝 떨어졌다. 벽면 거울이 야속하기만 하다. 뭐 그리 좋은 풍경이라고 그토록 정직하게 보여주는지.

그 와중에 흔들리는 내 맘을 단단히 붙잡을 문구를 발견했다. '비키니 이벤트'. 앞으로 6개월 이내 체지방 감소가 가장 큰 회원에게 3개월을 무료로 준단다. 동방예의지국에서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게 예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나.

신청할 사람은 우선 체지방 검사를 해서 기록한다. 6개월 후에 다시 체지방 검사를 해서 감소율이 가장 높은 사람이 당선. 사실 나는 살집이 없다. 그래도 운동을 한 적 없으니 마른 비만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비율로 산정한다고 하니 내게도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체지방 측정기에 올라갔다. 내 생에 처음으로 몸무게가 많이 나갔으면 하고 바라던 순간이다. 결과는 참담하다. 저체중, 저지방, 저근육, 저수분이란다. 뭐가 이렇게 부족한 게 많은지. 나 스스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인 줄은 익히 알았지만.

"회원님 같으신 분은 꼭 운동을 하셔야 해요. 근육량을 키우지 않으시면 앞으로 더 힘들어져요, 체력이 엄청 달리지 않으세요?"

요가학원 원장이 말한다. 나는 이 소리가 마치 병원에서 의사가 '왜 이 지경이 돼서야 왔냐'라고 하는 질책의 소리처럼 들려 창피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내 몸을 보여준 것 같다. 이제 내 실체를 알았으니 정진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비장하게 이를 악문다.

생존을 위한 취미생활, 이마저도 힘드네

"요가 한 시간을 가기 위해 두 시간 전부터 장을 보고, 상을 차린다. 운동 다녀와서 또다시 정리하고 밥 차리고 내일 아침거리를 준비하고 씻고 나면 또 두 시간이 훌쩍이다."
 "요가 한 시간을 가기 위해 두 시간 전부터 장을 보고, 상을 차린다. 운동 다녀와서 또다시 정리하고 밥 차리고 내일 아침거리를 준비하고 씻고 나면 또 두 시간이 훌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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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씻을 기력도 없다. 겨우 한 시간여 집을 비웠을 뿐인데 차려놓은 밥을 먹고 나간 아이들의 행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여기저기 갈아입고 나간 옷더미들, 싱크대를 가득 채운 그릇들. 국물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려 남편이 오기 전에 찌개도 다시 끓여야 한다. 요가 시간대를 낮으로 옮겨보려 했지만 가격행사를 해서 그런지 저녁 시간이 아니면 자리가 없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싱크대에 붙이고 뚝딱뚝딱 설거지를 하고 찌개를 끓인다. 남편이 오기 전에 모든 걸 해 놓지 않으면 집에서 편히 놀면서 운동한다고 싸돌아다니고 집안일은 내팽개친다는 억울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다리가 떨리는 것도 잠시 잊는다.

남편이 들어온다. 새로 끓인 찌개에 밥을 먹으며 운동하니까 좋냐고 묻는다. 속으로 나는 답했다.

'자기가 밥 먹고 들어오는 게 더 좋아. 어째 당신은 회식도 없고 친구도 없냐.'

몸이 힘드니 미운 말이 올라온다. 요가 한 시간을 가기 위해 두 시간 전부터 장을 보고, 상을 차린다. 운동 다녀와서 또다시 정리하고 밥 차리고 내일 아침거리를 준비하고 씻고 나면 또 두 시간이 훌쩍이다. 기진맥진이 되어버리는 이 짓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다. 요가 한 시간을 추가했을 뿐인데 내 스케줄은 폭주하는 에바1호기 같다. 나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게 이렇게 복잡다단하다.

네 식구 먹여 살리느라 눈만 뜨면 출근하는 남편과 입시지옥 대한민국에서 눈만 뜨면 학교·학원으로 뛰어야 하는 아이들 앞에서 나의 부대낌은 너무도 소소하다. 그래서 내색하기도 미안한 나는 아파도 안 아프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누군가 나를 돌봐야 하는 무서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돌보는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그런 날은 지름길로 온다.

지금 내게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걸 감사히 여기고 이왕이면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청소기를 돌려도 내 머리가 돌지 않는 그 날을 위하여 오늘도 스트레칭.


태그:#주간애미, #요가, #운동, #돌봄, #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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