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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판 세월호'라 할 만한 대형 금융 사건 '키코 사태'. 10년 전, 2007년 말 은행의 권유로 키코에 가입했던 700여 개의 중소·중견기업들이 큰 손해를 입고, 대부분 파산했다. 당시 피해 기업을 '환투기꾼'이라 부르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은행이 중요한 정보를 숨기고 상품을 팔았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당시 피해 기업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키코 사태 10년을 맞아 피해 기업인들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말]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이 14일 오후 구로구에 있는 하청업체 의류 제작 샘플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키코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조 전 사장은 “희망 사항은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사업을 할 수 있게 나라가 도와 줘야 한다”고 말했다.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이 14일 오후 구로구에 있는 하청업체 의류 제작 샘플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키코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조 전 사장은 “희망 사항은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사업을 할 수 있게 나라가 도와 줘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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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우리나라에 정의가 살아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에요. 이건 정의가 아니라, 살인을 하고도 뒤집어 씌우는... 그런 식인 거죠. 실망이 너무 큰 거예요. 재봉틀 한 대로 시작해서 200대까지 운영하다가, 중국에서 스페인으로 수출하는 무역을 했는데... 그렇게 된 거죠."

바쁘게 손을 놀리며 작업물에 시선을 고정시킨 그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지난 14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만난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 당초 조 전 사장은 이른바 '키코 사태' 당시의 일을 떠올리기도 싫다며 인터뷰를 고사했지만 어렵게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풀었다.

그는 "(글로벌 의류기업) 자라(ZARA)에 직접 수출했었다"며 "무역을 하니 달러를 받았는데 그때는 환율이 900~920원 등으로 요동치던 때였다"고 말했다. 조 전 사장은 지난 2007년 말 신한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었다. 키코(knock-in, knock-out: KIKO)는 원-달러 환율(아래 환율) 변동폭이 클 때 환율이 일정 구간 안에서 움직이면 미리 정한 환율로 달러를 팔 수 있는 금융 상품이다.

은행들은 키코를 '환 헤지(위험회피)'가 가능하고, 수수료가 0원인 상품으로 소개하며 수출 기업들에게 판매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900원대에서 1500원까지 폭등하자 계약한 돈의 2~5배를 물어주게 된 수많은 기업들이 손실을 입고 파산했다.

[에이원어패럴] "걱정하지 말라더니..." 돈 못 갚자 수출 길 막아버린 은행

이어 조 전 사장은 "(은행에서) 우리는 우수기업이니 선처를 해준다며 달러를 950원에 바꿔준다고 했다"며 "그렇게 알고 계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환율이 1000원에 가면 (계약)해지가 되고, 900원으로 떨어져도 해지가 된다고 해서 계약했다"며 "그런데 나중에 보니 600만 원 가량 돈이 빠져나가게 됐다"고 했다. 환율이 떨어져 손해볼까봐 키코에 가입했는데, 오히려 환율이 치솟자 거꾸로 은행에 돈을 물어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 전 사장은 이런 계약 내용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키코 계약 내용이 복잡하다. 환율 변동이 심할 때는 수출 기업이 똑같은 달러를 벌어도 원화로 환전하면 손해(환차손)를 볼 수도 있다. 은행에서 이런 기업을 겨냥해 환율이 미리 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일 때는 약정 환율을 적용해주는 금융 상품을 내놓았다. 바로 키코다. 하지만 이 상품에는 무서운 '함정'이 있다.

예를 들어 A기업이 2년 동안 매달 1만 달러를 환율 1000원에 팔 수 있는 은행 키코 상품에 가입했다고 하자, 이때 환율이 미리 정한 상한선과 하한선인 1020원과 980원 사이에서 오르내리면 A기업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문제는 환율이 상한선을 벗어날 때다. 계약기간 동안 환율이 상한선인 1020원을 넘어서면 A기업은 매달 1만 달러의 2배인 2만 달러를 약정 환율인 1000원에 은행에 팔아야 한다. 더 많은 달러를 은행에 더 비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A기업은 더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에이원어패럴이 신한은행과 약정한 금액은 20만 달러, 약정 환율은 950원이었다. 환율 상한선과 하한선은 각각 1000원과 900원으로 2년간 계약했다. 다른 피해 기업들처럼 환율이 상한선을 넘어갈 경우 약정 금액이 2배 이상 뛰는 계약은 아니었다. 하지만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가면서 약정 환율보다 500원 이상 높아져 그 손실을 감당할 수 없게 돼 결국 폐업하게 됐다. 조 전 사장의 이야기다.

"이런 건 들은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방방 뛰었죠. 당시 은행장이 와서 '임시적으로 잠깐 이러는 거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러는 거에요. 우리가 그때 1000만불을 수출하려다 보니 예산이 부족했어요. 그러니까 대출 쪽으로 많이 도와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다음에 은행이 (신용장) 네고를 안 해주는 거죠. (키코 계약) 20만불에 대해서 600 몇 만원이 나왔는데, 그걸 얼른 줘야 네고를 해준다는 거야. 첫 번째 이자를 그렇게 물었어요. 나중에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냈더니 '이자를 냈으니 그건 당신이 계약한 거다'라고 하더라고요."

"사채 쓴 것도 아닌데 자고 일어나면 갚아야 할 돈이 몇 천만 원씩 불어나"

조 전 사장은 “우리같은 사람은 뭐도 모르고 은행이니까 믿고 했는데 은행이 설마 사기를 칠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라며 “사채를 쓴 것도 아니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몇 천만원씩 돈이 불어났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조 전 사장은 “우리같은 사람은 뭐도 모르고 은행이니까 믿고 했는데 은행이 설마 사기를 칠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라며 “사채를 쓴 것도 아니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몇 천만원씩 돈이 불어났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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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은행은 이를 이유로 무역에 필요한 신용장 처리를 해주지 않았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회사가 이를 갚게 됐다는 것. 이후 키코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했을 때 금융당국은 갚은 돈을 키코 계약이 성사된 증거로 봤다는 게 조 전 사장 설명이다.  
더불어 조 전 사장은 "사채를 쓴 것도 아니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몇 천만 원씩 갚을 돈이) 불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조금 더 벌겠다고 화장실도 없는 중국 산지에 가고 그랬는데 몇 푼 벌어봤자 (갚을 돈이 많아) 소용이 없어 (무역을) 중단했다"고 덧붙였다. 

억울한 마음에 조 전 사장은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때 신한은행이 키코에 대해 제대로 설명했다고 반격하자, 당시 출입국확인서를 제출하면서 한국에 없어 설명을 들을 수 없었음을 증명했다고 조 전 사장은 설명했다.

재봉틀 1대로 시작해 200대까지 운영했다는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은 키코(knock-in, knock-out:KIKO) 사태로 불어난 이자를 갚지 못해 파산했다.
 재봉틀 1대로 시작해 200대까지 운영했다는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은 키코(knock-in, knock-out:KIKO) 사태로 불어난 이자를 갚지 못해 파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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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전 사장은 불어난 이자를 갚기 위해 밤낮 쉬지 않고 재봉틀 작업을 했다.
그는  "손을 너무 많이 써서 연골이 다 닳았다"라며 "약을 먹어보고 안 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전 사장은 불어난 이자를 갚기 위해 밤낮 쉬지 않고 재봉틀 작업을 했다. 그는 "손을 너무 많이 써서 연골이 다 닳았다"라며 "약을 먹어보고 안 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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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도 이를 인정해 은행이 상품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키코계약 손실액 약 13억 원의 절반을 은행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에이원어패럴은 나머지 6~7억 원에 붙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30여 년 살던 집을 팔고, 회사 사무실도 팔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조 전 사장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빚을 갚고 있다.

키코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에이원어패럴은 꾸준히 성장하는 회사였다. 중국에서 옷을 만들어 의류기업 '자라'에 납품하는 업체였다. 키코 사태 이후 회사가 사라지자 조 전 사장과 그의 남편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회사에 취업해 돈을 벌었다. 현재는 한국에서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하고 있다. 예전에는 자라에 옷을 직접 납품하는 업체였지만, 이제는 단순히 의류 샘플을 만들어 다른 업체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다. 글로벌 의류 브랜드의 1차 협력업체에서 2차 하청업체로 전락한 것이다.

조 전 사장은 기자에게 손목을 보여주며 "손을 너무 많이 써서 연골이 다 닳았다"고 말했다. 이어 "약을 먹어보고 안 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키코로 속앓이를 하다가 뇌종양 판정까지 받았다"며 "다행히 수술을 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조 전 사장은 여전히 은행이 자신들을 상대로 사기행위를 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은행이니까 100% 믿었다"며 "설마 사기를 칠 거라고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고 했다. 그에게 희망을 물었더니, "정부가 나서서 다시 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동화산기] "기업회생 신청하자 회사 빼앗겨... 변호사 선임도 못하고 끝났다"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박용관 동화산기 전 회장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박용관 동화산기 전 회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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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관 전 동화산기 회장도 키코 사태 여파로 회사를 잃은 사연을 기자에게 털어놨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기업회생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백발의 노인이었지만 10년 전 키코 사태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해냈다. 박 전 회장은 "기업회생으로 갔는데, 그 조건이 신한은행에서 관리인을 보내는 것이었다"며 "금융권의 악랄한 수법이다. 자기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키코 손실을 막아내지 못한 동화산기가 기업회생을 신청하자 채권자인 신한은행이 회사를 넘겨 받겠다고 나섰다는 얘기다. 이어 그는 "그 관리인은 은행편이니 회사를 빨리 매각해야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2009년 말 쯤에 회사가 매각됐다"고 덧붙였다. 박 전 회장이 당황하던 찰나 은행에 회사를 빼앗겼고 이후 회사가 중국으로 팔렸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런 법적 권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며 "돈이 없으니 변호사 선임도 못하고 그렇게 끝이 났다"고 했다.

동화산기는 타이어 제조 설비를 만드는 회사였다.1987년 설립 이래 지난 2007년에는 약 600억 원이라는 최고 매출액을 기록하고, 국가품질 경쟁력 우수기업, 금호타이어 설비협력업체 가운데 1등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당시 컨설팅 업체로부터 코스닥 상장을 권유받기도 했었다고 박 전 회장은 설명했다. 모두 키코 사태가 불거지기 이전의 이야기다. 이어 키코 계약 당시를 떠올리며 박 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신상훈 전 신한은행장까지 나서서, 자금 지원 약속하며 키코 영업"

"2007년 말 쯤이었어요. 은행이 기업 담당자들과 대표들을 데리고 말레이시아로 해외연수를 보내줬죠. (키코를) 환헤지 상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외화가 들어오는데 환율이 떨어질 때 위험을 피할 수 있겠구나 한 거죠. 신상훈 신한은행장도 와서 설명할 때 옆에 앉아있더라고요. 믿음을 주는 겁니다. 최대한 기업을 지원해주겠다 하니 듣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금융권의 자금(대출)을 지원 받아서 멋있는 회사를 만들어 국가에도 기여하고, 그렇게 생각했죠."

당시 40여 개 기업들이 이 연수에 참가했다는 것이 박 전 회장의 설명이다. 이후 계약한 키코로 인해 동화산기는 총 186억 원 가량 손실을 보고, 이를 막지 못해 매각됐다. 이에 대해 박 전 회장은 "기업회생 신청까지는 갔었다"며 "다른 (채권) 은행들은 모두 회생에 동의했는데 신한은행이 반대했고, 그 지점장이 회사의 관리인으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전 회장은 대표이사직을 빼앗겼고, 키코 관련 자료도 손에 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 박 전 회장은 개인신용불량자가 돼버렸고, 지금은 고철유통업을 하고 있다. 이어 그는 "키코 피해 기업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적폐청산"이라며 "빨리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박 전 회장은 키코 피해자에게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은행들이 나눠 피해를 보상하고, 기업들이 (살아나) 국가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실업율도 높은데, 이에 도움 줄 수 있는 힘을 길러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박용관 동화산기 전 회장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박용관 동화산기 전 회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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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경제부 기자입니다. 010-9403-7847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이희훈입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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