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융판 세월호'라 할 만한 대형 금융 사건 '키코 사태'. 10년 전, 2007년 말 은행의 권유로 키코에 가입했던 700여 개의 중소·중견기업들이 큰 손해를 입고, 대부분 파산했다. 당시 피해 기업을 '환투기꾼'이라 부르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은행이 중요한 정보를 숨기고 상품을 팔았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당시 피해 기업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키코 사태 10년을 맞아 피해 기업인들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말]
지난 10월2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키코 사건의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조붕구 키코공동대책위원장(오른쪽에서 5번째)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 10월2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키코 사건의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조붕구 키코공동대책위원장(오른쪽에서 5번째)도 참여하고 있다.
ⓒ 키코공동대책위원회

관련사진보기


"한번 망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저는 사람들이 게을러서 못사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로 그랬어요. 키코로 피해 본 사장님들이 굉장히 반정부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코막중공업(아래 코막)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조붕구 코막 대표의 말이다. 그는 키코공동대책위원장,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장으로 활동하며 키코 피해기업들 대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코막중공업 또한 키코로 2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입은 뒤 기업회생 절차를 밟았고, 조금씩 다시 살아나고 있다.

키코(knock-in, knock-out: KIKO)는 원-달러 환율(아래 환율)이 일정 구간 안에서 움직일 경우 미리 정한 환율로 달러를 팔 수 있도록 만든 금융상품을 말한다. 은행들은 환율 변동 폭이 컸던 지난 2007년 말부터 2008년 초 사이에 키코를 '환 헤지(위험회피)'가 가능하고, 수수료가 0원인 상품으로 소개하며 수출 기업들에게 판매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900원대에서 1500원으로 폭등하자, 위험회피는커녕 거꾸로 계약한 돈의 2~5배를 은행에 물어주게 된 수많은 기업들이 손실을 입고 파산했다. 

[코막중공업] 주식상장 준비 끝내고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른바 '키코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코막은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조 대표는 "(주식시장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를 진행 중이었다"며 "2007년에 주가(공모가)와 상장도 결정됐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산업은행 등 투자자들이 줄을 섰었다"며 "2만7000평의 공장을 새로 지어 장비를 공급하기 위해 450억 원 가량 증자를 추진했다"고 덧붙였다.

코막중공업은 건설 중장비 등을 만들고 판매하는 기업이다. 지난 2008년 말에는 자산 약 220억 원의 안정적인 중소기업이었다. 100여 명의 직원들은 모두 정규직이었다. 직원들의 자녀가 태어나면 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드는 학자금을 전부 지원해줬다고 조 대표는 설명했다. 또 이런 복지 혜택이 입소문을 타면서 직원 1명을 뽑을 때 500명이 몰리기도 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러던 코막이 은행과 계약한 키코 상품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이를 막아내지 못해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이후 코막은 2013년에 회생절차 종결결정을 받았다. 이듬해 말 자산은 36억 원 가량으로 곤두박질쳤다. 키코로 피해를 봤던 당시를 떠올리며 조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1000만불 정도 계약했는데, 은행에서 물타기하면서 2000만불로 늘어났죠. 환율이 상단을 치는 바람에 이 돈이 4000만불이 됐습니다. 키코로 손실이 일어나니 신용등급이 내려갔죠. 이자가 확 올라가더라고요. 돈을 갚기 위해 자산을 헐값에 팔았는데, 이런 파생손실까지 합하면 총 216억 원의 손실이 난 셈이더군요. 전세계에 사업장이 12개 있었는데 그 중 11개가 망했습니다."

코막의 경우 처음엔 1000만 달러를 은행과 계약했다가 이내 1000만 달러를 추가로 계약한 상황이었는데, 환율이 오르면서 이 돈이 4000만 달러로 대폭 늘어난 것이다. 환율이 상한선을 넘으면 팔아야 할 달러가 그 몇 배로 늘어난다는 계약 내용을 은행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게 조 대표 설명이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이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환율이 폭등하면서 돈이 불어나자 이를 갚지 못하고 파산에 빠진 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철저히 배신 당해...키코와 같은 적폐로 기업 죽는 일 생겨선 안돼"

이어 조 대표는 "100여 명이었던 직원들이 9명까지 줄었다가 최근엔 17명으로 늘었다"며 "건설 중장비 등을 생산했는데 요즘엔 신재생에너지, 태양광 발전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회사를 다시 살리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며 그 속내를 털어놨다. 조 대표는 "신용등급 자체가 없고 금융 지원도 안되고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경쟁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과거에는 전 세계 80여 국에 수출했는데, 지금은 30여 개국"이라며 "그나마 예전 거래선들이 돌아오고 꾸준히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코막과 달리 대부분의 키코 피해 기업들은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 조 대표 설명이다. 그는 "은행들이 수출기업 가운데 1500위 안에 드는 기업들에게 영업을 했는데, 대기업들만 빠져나갔다"며 "중소·중견기업만 당했다"고 말했다. 또 조 대표는 "수출기업들이 다 망하니 대량 실업도 생기고, 대한민국 산업의 허리가 끊어졌다"며 "부익부빈익빈이 더 심화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배신당했다"며 "키코와 같은 적폐에 의해서 우리 기업들이 죽고, 정의마저 죽어버리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면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키코 사태 이후 피해 기업들 중 일부는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는데, 지난 2013년 대법원에서 피해 기업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소송에서 지게 된 것을 두고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또 키코 사태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피해기업들을 향해 '환투기꾼'이라고 비난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각이 바뀌고 있고 피해기업들과 동참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조 대표는 설명했다.

이날 키코 피해기업 가운데 한 곳인 일성(현 일성하이스코, 아래 일성)의 장세일 전 회장도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일성은 철구조물, 산업 플랜트 등을 만드는 회사인데, 지난 2008년 말에는 약 20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했던 우량 기업이었다. 일성도 키코로 인한 손실을 막지 못하고 기업회생 절차를 밟은 뒤 현재 재기에 힘쓰고 있다. 지난 2012년 3월 일성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고, 지난해 10월 종결결정을 받았다.

[일성] 키코로 약 900억 원 손실..."나중에 보니 조그마한 글씨로 불리한 조건 있어"

지난 2007년 5월23일 키코 피해기업인 일성과 신한은행이 체결한 키코 관련 계약서. 환율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약정금액이 2배가 된다는 내용이 조그마한 글씨로 기재돼있다.
 지난 2007년 5월23일 키코 피해기업인 일성과 신한은행이 체결한 키코 관련 계약서. 환율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약정금액이 2배가 된다는 내용이 조그마한 글씨로 기재돼있다.
ⓒ 일성

관련사진보기


장 전 회장은 "신한은행이 도와달라고 해서 거래를 터줬다"며 "우리 직원들이 은행원 말만 믿고 해준 것"이라고 키코 계약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키코로 인해 신한은행과의 계약에선 368억 원, 산업은행 120억 원, 우리은행 160억 원, 씨티은행 50억 원, 대구은행 80억 원 등 총 907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장 전 회장은 대출이자 등 파생손실까지 합하면 실질적인 손실액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우리가 (수출로) 2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장난을 친 거죠. 우리 직원들이 이쪽 은행들에 도와준 게 많았고, 믿고 계약한 겁니다. 저는 (계약서를) 보지도 못했어요. 나중에 보니 계약서 뒤에 조그마한 글씨로,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글씨로, 불리한 조건이 포함돼 있더군요."

지난 2007년 5월 일성과 신한은행이 실제 계약한 키코 상품의 거래조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일성은 매월 100만 달러를 환율 929원에 팔기로 은행과 계약했다. 환율이 900~960원 안에서 움직일 경우에 한해서다. 계약기간은 1년 7개월이었고, 환율이 한번이라도 960원을 넘어서게 되면 일성은 매달 100만 달러의 2배인 200만 달러를 환율 929원에 은행에 팔아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현실이 됐다. 일성은 환율이 오른 달러를 더 많이, 더 비싸게 은행에 팔면서 큰 손실을 봐야 했다. 결국 불어나는 돈을 막지 못한 일성도 기업회생에 들어갔고, 최근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장 전 회장은 "(키코에 대한) 재조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기업들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있으니 이 중에서도 아직 (사업을) 할 수 있는 기업들에게 빨리 자금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팔지 말아야 하는 금융상품을 팔 수 있도록 방치한 금융당국과, 이후에도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도 있다는 게 장 전 회장을 비롯한 피해기업 관계자들 생각이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