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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경 살았던 철학자 에피메니데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 문제는 에피메니데스도 크레타인이었다는 것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은 말한다. "모든 자기계발서는 쓰레기다." 다들 알겠지만, <신경 끄기의 기술>은 자기계발서다. 그것도 아주 전형적인.

자기계발서를 인생이나 성공에 관한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모든 자기계발서는 쓰레기다. 사이비 종교 교주가 아닌 다음에야 자신이 말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정도의 바보가 과연 세상에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를 인생 선배의 충고라고 생각한다면, 자기계발서를 깎아내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나라면 인생 선배의 충고는 고맙게 듣고 배울 점을 찾겠다. 노자도, 스티븐 코비도,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도 모두 귀중한 교훈을 주는 인생 선배들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 표지
 <신경 끄기의 기술> 표지
ⓒ 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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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기계발서는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고치는 법을 가르친다. 잘못은 실패라는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나타난다. 실패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많은 자기계발서가 다루는 인기 주제다. <신경 끄기의 기술> 역시 이 주제에 관한 자기계발서다.

'결정적인 '정답'을 구할 게 아니라, 오늘 틀린 점을 조금 깎아내 내일은 조금 덜 틀리고자 해야 한다.' (141쪽)

실패야말로 인생의 스승이다. 이 책에도 거듭 인용되고 있는 마이클 조던의 말이다.

"난 살아오면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170쪽)

이 책의 최대 강점은 역시 재미있는 문체다. 과장을 좀 하자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생각나게 한다. 요즘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나 <퍼니셔>에 자주 나오는 표현 '똥폭풍(shitstorm)'을 활자 형태로 본 것은 이 책에서가 처음이다(나는 2013년까지 캐나다에서 살면서 이 단어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제목 자체도 "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uck"이다. 'F-단어'도 독특하지만 그냥 기술도 아니고 '미묘한 기술'이라니.

여친의 이별 통보를 받고 '253회 복부 강타'를 당한 것 같았다느니, 기분이 안 좋을 때 SNS를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 '350장이 융단폭격을 가한다' 따위의 표현은 저자의 재담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고도로 명쾌하고 직선적인 주제다. 제목을 보면 세상만사에 대해 신경을 꺼야 할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신경 쓸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는 것이 주제다.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정말 중요한 가치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가치와 나쁜 가치는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좋은 가치는 1) 현실에 바탕을 두고 2) 사회에 이로우며 3) 직접 통제할 수 있다.
나쁜 가치는 1) 미신적이고 2) 사회에 해로우며 3) 직접 통제할 수 없다. (109쪽)


우리 할아버지 세대의 사람들은 기분이 더러워 봤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냥 툴툴거리면서 일터로 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르다.

'5분만 기분이 안 좋아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 350장이 융단 폭격을 가한다. 그러니 내 인생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바로 이런 게 문제다. 우리는 기분이 나빠서 기분이 나빠진다. 죄책감을 느껴서 죄책감을 느낀다. 화가 나서 화를 낸다. 불안해서 불안해진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그래서 우리에겐 신경 끄기가 필수다.' (24쪽)

남과 비교하는 것이 불행의 씨앗이라는 것을 지적한 책은 아마도 이미 37만권 정도는 나와 있을 것이다. 남과의 비교를 통한 우월성의 추구는 나쁜 가치다. 데이브 머스테인은 메탈리카에서 쫓겨난 이후에 열심히 노력해서 메가데스라는 초일류 헤비메탈 밴드를 만드는 대성공을 이루었지만, 평생 메탈리카와 자신의 성공을 비교하면서 불행했다.

남보다 우위에 서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통제 밖의 일이다. 데이브 머스테인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메가데스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메탈리카가 메가데스보다 더 사랑받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저자는 추구해야 할 좋은 가치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책임감,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 거절, 그리고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포용하는 것이다.

YOLO. 요즘 심하게 오남용되고 있는 문구지만, 틀림없는 진리다. 삶은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자세로 산다면,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YOLO. 요즘 심하게 오남용되고 있는 문구지만, 틀림없는 진리다. 삶은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자세로 산다면,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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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의 삼촌이 죽기 직전에 남긴 말,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명언을 비틀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큰 책임에는 큰 힘이 따른다." 살다 보면, 내 잘못의 결과가 아님에도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어느 날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문 앞에 아기 바구니가 놓여있다면 그 아기의 운명은 당신의 책임이다.

잘못의 소재는 둘째치고, 우선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은 스티븐 코비의 제1 원칙, '주도적이 돼라'를 비롯해서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반복되고 있는 주제다. 마크 맨슨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 수많은 자기계발서에 한 권을 더하고 있다. 근거 없는 자신만의 믿음을 내려놓고, 실패를 받아들이고, 거절하는 용기를 내는 것 역시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다루고 있는 주제이며, 이 책이 특별하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죽음의 숙명을 받아들이라는 충고는 자기계발서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주제다. 자기 존재의 유한성을 포용하게 되면, 덧없고 피상적인 가치가 자신의 유한한 삶에서 얼마나 쓸모없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따라서 비본질적인 것에 신경을 쓰는 허세의 삶에서 벗어나 정말 중요한 가치에 신경 쓰며 살아갈 결심을 하는 것이다.

살 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상상해 보자. 회사에서 출세해야겠다든가 남들에게 더 잘 보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남은 시간을 충실히 살게 하는 강력한 동기부여는 자신의 유한성을 깨달을 때 온다. 저자는 친구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필멸성을 직면하고 사는 방식을 바꾸었다고 고백한다.

'그 이후 난 오늘을 즐기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지며, 남 신경 쓰지 않고 내 꿈을 좇게 되었다.' (230쪽)

이 책은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신경 끄라는 내용을 담은 전반부, 그리고 살면서 추구해야 할 훌륭한 가치 다섯 개를 소개하는 후반부로 되어있다. 중요한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은 스티븐 코비를 위시해서 수많은 라이프 코치들이 역설해온 것이다.

이 주제를 다룬 책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시작하여, <원씽>, <나는 4시간만 일한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등 수도 없이 많다. 저 모든 책들이 <신경 끄기의 기술>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설득력도 뛰어나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디스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책은 가볍게 읽으면서 삶의 중요한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기에 정말 좋은 책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열일곱 살의 홀든 콜필드가 이십 년쯤 더 살다가 쓴 책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다. 같이 술먹던 친구가 취한 목소리로 갑자기 삶의 진실을 말해주겠다고 하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술취한 목소리라서 그렇지, 다 맞는 말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의 꼭대기에 올라 있는 현실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삶에 대한 피로감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한 방에 재미있게 끝까지 읽을 수 있으니,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이 책을 골랐다면 이번 주말에 단숨에 독파하기를 권한다.


신경 끄기의 기술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갤리온(2017)


태그:#마크 맨슨, #신경 끄기의 기술, #자기계발서, #좋은 가치, #나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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