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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한 대한민국의 남성들에게 가장 초라하게 느꼈던 시절이 언제였냐는 질문을 하면 이등병 시절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무리 튼튼하고 많이 배운 사람도 이등병 계급장을 다는 순간 유약하고 어딘지 모자란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다 군대라는 경직한 조직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거기에 층층시하 버티고 있는 선임병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다보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청년은 이등병이 되는 순간 병아리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언제부터인가 부대에 이등병이 오면 노란 견장을 달아주었다. 햇병아리처럼 나약하니 잘 보호하자는 의미였다. 병아리를 떠올리며 보호본능을 일깨우는 선임병도 있지만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만큼 가볍다고 생각하는 고참병도 있었다.

이등병은 거의 주눅 든 상태에서 생활한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한 장면.
 이등병은 거의 주눅 든 상태에서 생활한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한 장면.

이등병은 계급장도 가볍다. 달랑 '작대기 하나'다. 군장점 주인이 가장 싫어하는 계급장이다. 전투복에 계급장 오바로크(박음질)하다가 손가락을 다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대기가 하나하나 쌓이면 계급장의 너비와 함께 그의 무게와 존재감도 늘어간다.

자존심과 자신감으로 충만한 청년도 이등병이 되는 순간 존재감이 줄어든다. 이등병 시절 혼자 있는 시간에 마주친 상관에게 "여기 사람 없나?"라는 질문같지 않은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쳇말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저울에 올라선 그들의 무게가 영혼의 중량만큼이나 될는지.

이등병들은 군의 선배인 어른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 더욱 좌절한다.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야. 내가 이등병시절에 비하면 요즘 이등병들이야 놀고먹는 거지. 내무반에 침대가 있고 이틀이 멀다않고 고기 반찬이 나오면 호텔 생활이나 마찬가지 아냐?" 스스로 꼰대를 자처하는 말이다.

30년 이상 군 생활을 한 나는 30년 전 이등병들이 겪었던 어려움과 고달픔을 30년 후 이등병들도 똑같이 느낀다는 것을 경험했다. 어려움과 고달픔이 어찌 의식주 문제에서만 비롯되겠는가. 급격한 환경의 변화와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몸과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는 것이다.

이등병이 당당해지려면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등병들부터 스스로 천부적인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간부들과 선임병들은 이등병의 인권을 지켜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귀하게 자란 아이가 귀하게 행동한다"는 말을 상기하여 이등병부터 귀하게 대해야 한다. 이등병은 군대의 시작이요 군대의 미래다. 장병들이 서로를 귀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귀하게 행동하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군대가 진정한 강군이 아니겠는가?

지난 7일 문제인 대통령이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의 특별보고를 받았다. 2013년 이후 5년 9개월 만의 일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인권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에 군 인권보호를 위한 조직 신설도 주문했다. 군 인권보호는 이등병을 보호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찾았으면 한다.

군대에만 이등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사회 곳곳에 이등병이 있다. 이등병을 다독여야 할 소대장도 임관 후 초임지에 배치되면 이등병과 마찬가지다. 어려운 취업관문을 뚫고 입사에 성공한 유능한 신입사원 또한 이등병이다. 수십 동안 베테랑 소리를 들으며 직장생활을 했던 회사원이나 공직자도 퇴직을 하고 재취업을 하는 순간 이등병이 된다.

군대에서 대령 계급까지 달았던 나도 사회에 나와서 이등병의 설움을 겪었다. 전역 후 취업은 복학시기를 맞춰 입대하는 것 만큼이나 힘들었다. 어렵사리 취업을 했다. 수습기간동안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는 내 모습은 부대 전입 후 보직 없이 내무반에서 대기하는 이등병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군의 이등병들이 군대 문화에 물들기가 힘들었다면 나는 군대 물을 빼는데 애를 먹었다. 군의 이등병들이 거수경례와 '다·나·까' 말투가 익숙하지 않아 고생했다면 나는 거수경례 습관과'다·나·까' 말투를 버리기는 것이 더 어려웠다.     

이들 모두 이등병이 되면서 밀란쿤데라의 명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생각한다. 동시에 이들은 세상의 온갖 시름과 책임을 짊어진 것처럼 무거움에 힘들어 하기도 한다. 그 무게를 못 이겨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들이 안고 있는 희망의 무게 또한 선배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겁다. 더 이상 밑으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이등병의 위안이고 희망이다. 가볍기만 한 이등병 시절이 일회적이라는 사실 또한 힘겨움을 떠받치는 힘이 된다. 이등병의 삶이 계속된다면 누구라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가 생각난다. 노래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로 끝난다. 우리사회의 모든 이등병들이 이렇게 꿈과 희망을 노래했으면 좋겠다. 이등병이 부르는 꿈과 희망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이등병들이 당당해져야 한다. 이등병이 당당해진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당당해지는 것이다. 움추러든 그들이 어깨를 펴고 잠재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직의 리더와 선배들은 이들이 당당해질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야한다. 군대의 이등병이 당당해지면 강군이 될 것이고 우리사회 모든 이등병이 당당해질 때 우리 대한민국은 강국이 될 것이다.    


태그:#이등병, #고참병, #군대, #당당함, #주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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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동안 입었던 군복을 벗고 사회 초년병으로 살고 있음. 군대에서 경험하지 못한 인권문제, 봉사활동, 인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제 2의 인생을 가꾸어 가는 중. 다문화 사랑방을 운영하는 인생 3모작을 꿈꾸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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