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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이 연말에 보내는 카드. '산타'와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은 익숙한 이미지들이 들어 있지만, 크리스마스 카드가 아니다.
 러시아인들이 연말에 보내는 카드. '산타'와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은 익숙한 이미지들이 들어 있지만, 크리스마스 카드가 아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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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진을 보자. 사진 속 물건은 무엇일까?
힌트 하나, 이것은 크리스마스 카드가 아니다.

믿기지 않을 것이다. 카드에는 너무나 익숙한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선물. 그런데도 크리스마스 카드가 아니라고?

그렇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아니다. 여기서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멀쩡히 파이프를 그려놓고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은 유명한 그림 말이다.

이 초현실주의 작가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 수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다.
이 파이프 그림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 물감 칠해진 캔버스는 파이프가 아니다.
'이것'이라는 말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 글귀는 파이프가 아니다.
….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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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그림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이미지와 실제 대상, 말과 사물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것은 크리스마스카드가 아니'라는 주장은 전혀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앞의 사진은 크리스마스 카드가 아니라 연하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러시아 사람들은 이 카드를 신년 축하용으로 보낸단 말인가? 그렇다. 연하장을 신년에 보내는 게 이상할 턱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카드에는 분명히 크리스마스트리와 크리스마스 선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답변은 이렇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니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다'. 장식된 나무는 '신년 트리(Новогодняя ёлка)'이고, 예쁘게 포장된 선물은 새해 선물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러시아의 크리스마스

조명으로 장식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네브스키 대로.
 조명으로 장식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네브스키 대로.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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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러시아에도 크리스마스가 있을까? 있다. 러시아 인구의 절발이 기독교도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전체 인구의 40% 이상이 러시아 정교를 믿으며, 다수가 매우 독실한 신자들이다.

한국에서 가끔 오해되기도 하지만, '기독교(Christianity)'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과 따르는 신앙을 지칭하는 포괄적 용어다. 가톨릭, 러시아 정교, 개신교(프로테스탄트)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이들이 성탄을 기념하는 게 놀랄 일이 아니지만,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좀 독특하다. 우선 날짜부터 달라서, 12월 25일이 아니라 1월 7일이다. 율리우스력에 따라 성탄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양력 대신 음력으로 설을 지내는 것과 비슷하다.

러시아는 혁명 이후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서면서 널리 쓰이는 그레고리력을 채택했지만, 러시아 정교는 여전히 율리우스력을 쓴다. 볼셰비키 혁명을 '10월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역시 율리우스력에 따른 것이다. 이것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11월 혁명'이 된다.

러시아의 성탄은 날짜만 다른 게 아니라 기념하는 방식도 다르다. 많은 나라에서처럼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날이 아니다.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차분하고 종교적인 날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인들이 가장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날은 언제일까? '새해기념일(Новый год)'이다. 우선 노는 기간부터 화끈하다. 연말부터 연초까지 열흘을 내리 쉬기 때문이다.

이 연휴 기간에 학교, 관공서, 회사는 모두 문을 닫는다. 직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많이 쉬는 사람들은 무려 두 주 가까이 직장에 나가지 않는다. 한국인들을 열광케 한 '2017년 기적의 연휴'를 러시아인들은 매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를 빼놓았다. 바로 '산타'다. 앞의 러시아의 연하장에는 긴 수염에 털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그려져 있었다. 러시아의 산타는 언제 선물을 배달할까? 1월 7일이 성탄절이니, 1월 6일 밤이나 1월 7일 새벽에 일할까?

'러시아 산타'는 푸른색 옷을 입는다?

러시아 뉴스의 한 장면. 한국의 언론에도 이 행사가 보도되었는데, '러시아 신부와 핀란드 산타의 만남'으로 소개되었다.
 러시아 뉴스의 한 장면. 한국의 언론에도 이 행사가 보도되었는데, '러시아 신부와 핀란드 산타의 만남'으로 소개되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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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며칠 전, 한국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수염난 노인 두 명이 악수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아래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건너오는 핀란드 산타클로스와 러시아의 신부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설명대로라면, 오른쪽은 핀란드에서 러시아로 넘어온 산타이고, 왼쪽은 그를 환영하는 러시아의 신부다. 수수한 털코트를 걸친 산타와 달리, 왼쪽의 할아버지는 금실과 은실로 수놓은 현란한 문양의 의상을 차려입었다. 게다가 머리에는 금관처럼 보이는 모자를 쓰고 있고, 왼손에는 긴 지팡이를 들고 있다.

왼쪽에 선 노인의 차림을 보면 정말 위세 높은 종교 지도자처럼 보인다. 다만 의상이 매우 근엄해서 '신부'가 아니라 '교황'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좌측에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신부의 신부'?

화려한 옷을 입은 이는 '러시아 신부'가 아니라 '러시아 산타'다. 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그를 '산타클로스'라 부르지 않고, '뎨드 마로스(Дед Мороз)'라 부른다. '서리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그가 입은 옷의 문양은 한기를 따라 피어나는 서릿발을 형상화한 것이다.

옆의 하늘색 옷을 입은 여성은 손녀인 '눈아가씨(스녜구라치카)'다. 그는 할아버지를 도와서 함께 선물을 배달한다. 선물을 배달하는 방식도 달라서, 여타의 산타들은 몰래 침실에 들어가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나오지만, 서리 할아버지는 아이가 깨어 있을 때도 선물을 주며, 아이들이 노래 불러주는 것을 좋아한다.

전통적으로 이 할아버지와 손녀의 복장은 푸른 색이다. '서리'와 '눈'이 차가운 색 계열의 옷을 입는 것은 타당한 선택으로 보인다. 붉은 색 일색의 타국 산타 영향으로 서리할아버지도 가끔 빨간 코트를 입지만, 손녀만은 기존의 패션감각을 꿋꿋이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산타 '서리 할아버지(뎨드 마로스)'와 손녀 '눈아가씨(스녜구라치카)'. 이들은 성탄절이아니라 새해에 선물을 배달한다.
 러시아 산타 '서리 할아버지(뎨드 마로스)'와 손녀 '눈아가씨(스녜구라치카)'. 이들은 성탄절이아니라 새해에 선물을 배달한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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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러시아 혁명

러시아가 독특한 성탄과 새해 문화를 갖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혁명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사회주의에서 종교는 '아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종교적 색채가 짙은 크리스마스가 환영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는 마르크스의 말에 대해, '아편의 긍정적인 면도 고려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다. 아편이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듯, 종교도 그런 '순기능'이 있으며, 마르크스도 그 점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잘못된 해석이다. 마르크스의 수사적 표현때문에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종교가 허구적 위안을 제공함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했을 뿐이다. 종교가 주입하는 '환각의 행복'을 철폐해야 현실의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게 마르크스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따라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소비에트가 국가 명절로서의 크리스마스를 폐지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놀라운 일은 1935년에 스탈린이 나서서 '크리스마스 트리'와 '러시아 산타'를 되살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 상징물은 성탄 대신 신년의 기쁨과 결부되기 시작했다.

서리 할아버지와 눈아가씨가 크리스마스 이브 대신 '새해 이브'에 선물을 배달하게 된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반종교 정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과거에도 러시아에서 별 인기를 끌지 못했었고,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 역시 기독교와 별 관련이 없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센나야 광장에 서 있는 '신년 트리(욜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센나야 광장에 서 있는 '신년 트리(욜카).'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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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 다른 삶의 매력

크리스마스트리는 전나무와 소나무 등 겨울에도 낙엽이 지지 않는 침엽수를 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북부 지역의 전통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침엽수를 집 안에 들여와 장식하는 풍습은 예수가 탄생하기 전부터 북구에 존재했었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추운 겨울, 그 '죽음'의 계절에 푸른 나무를 집 안에 들이는 것은 새로운 활기를 가정에 불어넣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북구의 겨울축제 '율(Yule)'의 관습이었덧 탓에, 기독교도들은 오랫동안 '크리스마스 트리'를 '이교행위'로 경계했다. 심지어 미국 개신교도들에게조차 트리는 꽤 오래 금기의 대상이었다.

흥미롭게도, 독일에서 추운 북구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이 관습이 러시아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소나무 등 침엽수가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생명'을 불러오던 행위가 러시아에서는 정 반대의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이제 러시아에서도 트리는 새해 기분을 돋우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장식품이 되었다. 연말이 되면 러시아의 거리, 가게 진열장, 식당, 카페, 가정 집에는 온갖 치장을 한 트리가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이 트리들이 러시아에서 한참 빛을 발할 때 쯤이면, 다른 나라에서는 장식을 벗은 나무들이 집 밖으로 끌려나올 터이다.

'이것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다'라는 명제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못지 않게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당연시 여겨온 전통을 낯선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인해 러시아는 매우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으며, 이 다름은 러시아의 고통과 영광의 이유가 되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분명히 매력적인 나라다.

러시아에서 '서리 할아버지(뎨드 마로스)'와 트리 '욜카'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신년의 상징이다. 사진은 러시아 국립도서관 현관에 게시된 삽화들로, 오른쪽에는 서리 할아버지가 선물을 배달하면서 신년 달력을 들어보이고 있고, 상단에 '신년축하'라고 쓰여 있다. 왼쪽 아래 트리 그림에도 '신년축하'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러시아에서 '서리 할아버지(뎨드 마로스)'와 트리 '욜카'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신년의 상징이다. 사진은 러시아 국립도서관 현관에 게시된 삽화들로, 오른쪽에는 서리 할아버지가 선물을 배달하면서 신년 달력을 들어보이고 있고, 상단에 '신년축하'라고 쓰여 있다. 왼쪽 아래 트리 그림에도 '신년축하'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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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러시아,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 #뎨드 마로스,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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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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