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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63빌딩 한화생명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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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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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공개 채용과 헷갈리게 하려고 여러 장치를 만들었어요. 보험설계사 이런 말은 전혀 안 쓰고, 영업관리자라고 강조했죠. 3개월만 영업하면 지점장 시켜준다고 했습니다. 정규직이 될 거라는 말을 계속 했죠."

9년째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30대 김아무개(가명)씨 말이다. 최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김씨는 지난 2010년 입사 당시 회사가 3개월 뒤 지점장으로 채용한다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3년 뒤 김씨는 지점장이 됐지만 정규직 직원은 되지 못한 채 여전히 개인사업자 형태로 영업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이후 김씨처럼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로 들어와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고작 2명이다. 한화생명은 지금도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보험설계사를 모집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런 행위가 발각되면 노동관련 법률 위반 여부를 판단해 처리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화생명은 지난 2011년에만 해도 '트라이(TRI)사업부(아래 트라이)' 보험설계사 모집 공고에 정규직 전환을 명기했다. 트라이는 은행 방카슈랑스, 홈쇼핑, 인터넷 등 보험을 판매하는 채널 가운데 하나다. 한화생명은 지난 2010년 개인사업자인 보험설계사로 구성된 이 조직을 처음 만들었다.

지난 2011년 말 한화생명(옛 대한생명)이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보험설계사를 모집하고 있다.
 지난 2011년 말 한화생명(옛 대한생명)이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보험설계사를 모집하고 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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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정규직 전환 2명뿐... 지점장 돼도 개인사업자로 일해

김씨는 "정규직처럼 보이려고 트라이 공고를 회사 홈페이지에 올렸었다"며 "면접도 한화생명 본사에서 봤다"고 말했다. 보통 FP(파이낸셜 플래너)라 불리는 보험설계사들은 지점에 와서 바로 일하는 구조인데 트라이의 경우 2차, 3차 면접을 진행하면서 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처럼 구직자들을 속였다는 게 김씨 주장이다.

이렇게 한화생명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이 정규직 전환을 바라보며 영업에 매진했지만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정규직으로 전환된 보험설계사는 2명뿐이다. 올해 1월 기준 트라이 소속 보험설계사는 500여 명이다. 트라이 소속 보험설계사들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또 트라이를 포함해 매월 수 백 명의 보험설계사들이 한화생명과 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한화생명은 여전히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보험설계사를 모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씨는 "3~4년 전부터는 모집 공고를 따로 내지 않고 채용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린 구직자들에게 전화하는 식으로 트라이 설계사를 뽑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 회사 쪽에서 10명 가운데 2~3명은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시스템이라고 소개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화를 받고 트라이에 소속된 보험설계사가 된다 해도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들 가운데 지점장이 되는 경우는 많지만 이마저도 개인사업자 형태일 뿐 4대 보험 적용을 받는 노동자는 아니다.

금감원 "노동 관련 법률 위반 가능성... 구직자 기망 행위 안돼"

앞서 금융감독원은 보험회사들에게 보험설계사 모집 때 '정규 또는 비정규 직원 채용과는 무관하다'는 내용을 눈에 잘 띄는 색으로 기재하라고 감독행정작용으로 지도했다. 양진태 금감원 보험감독국 보험제도팀장은 16일 "지난해 8월 보험회사들에게 그런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면서 "당시 지방노동청에서 '노동관계 법률 (위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협조요청을 해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또 양 팀장은 "실제 이런 행위가 발각됐을 때 노동관련 법률 위반 여부를 담당 부처에서 판단해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법률을 떠나, 취업에 목말라 있는 구직자들을 기망하는 이런 행위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한화생명과 달리 삼성생명은 보험설계사를 지점장으로 영입할 경우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보험설계사 가운데 영업을 탁월하게 잘하는 경우 지점장으로 올 생각이 있느냐고 제의한 후 직원으로 채용한다"면서 "몇 명이 직원으로 전환됐는지는 공개하기 어렵지만 (한화생명의) 2명보다는 많다"고 밝혔다.

한화생명 트라이와 비슷한 영업조직인 삼성생명 SFP에 소속돼 영업을 하는 개인사업자 형태의 보험설계사는 1000명 정도다. 지난해 6월 기준 삼성생명의 지점 수는 모두 630개인데, 이곳 지점장들 가운데 SFP 출신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정규직 전환 대대적 홍보... 차일피일 미루다 3년 뒤 전환

하지만 지난 2010년 한화생명 트라이 1기로 입사한 김씨는 지점장이 됐음에도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 직원으로도 채용되지 못했다. 김씨는 당시 GFP사업부(트라이의 상위부서) 부서장이 직접 3개월 후 지점장 전환을 약속하고, 앞으로 채용 방식을 바꾸겠다고 시사했다고 전했다. 김씨의 말이다.

"(윤아무개 부서장이) '대학 졸업하고 (영업을) 시켜보니 너무 못하더라, 현장 경험을 얻게 해서 지점장 시켜줄 거고, 정규직을 이렇게 뽑을 것이다. 앞으로 영업관리자는 따로 뽑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그 말을 믿었죠. 그게(정규직 전환까지) 3개월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2년이 지나도록 정규직 전환 사례는 없었고, 지점을 늘릴 때마다 트라이 보험설계사가 아닌 정규직 직원들을 지점장으로 데려왔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지난 2012년 당시 몇몇 언론에서 한화생명이 트라이 1기 출신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실제 정규직 전환 사례는 3년 뒤에 나왔다고 한다.

김씨는 "2012년에 보도가 나왔는데 지금은 그때 기사를 찾기 어렵다"면서 "2013년 1월 한 설계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지점장으로 발탁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2015년이 돼서야 그를 정규직으로 채용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한화생명은 올해 1월 추가로 보험설계사 1명을 더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보여주기식'일 뿐 대부분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김씨는 지적했다.

이처럼 한화생명이 보험설계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길 꺼리는 이유는 급여 문제 때문이다. 김씨는 "정규직은 (기본)급여가 있다"며 "똑같은 일을 하는데 보험설계사는 무조건 영업을 잘해야만 월급을 받아갈 수 있고, 정규직 직원은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월급이 나온다"고 말했다. 개인사업자 형태의 보험설계사에게는 기본 급여를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회사에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지 않거나 최대한 미룬다는 얘기다.

한화생명 "정규직 전환을 성공 모델로 제시한 것... 전환된 2명은 특출한 사람"

이에 대해 한화생명 쪽은 정규직 채용과 보험설계사 모집은 별개이며, 트라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례는 이례적인 경우였다고 설명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정규직은 그룹 공채로 뽑는 과정이 따로 있다"며 "이들은 일반직, 사무직으로 근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험설계사를 모집하는) 금융전문가, 영업관리자 코스는 따로 있는데, 이때 비전을 줘야 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이란) 성공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라면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2명은 특출난 사람들이고 나머지 상당수 트라이 보험설계사들이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년층 상대로 사기 벌인 것... 금융당국이 취업사기 제재해야"

또 김씨는 극소수의 트라이 소속 보험설계사가 영업력을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채용되더라도 사원 2년 차로 적용받게 된다고 밝혔다. 더불어 김씨는 당초 회사가 트라이 소속 보험설계사들이 지점장으로 올라갈 경우 최저 월 500만 원은 지급한다고 했지만 이후 별다른 설명 없이 이런 기본 급여를 삭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월 60만원 밖에 받지 못하는 보험설계사 지점장도 많다는 것이다.

더불어 김씨는 한화생명 직원인 지점장이 룸싸롱 비용을 계산하라고 지시하고, 운영비로 청구하라고 압박해 시키는 대로 했지만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화생명 관계자는 "보험설계사 경력에 따라 정규직 전환 때 인정해주는 연차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보험설계사 지점장 기본급 삭감은 금시초문"이라며 "동종 업계 최고 수준으로 수당을 지급한다"고 덧붙였다. 또 룸싸롱 비용 전가에 대해 이 관계자는 "그런 일이 실제 있었다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보험설계사를 모집하는 것은) 청년층,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벌인 것"면서 "이런 적폐가 근절되려면 금융당국이 제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태그:#한화생명, #보험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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