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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저는 문재인 정부를 뽑을 때 드디어 한국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겠구나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똑같습니다. 어느 하나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국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경제적 허탈감은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여전히 겨울되면 보일러비 아끼려고 전기장판 틀어야 되고 여름되면 에어컨비 아까워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가상화폐 규제 반대를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22만명(19일 기준)을 넘어섰다. 작년 12월 28일 처음 올라온 청원서에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아플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이전 정권 비교해 나아진 것 하나 없는 생활, 난방비와 전기요금을 걱정해야 하는 국민들에게 정부는 단 한번이라고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틀린 말이 없다. 정권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살기 어렵다는 아우성은 여전하다. 삼성을 위시한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매출을 거두어도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소식도 없다. 가계 부채는 가구당 평균 7천만원을 넘어섰고 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되었다는 통계도 있다.그래서 바꿔봐야 달라진 게 없다는 푸념도 나오는 거고, 정부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줬냐는 원망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동의되는 것은 여기까지다. 가상화폐로 내 집을 산다는 것은 이룰 수도 없는 꿈이지만 이뤄져서도 안 되는 희망이다. 투자를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개인이 감당할 몫이라고도 주장하지만 그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사회적, 국가적 재앙이 될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또한 논쟁거리다. 그래서 가상화폐를 둘러싼 정부규제가 국민의 꿈을 뺏는다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동의되는 것과 동의할 수 없는 것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가상화폐 관련주들이 11일 동반 급락했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에스트레뉴빌딩에 있는 가상화폐 오프라인 거래소 코인원블록스의 대형 전광판에 표시된 동반 급락한 비트코인 시세표를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 '어디까지 내려가나...'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가상화폐 관련주들이 11일 동반 급락했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에스트레뉴빌딩에 있는 가상화폐 오프라인 거래소 코인원블록스의 대형 전광판에 표시된 동반 급락한 비트코인 시세표를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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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가상화폐 문제의 논쟁이 확대일로에 있다. 화폐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문제부터 중앙정부와 은행의 역할, 기술의 진보와 4차혁명, 투자냐 투기냐 엇갈린 주장들까지 제각각 목소리를 내다보니 혼란스럽다. 여기에 생소한 블록체인, 해쉬함수 등 용어들까지 나열되다보니 가상화폐 시장의 운영원리조차 오롯이 이해하기조차 힘든 게 사실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가상화폐 광풍에 휩쓸리는 모양새다. 컴퓨터 상가마다 비트코인 채굴에 쓰인다는 고가의 그래픽카드가 동나, 겨울방학 특수를 기대하던 PC방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대학생들이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가상화폐를 구매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노인들이 노후 자금을 투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확인은 할 수 없지만 누구는 수년 전 게임머니로 받은 가상화폐가 지금은 몇 억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사회 전체가 들썩이는 모습은 뉴타운 건설 공약에 모두가 부자가 될 것 같았던 그 때 광풍과 비슷하다.

사회적 갈등도 우려스럽다. 폭락한 가상화폐 때문에 살림살이를 부순 사진을 SNS에 올리며 정부 규제에 화풀이를 하는가 하면, 문재인 정부 또한 탄핵시켜야 할 대상이라는 과한 주장도 있다. 규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양분된 여론도 접점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이런데도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선량한 투자자를 도박꾼으로 모는 오만한 정부라고 날을 세우고, 또 한쪽에서는 정부 내 작전세력이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가상화폐 가격을 정부가 보도자료 엠바고 하나로 조작했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멀쩡하던 시장을 법무부와 청와대가 들쑤셔놔 오히려 급등락하는 롤러코스터 도박장으로 만들었다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도 아무 말 대잔치처럼 어떤 해결 의지도 찾아내기 어렵다.

물론 정부 대응도 후한 점수를 주기도 어렵다. 비트코인 채굴과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시작된 것이 6개월이 넘어섰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규제를 할 것인가, 4차 산업으로 육성을 할 것인가도 입장이 명확히 서 있지 않았다. 투기 열풍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지난 11일에야 법무부장관이 비로소 '투기나 도박과 비슷한 가상화폐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거래소폐쇄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반발이 거세지자 며칠 만에 폐쇄안 잠정보류, 거래실명제 도입으로 후퇴안을 내놓았다. 또 며칠 후 김동연 부총리가 거래소 폐쇄안은 여전히 살아있는 옵션이라며 혼란을 키웠다.

정부의 몇 차례 대책은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았고, 메시지도 명확치 않았다. 중국의 채굴 금지, 각국의 규제로 가상화폐 등락폭이 커지자 투자의 위험성이 곳곳에서 제기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오히려 열풍이 거세졌다. 가상화폐 시장의 종주국이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비트코인 가격이 1000달러에서 400달러로 급락했던 2013년 사태가 재현되면 가장 큰 피해 국가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대책이 투기의 판을 키워 왔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이유다.

온 국민이 '가즈아' 외치는 건 곤란하다  

비트코인을 두고 청와대와 법무부 사이의 엇박자가 발생했다.
 비트코인을 두고 청와대와 법무부 사이의 엇박자가 발생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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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의 순기능 전부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중앙정부와 중앙은행의 잘못된 통화정책의 대안으로 가상화폐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가상화폐 운영을 지탱하는 보안체계가 4차혁명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리라는 예견도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도 몇백만원의 등락을 거듭하는 가상화폐를 기존 화폐의 대안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가치의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화폐는 유통이나 지불 수단보다 투기의 수단에 가깝다. 가상화폐 광풍에서 규제를 택해야 할 이유는 이것이다. 투기가 거품을 만들어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사태를 손 놓고 방치할 정부는 없다. 

가상화폐가 계속 오름세만 지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동이나 담보 가치로 지탱되지 않는 거품은 언젠가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 정도가 적정한지 기준은 사실 없다. 얼마나 오를지도 예측하기 어렵지만 하루아침에 휴지조작이 되어도 이상할 것 없다는 이야기다. 손해도 개인의 몫이라지만, 그런 개인이 많아지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고 더 커지면 국가적 재앙이 되는 것이다.

또, 만의 하나 가상화폐에 투자해 일확천금을 거머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해도 박수칠 일만은 아니다. 노동의 가치는 하락하고, 위화감은 사회적 유대감을 허물 것이다. 단 한 번의 투자로 수천만원을 벌어드릴 수 있는 세상에서 땀 흘려 일한다는 건 세상물정 모른다는 비웃음을 사기에 딱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광풍이 사회 전체를 휩쓸고 있다. 정부의 대책은 늦었고 지혜롭지 못했다. 그나마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지난 정부 대책에 비해 큰 틀에서 투기로 규정하고 규제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약발이 먹혀들지 않는다. 거래소 폐쇄만으로도 광풍이 멈춰질지 의문이다. 세계가 같이 움직이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와 규제의 보조를 맞추는 일, 우리나라에서 유독 광풍이 된 원인을 찾아내는 일, 모두가 필요해 보인다. 또, 장기적으로는 일해서 벌어 막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가상화폐 광풍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정부의 선택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늦었지만 발빠른 대책이 필요한 때이다.

'가즈아!'는 정치인 한 사람의 외침으로 족하다. 온 국민들이 이렇게 외치다간 가정경제를 넘어서 국가경제가 '떡락'되기 십상이다. 정부의 빠른 대책, 바른 대책을 주문한다.


태그:#가상화폐, #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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