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던 알파인 스키 대표팀 일부 선수가 대한스키협회의 어이없는 행정 실수로 평창행이 좌절돼 논란이다. 본래 9명이 출전할 것으로 예상돼 결단식에까지 참석한 알파인 선수들은 단 4명만이 평창 무대에 서게 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은 정선과 용평 두 곳이다. 정선에선 활강, 슈퍼대회전, 복합 경기가 진행되고 용평에선 대회전, 회전, 혼성 단체전이 열릴 예정이다. 이 같이 계획된 데는 신설 경기장인 정선의 환경 문제 때문이다. 평창은 대회 유치 직후부터 경기장 건설로 가리왕산의 산림환경이 파괴된다고 주장하는 환경단체들과 심한 마찰을 겪었다. 결국 정선 경기장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남녀 코스를 통합해 건설됐고 코스 길이가 다소 짧아졌다.
자력으로 출전권을 땄음에도 평창 출전 불가 통보를 받은 경성현 선수는 28일 <국민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리는 스피드 종목(슈퍼대회전·활강)에 나설 선수가 필요해서 저를 안 뽑았다고 하는데,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실력 순으로 선수를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이번 일이 정선 경기장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스키협회측은 <뉴시스>와 한 인터뷰에서 "정선스키장을 올림픽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서"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협회는 경성현 대신 슈퍼대회전과 복합 종목까지 뛸 수 있는 김동우를 선발했다. 그러나 두 선수의 기량 차나 세계랭킹을 살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다. 우선 경성현의 세계랭킹은 국제스키연맹(FIS) 올림픽 포인트 기준 대회전 세계랭킹이 181위로 올림픽에 나서게 된 김동우(활강 412위)보다 훨씬 높다. 최근 국제대회 기록에서도 경성현이 김동우보다 앞섰다. 지난 12일 FIS 극동컵 슈퍼대회전에서 경성현은 1분00초52로 7위에 올랐다. 김동우는 1분01초52로 23위였다. 두 선수의 차이가 분명하다.
▲ 스키 국가대표 경성현 선수의 페이스북 메시지. 대한스키협회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 경성현 페이스북 캡쳐
경성현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김동우와) 내 세계랭킹 차이는 무려 300위 이상이다. 그 선수가 잘못한 점은 1도 없다. 높으신 분들 결정으로 뽑힌 선수니까"라며 "그 선수에게 져본 적도 없고, 경쟁자라고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을 만큼 실력차가 확연하다. 그렇다고 그 선수(김동우)가 스피드 종목을 나보다 잘하는 것 같지도 않다"며 스키협회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경성현은 지난 29일 페이스북에 추가 글을 올리며 격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직접 국제스키연맹 사이트의 올림픽 선발기준을 캡처해 올리며, "협회는 스피드팀이 꼭 나가야한다고 한다. 이유는 그동안에 투자와 향후 스키장 유지가 목적이란다"라고 밝혔다. 이어 "협회가 룰을 잘 숙지하고 있었으면 애초에 단복을 지급받고 500위 안에 든 선수들은 나갈 수 있었다는 건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억울하고 이해할수가 없다"고 비난했다.
또한 그는 협회의 최대인원 발언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경성현은 "애초에 4명이 최대인원이라고 알고 있었다는 협회 입장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왜 애초에 선수 9명에게 단복이 지급됐으며 최종 엔트리 접수날인 22~24일에 왜 9명 엔트리를 넣었던 건가. 이는 애초에 협회도 4명이 아닌 9명이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가쿼터 신청을 하지 않아 모든 일이 꼬여 버린 거라고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고 사태를 전했다.
안방 대회 앞두고 선수-연맹 간 소송... 체육계의 민낯 경성현은 29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 대한스키협회를 상대로 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냈다. 경성현은 측은 '24일 평창 올림픽 대표를 선발했던 기술위원회가 위원장도 없이 진행됐으며, 위원장 대행 선정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올림픽 대표 선발을 거수로 하는 등 절차상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제출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한 차례 있었다. 2016년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은 리우 하계올림픽 출전과 관련해 대한체육회가 국제스포츠중재판소(CAS)의 중재 잠정처분을 따라야 한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당시 박태환은 2014년 금지약물 투여로 국제수영연맹(FINA)로부터 18개월 선수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후 징계가 해제됐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도핑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후 3년이 지나지 않으며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을 이유로 박태환의 리우행을 막았다. 결국 박태환은 법원 측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인용해 결국 박태환은 극적으로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다.
대한 체육회를 비롯해 국내 여러 스포츠 협회와 연맹은 그동안 때를 가리지 않고 선수와 마찰을 빚어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도 안방에서 열리는 첫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가 심석희를 폭행한 것을 시작해, 빙상연맹의 착오로 노선영의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고, 이번 알파인스키팀까지...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체육계의 '부실한 행정'은 여전했다. 그리고 홈에서 최고 성적을 다짐했던 한 청년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 되고 말았다. 홈에서 열리는 대회를 앞두고 선수와 연맹이 싸우는 기이한 광경. 이것이 한국 동계스포츠의 현 주소다. 금메달 8개-종합순위 4위는 너무나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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