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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소확행(小確幸)', 일상에서 찾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당신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나만의 소확행'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커피는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위안받고 싶을 때, 외롭지 않은 혼자이고 싶을 때, 사소한 즐거움이 고플 때 언제나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되어 준다
 커피는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위안받고 싶을 때, 외롭지 않은 혼자이고 싶을 때, 사소한 즐거움이 고플 때 언제나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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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 : 뜨거운 커피, 강남 교보문고 가서 어슬렁거리기, 우연히 잡은 좋은 책, 유머, 따뜻한 악수 혹은 허그."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 내 소개란에 썼던 말이다. 그 후로도 내 소개를 해야 할 때, 이 목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몇 가지가 들고 나긴 했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것이 바로 커피다. 왜냐하면 커피는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위안받고 싶을 때, 외롭지 않은 혼자이고 싶을 때, 사소한 즐거움이 고플 때 언제나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되어 주기 때문에.

작년 가을이었다. 주말도 없이 일하고 평일에도 야근을 거듭하는 강행군으로 몸도 마음도 곯아있던 그때, 몇 개월 만에 딱 하루 휴가가 주어졌다. 금쪽같은 하루를 어떻게 쓸지 얼마나 야무지게 궁리를 했던지. 다 답 같은 사지선다형 문제 앞에서 고민하는 학생처럼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난 좋아하는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별보기 운동 예찬론자처럼 깜깜할 때만 다니느라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깜깜하거나 칙칙한 흑백 TV같았는데, 세상에! 그날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엄청나게 좋은 화질을 자랑하는 총천연색 OLED TV 화면 같았다.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이렇게 예쁜 나를 이제야 보러 오는 거니?'하면서 나에게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내 몸 곳곳에 풍경을 다 채워놓고 싶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천천히 응시했다. 그때였다. 공원 스피커에서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 아닌가. 커피와 단풍과 음악, 그리고 쓰다듬는 듯한 바람... 모든 게 정지되어서 멈추었으면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와이안 코나 커피처럼 달콤한 시간

얼마 전, 어슬렁거리며 집 근처 커피전문점에 갔다. 그때 시간이 9시 30분. 출퇴근 하는 직장인들이 소나기처럼 지나가고 가게 안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내 앞에 60대쯤으로 보이는 부인이 주문을 하고 있었다. 금세 내 차례가 되겠거니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감감무소식. 부인의 주문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슬쩍 훔쳐봤다. 스마트폰으로 커피전문점 회원가입을 하려다가 안 되었는지 중년 부인은 이것저것 물었고, 이십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부인은 잘 이해가 안 되었는지 급기야 자신의 핸드폰을 아르바이트생에게 내민다. 직접 해달라는 눈치였다.

이 정도 되면 좀 짜증날 만도 하건만 이 청년,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친절하게 직접 해 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뒤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데 뭐하는 거야?'하면서 욱 했을 수도 있는데, 그 순간에는 달랐다. 어쩐지 그 부인의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고,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청년의 친절한 태도에 녹아버려서 한없이 느긋해져버렸다.

아니,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이 하와이안 코나 커피처럼 달콤하게만 느껴졌다. 커피향 가득한 곳에서 별 바쁜 일도 없는데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팽팽하게 조여진 현이 풀어지는 느낌. 딱 그랬다.

커피는 나에게 음료나 각성제라는 의미 너머의 존재다. 언제부터였는지 도무지 떨어질 수 없는 연인 관계가 되어 버렸다. 보통 하루에 마시는 커피의 양은 종류 불문하고 4~5잔 정도.

그래서 난 일찌감치 스스로 '된장녀'임을 커밍아웃했다. 직접 갈아서 내려 마시기도 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커피 전문점에 들러서 글을 쓰거나 멍 때리는 시간을 꼭 갖는다.

이렇게 말하면 '커피에 돈을 그렇게 쓰다니!'하면서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할 말은 있다. 난 소위 말해 명품 가방 한 번 산 적이 없다. 가장 귀한 가방이라고는 후배가 베네치아에서 선물로 사온 가죽 핸드백 하나뿐이다. 목걸이나 반지를 한 지도 오래 되었고, 수공예 귀걸이와 팔찌 몇 개가 액세서리의 전부다.

고가의 명품이나 액세서리, 옷을 살 형편도 안 되지만 다행히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없는 채로 사는 게 불편하다거나 꿇리지 않는다. 대신 내가 정말 포기할 수 없는 건, 딱 하나. 바로 커피다. 커피만큼은 기분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유행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아끼지 않고 투자한다.

돈이 얼마나 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게 별 것일까. 아마도 작은 행복들이 빛나는 사소한 순간들이 아닐까.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게 별 것일까. 아마도 작은 행복들이 빛나는 사소한 순간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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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좋아하는 커피가 있는 건 아니고 아무거나 다 좋은 잡식성 취향이다. 좀 늦장을 부려도 되는 아침에는 콜롬비아, 브라질,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원두를 섞은 문 블렌드를 갈아서 내려 마신다. 아침 일찍 지방 출장을 가야 하는 날에는 역이나 터미널 근처의 커피숍에 꼭 들러서 샷 추가를 한 쓴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첫 모금이 목구멍을 넘어갈 땐 "크아~"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온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된다.

일하다가 막혀서 당이 당길 때는 카페 모카나 마키아토 당첨. 이 외에도 벚꽃 피는 시즌, 한 여름 시즌, 크리스마스 시즌에 출시되는 커피 전문점들의 커피 신상들은 내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든다.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에 들어갔겠다 싶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찾아 마시며, 아무도 묻지 않은 품평을 혼자 열심히도 한다. 그게 그렇게 재밌고 즐겁다. 나만의 시즌 맞이 행사랄까.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혼자 해외여행을 갔을 때이다. 여행을 가기 전에 난 그 지역에서 유명한 카페를 검색해서 꼭 찾아가 마셔본다.

4년 전 오스트리아 자허 카페에서 자허 토르테(케이크)와 함께 마신 'vienna melange'라 불리는 비엔나 커피, 2년 전 교토 스마트 커피에서 프렌치토스트와 함께 마셨던 로스팅한 진한 커피의 맛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혼자 다니다 지쳐서 터덜터덜 들어간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또 어떤가. 고단함과 외로움을 풀어주는 위안의 맛이다.

이렇게 커피 한 잔이 좋은 추억으로 남으면서 두고두고 행복하게 해주니 어찌 명품에 비할쏘냐. 그래서 나한테 돈이 얼마나 있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자신이 있다.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돈 걱정 하지 않고 마실 수 있을 만큼이면 돼."

예전에 드라마 <애인있어요>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여주인공 김현주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난 앞으로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만을 위해서 살 거야."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게 별 것일까. 아마도 작은 행복들이 빛나는 사소한 순간들이 아닐까. 좋아하는 단골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 혹은 커피를 마시며 마주한 행복한 느낌의 순간 순간들 같은 것.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가장 중요한 재산이다. 때때로 연료처럼 타오르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살아갈 힘을 주니까. 나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 주는 커피 덕분에 난 부자가 되었다. 이 글도 좋아하는 카페에서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쓰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두둑하게 행복하다.

"사소한 것이 운명이에요. 별 것 아닌 이미지를 쌓아두면, 그 안에서 주제는 자연히 흘러나와요. 나선 안에 직선이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 <무한화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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