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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소확행(小確幸)', 일상에서 찾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당신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나만의 소확행'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나이 50줄에 들어서면서 산다는 것이 참 엄숙하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꼈다. 세파에 시달리며 50여 년을 살다 보니 인생이란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눈물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안 겪었으면 좋았을 깊고 짙은 슬픔도 겪어야 했다. 누군가 말하기를 쓴맛도 사는 맛 중의 하나라고 했다. 애간장이 타는 듯, 심장이 녹는 듯한 아픔을 겪으면서 사람이 좀 깊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취향도 달라지고 성격도 변했다. 젊었을 때는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이 좋았지만 반백이 지나면서 산과 들, 강과 바다가 더 좋아졌다. 살면서 염량세태를 적잖게 보고 겪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좋았던 마음이 영원하지 않다. 미련을 남기고 후회를 남기는 그런 인연도 있다.

삶에 지칠 때,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대자연의 품속에 안기는 것이 좋다. 자연은 아무 말이 없으면서도 많은 말을 한다. 때로는 새소리로, 때로는 물소리로, 때로는 숲속을 지나는 한 줄기 바람으로, 구름으로 꽃으로 삶에 지친 마음을 다독이고 위로해준다.

어느 날 새벽, 홀린 것처럼 산행에 나섰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무심코 콧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기분이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을 산을 오르는 것이 재미도 있고 느낌도 좋았다. 새삼스러운 재미의 발견은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의무와 책임만 짊어지고 사느라고 나를 위한 재미는 잃고 살았다는 그런 깨달음….

자욱한 운무 속을 거닐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순전한 나를 위한 매혹적인 새벽 산행을 계속하게 될 것이고, 이왕이면 호젓한 산길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노래를 한 곡조 부르고 싶었다.

우연히 부른 콧노래... 나만의 재미를 찾아 나서다

 영화 <서편제>
 영화 <서편제>
ⓒ 영화 <서편제>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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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래가 좋을까 곰곰 생각하니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구성진 단가 '사철가'의 가락이 귀에 맴돌았다. 영화 <서편제>에서 유봉(김명곤)이 눈먼 송화(오정해)와 함께 정처 없이 이곳저곳 노래 품을 팔며 떠돌아다니는 장면에서 '사철가'를 부른다. 사계절이 지나가는 화면과 가사가 조화를 이뤄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노랫말에 사계절이 모두 나오니 어느 계절에 흥얼거리며 놀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갈수록 연륜이 쌓이는 나이이니 풍류와 운치가 느껴지는 우리 가락 하나 정도는 익혀두고 싶었다.

인터넷에 단가 '사철가'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서양 음악은 누구나 악보를 보고 배울 수 있지만, 판소리는 악보라는 것이 없으므로 그저 명창들의 소리를 듣고 따라서 부르며 배울 수밖에 없었다.

국악 학원에서 배우는 방법도 있었지만, 시간 내기가 여의치 않아 독학의 길을 택했다. 먼저 수많은 명창의 소리를 들어 보았다. 명창마다 그 맛과 깊이가 조금씩 다르게 다가왔다. 노랫말도 조금 달랐다. 가사를 프린트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짬이 날 때마다 흥얼거리며 가사를 외웠다.


내가 부르는 '사철가'는 여러 명창의 이 구절 저 구절을 따와서 내 멋대로 연결했다. 문장으로 비유하면 짜깁기이고, 음식으로 비유하면 비빔밥이다. 고음 처리가 어려워서 계면조(국악에서 쓰이는 선법 중의 하나)의 저음으로 부르는 대목도 있고, 없는 아니리(판소리에서 창자가 소리를 하다가 한 대목에서 다른 대목으로 넘어가기 전에 자유리듬으로 사설을 엮어나가는 행위)를 넣기도 했다. 원래 판소리 자체가 이런 식으로 분화되며 새로운 창법을 더했다.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면서 뒤에 붙는 접미사 '제(制)'는 만들어진 모양새를 일컫는 말이다.

나는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면 풍덩 빠져들기를 잘한다. 지나치다 할 정도로 몰입한다. 초보자의 피아노 연주는 시끄럽기만 한 것처럼 음치의 노래는 듣기에 괴로운데, 나도 모르게 '사철가'가 흘러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각시가 "소리가 당신한테 와서 고생이 참 많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를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요"라고 말했다.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다.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나도 인정하는 바이기에 그냥 웃어 주었다.

여러 달이 흐른 후 각시와 북한산을 오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철가를 불렀다. 그랬더니 "우와! 이제는 제법 들어줄 만하네. 듣기 좋아요" 하는 것이었다. 입에 발린 말이겠지만 마음이 살짝 우쭐해졌다. 그동안 짬이 날 때마다 갈고 닦은 소리였다.

"당신한테 칭찬까지 들었으니 이제는 득음까지 하여 소리꾼으로 나서보리다!"

호기롭게 흰소리를 날리고 내친김에 내가 선창을 할 테니 따라서 해보라고 했다. 부부가 흥얼흥얼 사철가를 부르며 천천히 산길을 오르는데, 지나치는 어느 등산객이 "참 보기 좋네요"라고 말했다. 행복이라는 것이 뭐 별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정다운 것 이상의 행복도 없다.

'맞장구' 덕에 북한산에서 막걸리 얻어먹은 사연

얼씨구(얼을 심는다는 뜻), 으이, 얼쑤, 좋지, 허이, 그렇지, 아먼, 잘한다! 추임새에 대해서도 각시에게 말해 주었다. 추임새는 흥을 돋우는 소리이다. 청중들이 소리꾼을 격려하여 기운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소리를 못해도 추임새를 넣어 주면 흥이 살아나 조금이라도 잘하게 된다.

대화에서도 추임새는 필요한 요소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은 추임새를 잘 넣는다. 노련한 방송인들의 진행을 보면 추임새 넣는 타이밍이 아주 적절하다. "아, 예, 그렇지요, 맞아요!"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상대방의 기와 흥을 살려준다. 대화에서 추임새는 칭찬이고, 배려이며, 공감이다.

 판소리(자료사진)
 판소리(자료사진)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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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가'를 부르고부터 산행을 할 때 꼭 챙기는 도구가 쥘부채이다. 판소리 공연에서 남녀 명창들이 쥘부채를 폈다 접었다 하면서 소리를 뽑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너름새(몸짓)를 할 때 부채는 천변만화하는 이야기와 사건의 전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소도구이다.

예컨대 '춘향가'에서 춘향이가 매를 맞는 대목에서는 곤장으로 사용하고, '흥부가'에서 흥부가 박을 탈 때는 톱이 되기도 한다. 산행할 때 부채는 참 요긴하다. 햇볕이 따가울 때는 쫙 펴서 그늘막을 만들고, 이마에 땀이 흐를 때면 바람을 만들고, 소리를 할 때는 힘차게 쥘부채를 펼치는 너름새를 한다.

짬짬이 사철가를 연습한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친목 모임에서나 회사 야유회 등에서 흥이 필요할 즈음에 한 곡조 뽑으면 제법 운치가 있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익혀두면 유용하게 써먹을 때가 있다.

어느 주말에 북한산을 오르는데 나이가 지긋한 등산객 몇 사람이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다. 한 사람이 '심청가'의 한 대목을 불렀는데 애조를 띤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런데 아무도 추임새 넣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얼씨구, 좋지, 그렇지!" 하면서 살짝살짝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그랬더니 소리를 마친 그분이 "오늘은 귀명창을 만나게 돼서 아주 흥겹고 좋았소" 하면서 막걸리를 한 잔 따라주는 것이었다. 귀명창은 판소리를 하지는 못하지만 들을 줄 아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나에게는 과분한 소리임이 분명하다.

이왕 하는 것 '사철가' 하나로는 부족했다. 어떤 자리에서 누군가 먼저 '사철가'를 불러 버리면 같은 노래를 또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남도 민요 중 가장 슬프다는 '흥타령'을 혼자 연습했다. '흥타령'은 무척 애절한 노래이다. 곡조와 가사에 한이 서려 있다.

비애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이라고 한다. 계면조의 처연하게 늘어지는 가락을 듣노라면 애간장을 녹이는 절절한 슬픔이 묵직하게 심장을 파고든다. '흥타령' 중에서 '꿈'을 노래한 소절을 가장 좋아한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술 한 잔 마시면서 나직한 소리로 토해내면 분위기가 그만인 소절이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방법

 취미는 내가 즐겁자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비교할 필요는 없다.
 취미는 내가 즐겁자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비교할 필요는 없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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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붓장난 할 때도 '흥타령'을 흥얼거린다. 붓글씨와 우리 가락은 고전적인 멋을 느끼게 한다. 예전의 풍류를 즐기는 선비처럼 속사에서 벗어나서 자연을 벗 삼아 마음의 때를 씻는다. 돈도 들지 않으면서 흥겨움은 대단하다. 물론 가난한 사람의 궁상스러운 취미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청고한 취미'라고 믿는다. 오락이나 향락보다는 훨씬 품격이 높고 아취가 있는 도락(道樂)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흥미로운 일이 많고 해보고 싶은 일도 많다. 지금 당장 행복하려면 일상의 작은 일에 흥미를 갖고 즐거움을 찾는 습관이 필요하다. 언제라도 할 수 있고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도 찾으면 적지 않을 것이다.

대개 원만하고 행복한 사람을 보면 흥미와 취미의 영역이 넓고 다채롭다. 청명한 하늘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의 모양도 흥미롭고,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도 신비로우며, 빗소리가 음악보다 감미로울 수도 있다. 그런 것은 따로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느끼고 즐기는 사람이 임자이다.

취미는 내가 즐겁기 위해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비교할 필요는 없다. 언제라도 그것을 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 취미라고 생각한다. 소리하기에 좋은 목청을 타고나지 못한 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소리꾼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열심히 듣고 부르고 공부하다 보면 귀명창의 경지에 오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생의 황혼 녘에는 풍류객으로 살다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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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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