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썰매 종목의 개척자인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15일 오후 강원도 한 카페에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유학 당시 자신에게 스켈레톤 도전을 권한 마리오 구겐베르거를 만나 반가워하고 있다.

한국 썰매 종목의 개척자인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15일 오후 강원도 한 카페에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유학 당시 자신에게 스켈레톤 도전을 권한 마리오 구겐베르거를 만나 반가워하고 있다. ⓒ 유성호


한국 스켈레톤에 윤성빈(25)이란 꽃이 피었다. 그의 탁월한 운동 능력과 올림픽 개최에 따른 지원이 보태져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이란 열매도 가져왔다.

꽃과 열매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씨앗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꽃과 열매의 시초가 된, 특히 스켈레톤이 자라기엔 너무도 척박했던 한국 땅에 씨앗을 뿌린 그 누군가를 말이다. 기억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곧 존재를 담보하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저녁, 강릉의 한 식당. 큰 덩치의 한국인과 백발의 길쭉한 외국인이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인은 이번에 MBC 해설위원을 맡은 강광배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외국인은 강 교수에게 스켈레톤을 알려준 마리오 구겐베르거(56, 오스트리아)였다.

한국의 첫 스켈레톤 주행... "핑퐁, 핑퐁, 핑퐁"

'한국 썰매의 선구자'로 불리는 강 교수는 대한민국 1호 스켈레톤 선수다. 그는 원래 같은 썰매 종목인 루지 선수였다.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루지 종목에 출전했던 그는 2002년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음에도 세대교체를 이유로 대한루지연맹에 의해 자격을 잃고 말았다.

당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유학 중이던 강 교수는 실의에 빠졌다. 그때 우연히 만난 사람이 바로 스켈레톤 선수였던 마리오였다(아들인 마티아스 구겐베르거 또한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스켈레톤 선수인데, 마리오는 아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현재 한국에 와 있었다). 마리오는 강 교수에게 스켈레톤 이야기를 꺼낸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강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1998년이었죠. 헬스장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는데 어느 교수님 소개로 (강광배를) 알게 됐어요. 루지를 그만뒀다고 하기에 '스켈레톤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죠. 그러니 '스켈레톤이 뭐냐' 그러더군요(웃음)." - 마리오 구겐베르거

"그땐 막 유학 갔을 때라 독일어도 안 되고, 대화도 잘 안 되고... 거의 바디랭귀지로 이야기할 때에요. 나중에 자기가 타던 스켈레톤이랑 헬멧도 주더라고요." - 강광배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6일 오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3차 주행 출발을 하고 있다.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6일 오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3차 주행 출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마리오가 준 헬멧을 쓰고 스켈레톤에 오른 강 교수는 그렇게 대한민국 1호 스켈레톤 선수가 됐다. 마리오의 입에선 강 교수가 처음 스켈레톤을 타던 때를 표현하며 연신 "핑퐁, 핑퐁, 핑퐁"이란 의성어가 나왔다. 강 교수가 스켈레톤을 타고 내려오며 얼음벽에 여기저기 부딪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사실 그때만 해도 스켈레톤은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었다. 그런데 2002년 솔트레이크동계올림픽을 앞두고 54년 만에 스켈레톤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핑퐁, 핑퐁, 핑퐁" 하던 강 교수는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에 나가 39위를 기록했고,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해 20위를 기록했다. '20위'는 당시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역사상 빙상 외 종목의 최고 성적이었다(이번 윤성빈의 금메달은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역사상 빙상 외 종목 첫 메달이다). 그때 마리오는 한국도 스켈레톤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엔 강광배가 연습경기에서 10위 안에도 들었거든요. 3차 시기에서 거의 썰매가 뒤집어지듯 해서 밀리고 말았지만요. 하지만 가능성을 봤어요. 강광배 혼자였지만요."

이에 강 교수는 "환경이 참 많이 열악했다. 자동차도 없어서 마리오의 차를 타고 경기에 나갔다"라며 "마리오 때문에 (한국 스켈레톤이)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살아있는 역사' 된 그 헬멧

 제20회 토리노동계올림픽이 진행된 2006년 2월 18일 새벽(한국시간) 이탈리아 체사나파리올에서 벌어진 스켈레톤에서 경기를 마친 강광배가 헬멧을 벗으며 들어오고 있다.

제20회 토리노동계올림픽이 진행된 2006년 2월 18일 새벽(한국시간) 이탈리아 체사나파리올에서 벌어진 스켈레톤에서 경기를 마친 강광배가 헬멧을 벗으며 들어오고 있다. 이 헬멧이 강광배가 처음 스켈레톤을 시작할 때 마리오에게 받은 헬멧이다. 태극기는 마리오에게 헬멧을 받은 후 강광배가 새긴 것이다. ⓒ 연합뉴스


마리오가 강 교수에게 줬던 헬멧은 이후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강 교수는 "대한민국 스켈레톤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그 헬멧을 쓰고 연습했다"라며 "윤성빈 역시 쓰고 연습했던 헬멧은 지금도 연습장 한 편에 놓여있다"라고 전했다.

강 교수 또한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후 그의 스켈레톤 썰매는 IOC올림픽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 때마다 의미가 있는 선수들의 용품을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는데, 강 교수가 그 주인공이 된 것이다.

 스위스 로잔 IOC올림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강광배 교수(전 스켈레톤 국가대표)의 스켈레톤 썰매.

스위스 로잔 IOC올림픽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강광배 교수(전 스켈레톤 국가대표)의 스켈레톤 썰매. ⓒ 강광배 제공


마리오는 1999년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이 생기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줬다. 강 교수는 "그땐 오스트리아 선수들과 훈련하고, 오스트리아 선수로 국제대회에서 뛰던 때다. 한국 선수로 뛰고 싶었다"라며 "마리오와 함께 국제연맹에 가서 한국에도 연맹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마리오는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이 만들어질 때를 떠올리며 "선수도, 감독도, 회장도 모두 강광배였다"며 웃음을 내보였다.

마리오가 한국의 덩치 큰 사내에게 스켈레톤을 알려준 지 딱 20년이 지났고, 한국은 스켈레톤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마리오는 "짧은 시간 동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성장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강광배와 내가 만났던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윤성빈이 나올 수 있었다. 만약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몇 년 후 한국에서도 스켈레톤이 시작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윤성빈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의 스켈레톤이 급성장한 것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고, 나도 보람이 된다. 이제 한국에서도 스켈레톤이 인기 종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썰매 종목의 개척자인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15일 오후 강원도 한 카페에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유학 당시 자신에게 스켈레톤 도전을 권한 마리오 구겐베르거를 만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 썰매 종목의 개척자인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15일 오후 강원도 한 카페에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유학 당시 자신에게 스켈레톤 도전을 권한 마리오 구겐베르거를 만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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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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